
층간 소음 문제로 고민하던 지인이 얼마 전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쿵쿵거리는 윗층 아이들의 발걸음 소리를 참다못해 한 번쯤 올라가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윗층 젊은 부부가 먼저 내려왔다는 것이다. 그들은 웃는 낯으로 그러나 아주 미안해하며 "저희 아이들이 많이 시끄럽게 했죠? 조심시키기는 했지만 잘 안 되네요. 부담은 갖지 마시고 아이들의 소음값으로 여겨주세요"라며 십만 원을 건넸단다.
너무나 당황해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주저하고 있는데 부부가 손에 봉투를 덥석 쥐여주고는 올라가 버렸다는 것이다. 얼떨결에 받기는 했는데 희한하게도 그 뒤로는 아이들의 뛰는 소리가 전혀 시끄럽지 않았다고 한다.
층간소음으로 살인 사건까지 일어나는 사회가 되다 보니 이런 일도 있다면서 씁쓸히 웃던 지인은, 다달이 준다는 그 돈을 받는 게 맞냐고 나에게 물어왔다. 돈 앞에 장사 없다는 말로 웃으며 넘겼지만 나라면 어떻게 했을지 무엇이 맞는 것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노존(no zone)에는 '노키즈존', '노시니어존'이 있다. 하물며 '노틴에이저존', '49세 이상 출입금지'라는 것도 보았다. 원래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만들어졌던 제약이 지금은 아이들을 금지하는 푯말이 되었다.
질서를 위해 규칙이 세워지는 것인데 그것이 나중에는 성역이 되어버린다. 어느 학자(<쾌적한 사회의 불쾌함> 구마시로 도루)가 말한 대로 쾌적한 사회를 불쾌하게 하지 않기 위해 많은 이들이 질식하기에 이르렀나 보다. 어느새 50대 중반인 나도 누군가에게 불쾌한 존재가 되어버린 건 아닌가 걱정이 된다.
다시 만난 지인에게 그 후의 일을 물었다. 아직까지 윗층 부부를 다시 만난 일은 없지만 만약 또 십만 원을 준다면 이제는 받지 않을 거라고 한다. 그날 이후로 윗층 아이들은 모르는 아이들이 아닌 '아는 아이들'이 되었다. 아는 애들이 뛰는 건 시끄럽지 않다더니 지인도 이제는 그들의 소음이 잘 들리지도 않거니와 설사 들린다 해도 시끄러운 줄 모르겠단다. 꼭 돈을 받아서가 아니라 이웃의 불편함을 신경 쓰고 헤아린 부부의 마음씀에 마음이 움직인 게 아닐까.
노키즈존이나 노시니어존에 들지 않을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 그렇다면 모두에게 해당되는 금지구역이 얼마나 필요하며 유용한지 모르겠다. 아니, 그에 앞서 누가 누구를 금지한다는 것부터가 씁쓸하기도 무섭기도 하다.
부모님은 물론이요 나도 곧 노시니어존 앞에서 몸을 돌려나오게 될 것이고 아직은 젊은 자식들도 언젠가는 노시니어존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것이다. 아는 아이가 뛰는 건 시끄럽지 않듯이 아는 노인이면 어디서 만나더라도 그다지 불편하거나 멀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서로가 아는 사람이 되어 조금씩만 양보하고 배려하여 어느 곳이든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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