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는 바꿀 수 없어도, 인생의 이름표는 바꿀 수 있다
지면 위 70cm 높이에서 세상을 읽는 특수 교사입니다. 누군가에게 나를 증명하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나누며 울림을 주는 강연가를 꿈꿉니다. <기자말>
교실 창밖으로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봄바람처럼 스며듭니다. 특수교사인 저는 오늘도 익숙하게 휠체어 바퀴를 굴리며 학생들 사이를 누빕니다.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조금은 서툴지만 기특하게 피어나는 그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이 시간, 저는 제 삶에 깊고 단단한 만족을 느낍니다.
하지만 가끔 휠체어의 차가운 금속 프레임을 손끝으로 쓸어내릴 때면, 제 인생의 이름표를 송두리째 바꿔야 했던 28년 전 그날의 기억이 선명한 파편이 되어 스쳐 지나갑니다. 누군가는 '비극'이라 이름 붙였고, 누군가는 '불행'이라 가엾게 여겼던 그 사고.
하지만 저는 이제 압니다. 그날의 추락이 사실은 저를 가장 뜨겁게 살게 만든 '축제의 서막'이었음을 말입니다.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 참으로 시리고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평범한 말이 바꾼 운명 1998년, 중학교 축제를 하루 앞두고 들떠 있던 청소 시간이었습니다. 2층 교실 창밖 난간에 휴지 한 조각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제게 무심코 말씀하셨습니다. "저것 좀 주워 올래?" 그저 평범한 심부름이었습니다.
저는 교복 치마를 여미고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습니다. 하지만 그 찰나, 세상이 뒤집혔습니다. 발이 미끄러진 순간부터의 기억은 조각난 필름처럼 띄엄띄엄 남아있습니다. 짧은 비명, 급격히 멀어지던 교실 풍경, 그리고 이어진 지독한 암전. 열네 살 소녀의 평범했던 일상은 그 짧은 찰나에 멈춰버렸습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저를 맞이한 것은 중환자실의 기계음과 차가운 하얀 천장이었습니다. 의사는 제게 평생 휠체어를 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손가락은 연필 한 자루 쥘 힘조차 잃어버린 상태였습니다. 화장실에 가는 것, 밥을 먹는 것, 심지어 몸을 뒤척이는 것조차 타인의 허락과 도움 없이는 불가능해진 현실. 극도의 두려움과 비참함이 어린 저를 산채로 삼켜버렸습니다.
"내 인생은 이제 여기서 끝이구나."
스스로에게 선고를 내리며 매일 밤 하얀 천장을 원망의 도화지 삼아 절망을 그렸습니다. 장애라는 이름표는 세상으로부터 저를 격리하는 거대한 담벼락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절망의 끝바닥을 치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나를 주저앉히는 줄 알았던 그 '결핍'이, 오히려 잠자던 저의 생명력을 깨우는 강렬한 자극제가 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사고라는 '사건' 자체는 제가 선택할 수 없었지만, 그 사건을 내 인생의 '무덤'으로 둘지, 아니면 새로운 '활주로'로 삼을지는 오직 저의 선택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28년, 저는 멈추지 않고 달렸습니다. 손가락의 감각을 되찾기 위해 수천 번 펜을 쥐었고, 남들보다 낮은 시선으로 세상을 공부했습니다. 휠체어는 저를 가두는 감옥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가장 당당하게 나아가게 해주는 저만의 소중한 다리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낮아졌다고 말했지만, 저는 이 높이에서만 볼 수 있는 보석 같은 진리들을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나 인생에서 예기치 못한 난간을 마주합니다. 미끄러질까 봐 두렵고, 이미 추락한 것 같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겪는 시련에 어떤 이름표를 붙이느냐에 따라, 그 자리는 비극의 장소가 될 수도, 새로운 비상을 시작하는 활주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오늘도 70cm의 높이에서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바퀴를 굴립니다. 이 낮은 시선이 세상의 턱을 없애고, 누군가의 마음속 장벽을 허무는 도구가 되길 꿈꿉니다. 우리, 오늘도 각자의 인생에 붙은 이름표를 멋지게 바꿔 달고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추락 역시, 머지않아 멋진 비행으로 기록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 동시 업로드 합니다.
박혜현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47/0002508112?sid=103
휴지 떨어진 걸 왜 학생에게 시킨걸까? 이해가 안된다, 물론 저 사고와는 별개로 저 분 인생을 멋있게 사는건 사실이지만 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