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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그거 제 업무 아닌데요" 했다간 짐 싼다… AI가 부른 자발적 과로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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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1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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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전쟁 : AI의 직업 침탈기
③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편집자주
인공지능(AI) 알파고가 바둑 최고수 이세돌을 꺾으며 특이점의 전조가 도래했음을 알린 지 10년. AI는 이제 바둑판을 넘어 인간의 삶 곳곳에 깊이 침투했다. 로봇이 육체노동을 대신하고 AI 비서가 의사결정을 돕는 시대. 모든 직업군에서 인간과 기계의 전쟁 같은 생존 경쟁이 불붙었다. 기획 연재 '그림자 전쟁 : AI의 직업 침탈기'에서는 AI가 회사에 조용히 침투해 노동자들을 밀어내는 현실을 현장 깊이 들어가 취재했다. 또 알고리즘에 밀려나지 않기 위한 노동자의 분투, AI와 인간이 공생하기 위한 해법 등을 알아봤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직장에서 누가 살아남을까
한국일보는 이 질문의 답을 찾으려 나름의 생존법을 찾은 직장인 5명과 취업 준비생 3명, AI·노동 전문가 5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이들은 "AI는 업무 숙련도가 낮은 저연차 직장인과 아직 입사하지 못한 취업 준비생에게 가장 가혹하겠지만, 부장 등 중간 관리자와 임원 등 직급과 관계없이 모두를 위협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업 실무자와 전문가가 말하는 생존법과 AI가 불러올 노동자 과로 문제 등을 정리했다. (인터뷰한 인물은 실명 표기를 원칙으로 하되 신원이 드러나면 곤란함을 겪을 가능성이 있어 이름을 쓰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 이들은 가명 처리했다.)


15년 차 직장인 남동득(42)이 이른 아침 사무실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동료와 채팅을 하는 듯 모니터를 들여다 보다 키보드를 두드리길 반복한다. 1시간 30분쯤 지났을까. 묵혀 뒀던 과제를 끝낸 학생처럼 홀가분한 표정을 짓는다. 임직원이 사내 메신저로 휴가 사용법이나 사내 포인트 쓰는 법 등을 물으면 자료집을 토대로 답해주는 인공지능(AI) 챗봇을 뚝딱 만든 것이다.

 

동득은 코딩에 능통한 베테랑 개발자가 아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온라인 기반 상거래 업체의 피플실장(인사실장)이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을 거치며 인사 업무에 잔뼈가 굵은 그가 챗봇을 2시간이 채 안 걸려 만들 수 있었던 건 '바이브 코딩' 덕분이다. 암호문 같은 코드 언어 대신 원하는 기능을 말로 설명하면 AI가 코드를 짜준다. 개발 부서에 의지하지 않고 실무 부서가 필요한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면서 반복 업무에 드는 시간이 크게 줄었다는 게 동득의 설명이다.

 

"직원들이 궁금한 게 생기면 사내 메신저로 인사팀원들에게 물어봐요. '재직 증명서를 어떻게 받아요?' 같은 단순한 질문이 많죠. 반복적으로 답하느라 시간을 많이 썼어요. 그래서 챗봇을 직접 만들었죠. 개발팀에 협조 요청을 넣으면 언제 순서가 올지 모르니까요."

 

누군가는 "왜 인사팀이 그런 일까지 사서 해?"라며 되물을지 모른다. 동득의 생각은 다르다. 직무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AI가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면서 노동자 누구나 '기계에 대체당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떠는 시대인 까닭에 직업 정체성을 넓혀 가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는다. 특히 인사 업무는 AI가 쉽게 대체할 수 있는 분야로 꼽힌다. 이력서를 거르고, 급여를 계산하고, 사내 규정을 안내하는 일 등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반복하는 작업'이어서다. 동득은 단순 반복 업무는 자동화하고 정말 중요한 일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쪽으로 업무 체계를 다시 짜고 있다. 이를테면 기업의 성장 단계에 맞춰 인사 제도를 개편하는 일 등에 많은 시간을 쏟겠다는 뜻이다.
 

AI가 낮춘 직무 칸막이… 자유롭게 넘나들어야 생존


동득처럼 직무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의 역할을 확장하는 건 직장인의 첫 번째 생존법이다. 사람이 해온 많은 업무를 AI가 훨씬 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해주기에 노동자는 직업적 정체성을 다시 고민해야 하는 처지다. "거기까지는 제 업무가 아닌데요"라는 말이 통하지 않게 됐다는 의미다. 특히 2023년 세계경제포럼(WEF)은 향후 5년 안에 현재 일자리의 약 4분의 1 재편될 것으로 내다봤기에 AI의 도움을 받아 인간이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남연지(가명)는 이런 흐름에 발 빠르게 적응해가는 11년 차 직장인이다. 배달 플랫폼 업체의 프로덕트매니저(PM)인 그는 올해부터 간단한 개발과 디자인 정도는 직접 처리한다. 그의 본업무는 서비스 기획이지만 시대가 달라지면서 자연스레 일의 범위가 넓어졌다. 예컨대 새 서비스를 준비할 때 바이브 코딩으로 시제품을 직접 만든다. 예전에는 개발자와 디자이너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종일 걸렸을 일을 이제는 한 시간이면 해낼 수 있다. 연지는 "전체 직원이 20명 남짓인 스타트업의 개발자인 친구가 있는데 저연차 디자이너 업무까지 맡는다더라"며 "작은 조직일수록 한 사람이 여러 인접 업무를 동시에 책임지는 형태의 일자리가 더 늘어날 것 같다"고 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연지처럼 업무하는 방식은 이제 직장인 업무 패턴의 '뉴노멀(새로운 표준)'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평생 직장은 한참 전에 사라졌지만 이제는 평생 직업도 없다"고 말한다. 어떤 직무로 입사했든 10년 안에 직업이 두세 번 바뀔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뜻이다. 삼성·LG·GS 등 주요 대기업에 AI 관련 인사 자문을 해온 이중학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가 설명했다.

 

"앞으로는 조직의 문제를 진단하고 풀어낼 줄 아는 사람만 실무자로서 살아남을 겁니다. 이미 해외에서는 프리랜서 한 명이 홍보·협상·시장 개척·고객 관리까지 두루 해낼 수 있는 사업 감각을 갖추고, 원하는 프로젝트 여러 개를 동시에 맡는 사례가 드물지 않아요."
 

그래픽=박종범 기자

 

넓어진 업무 영역에 적응 못 한 직장인은 비관적 상황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국내 5대 그룹 중 한 곳에서 AX(인공지능 전환) 업무를 맡은 한 직원은 "AX는 결국 대체할 수 있는 직무에서 사람을 줄여 비용 감축하는 걸 목표로 삼는다"며 "다만 한국에서는 정규직 노동자를 미국처럼 함부로 해고할 수 없기에 덜어낸 인력을 원래 맡던 일과는 무관한 직군으로 보내고 있다"고 증언했다. 이를테면 개발자를 지방 영업직으로 보내는 식이다.

 

AI시대의 동아줄 ‘증강능력’… 가장 유리한 직급은 대리·과장급


달라진 직장 안에서 그나마 유리한 위치에 있는 건 입사 6~14년차의 대리·과장급 실무자다. 이미 자기 분야에서 적당한 경험을 쌓은 데다 AI를 비교적 쉽게 받아들여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낼 수 있는 연차여서다.

 

그래픽=박종범 기자

 

외국계 정보통신(IT) 기업의 10년 차 개발자 강현섭(가명)은 "업력이 쌓인 10년 차 이상의 직장인이 AI를 잘 활용한다"며 "요즘은 코드를 짜는 능력보다는 구조를 설계하는 안목이나 오류를 잡아내는 판단력 등이 훨씬 중요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저연차 노동자는 AI가 짜준 코드에 오류가 숨어 있어도 이를 잡아내지 못하는 일이 많아 장애 발생 때 대처 능력이 떨어진다. 강씨는 "미국의 저명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켄트 벡이 '(AI 보급으로) 내 기술의 90%는 0달러가 됐지만, 나머지 10%는 1,000배의 가치를 얻게 됐다'고 했는데 정말 공감됐다"고 말했다. 개발 업무를 오래 하며 쌓은 10%의 통찰력이 AI를 사용하는 모든 과정에서 빛을 발한다는 의미다. 과장급 실무자인 연지 역시 현섭과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7년 차 이상 경력자 중에 'AI가 날개를 달아줬구나' 싶을 정도로 이를 잘 활용하며 좋은 결과물을 내놓는 사람이 많아요. 일의 흐름을 정리해주고, 좋은 레퍼런스(자료)를 골라 AI를 학습시키거든요. 결국 사람에게 일을 잘 시킬 줄 아는 사람이 AI한테도 일을 잘 시키는 거죠. 다양한 사람들과 부대끼며 일 경험을 착실히 쌓은 사람한테는 AI가 업무력을 증강시켜주는 도구가 되는 거죠."


'나는 대리·과장급이니 안전하겠지'라고 느긋하게 생각하면 오산이다. AI는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도구가 된다. "요약해줘" "써줘"처럼 명령만 툭툭 던진다면 AI는 장기적으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반면 동득처럼 AI를 '싱킹 파트너'(질문을 던지고 함께 관점을 정리해가는 동료)로 여기며 의견을 주고받으면 업무 질이 하루하루 나아진다.

 

이 교수는 “AI를 잘 쓰는 핵심은 일의 맥락을 얼마나 잘 정리해 입력하느냐"라며 "그러려면 자신의 일을 단계별로 나눠 구조화하고, AI가 잘할 수 있는 단계와 사람이 더 집중해야 하는 단계를 구분하는 능력, 즉 '워크플로(일의 흐름)'를 잘 짤 수 있는 역량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는 연차만 쌓였다고 저절로 갖출 수 있는 능력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AI를 잘 활용해 생산성을 끌어올린다면 실무급 노동자들의 업무 강도는 크게 줄어들까. 그렇지 않다는 증언이 현장에서 나온다. 한 사람이 처리할 수 있는 업무량이 크게 늘면서 오히려 과로가 심해졌다는 얘기다. 현섭은 "AI 도입 이후에도 일의 총량은 줄어들지 않았는데 회사에서 팀원 수만 줄였다"고 했다. 직원 한 명이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전제 아래 감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도 현장 증언을 뒷받침해준다. 미국의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지난 2월, 약 200명의 직원을 둔 미국의 한 기술 기업에서 AI가 업무 습관에 미치는 영향을 8개월간 추적해 결과를 공개했다. 직원들은 AI의 도입 이후 더 빠르게, 더 광범위한 업무를 처리했고 누가 지시하지 않았음에도 더 오랜 시간 일하는 경향을 보였다.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예전엔 엄두 내지 못했던 타 부서나 직군의 업무를 직접 처리할 수 있게 돼 업무 범위가 넓어졌고 △업무 착수의 문턱이 낮아져 점심 시간이나 이동 시간 등에도 "AI로 작업을 하나 더 돌려보자"는 식으로 업무가 일상으로 침투했으며 △기업은 직원들이 더 빨리 결과물을 내놓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발적 과로'가 계속되다 보면 순식간에 번아웃 증후군(신체·정신적 소진으로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거나 판단력이 떨어져 오류를 저지를 가능성이 커진다.

 

보고받고 보고하는 업무에 하루 다 쏟는 김 부장이야말로 ‘대체 1순위’


AI 충격을 가장 크게 받는 이들은 부장·팀장 등 중간관리자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딜리버리(전달)형 관리자가 위태롭다. 위에서 내려온 지시를 부하 직원에게 전달하고, 아래에서 올라온 보고는 폰트와 자간을 맞춘 보기 좋은 문서로 정리해 상사에게 올리는 방식으로 버텨온 이들이다.
 

그래픽=박종범 기자

 

미국에서는 이미 변화가 시작됐다.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중간관리층이 대거 해고되거나 리더 자리에서 밀려나면서 전략을 짜는 임원과 실행하는 실무자만 남는 '납작한 조직'으로 재편되고 있다. 일명 ‘그레이트 플래트닝(대평탄화·great flattening)’ 현상이다. 처음엔 AI에 따른 어쩔 수 없는 변화였지만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새 조직 모델로 굳어지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국내 기업도 변화의 기미가 보인다. 팀장급을 축소하고 프로젝트 단위로 인력을 운영하는 등 조직 구조 전환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이 교수는 이런 변화를 두고 "중간관리자와 실무자 간 업무 처리 속도에 대한 인식이 크게 벌어졌다"고 말했다.

 

"전통적 방식으로 일해온 리더가 어떤 과제를 처리하는 데 '한 달 정도 걸린다'고 봤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런데 같은 과제를 AI를 쓰는 실무진에게 보여주면 '아무리 길어도 3일이면 끝난다'고 판단한다는 거죠. 이런 변화 속에서 '뒷짐 지고 앉아 부하 직원의 결과물을 평가만 하는 '감독형' 리더는 증발할 거예요." 직접 실무 현장에 뛰어들어 실무자들과 함께 문제 상황을 해결하는 ‘플레잉코치형 리더’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교수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해외 IT 기업에서 일하던 리더들이 국내 기업에 와서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너 왜 자꾸 팀장 방에서 나와서 팀원들과 같이 일하냐? 체면 깎이게'라고 하더라고요. 앞으로는 방 밖에 머무르는 이들만이 살아남을 거예요. 연공서열도, 계급장도 더는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오는 거죠."

 

그래픽=박종범 기자

 

주니어 세대는 AI로 인한 고용 위축의 직격탄을 가장 먼저 맞았다. 하지만 AI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오히려 새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낙관론도 있다.

최근 일부 기업들은 'AI 네이티브 인재'를 선발하겠다는 방침을 내놓고 있다. 앞으로는 취업이나 이직 과정에서 'AI 포트폴리오'를 요구하는 흐름이 자리 잡을 가능성도 크다. 업무할 때 어떤 AI 에이전트를 직접 만들어 봤는지, AI를 활용해 어떤 성과를 냈는지 등이 주요 평가 기준이 될 전망이다.

 

실제로 주니어 구직자의 이력서는 이미 다양한 AI 활용 경험으로 채워지고 있다. 통번역대학원을 다니며 취업을 준비하는 송기섭(33)씨는 "통번역가를 채용하는 회사 10곳 중 6, 7곳꼴로 AI 번역툴을 사용해 봤는지 묻는다"며 "예전에는 우대 조건 정도였다면 점점 필수 조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지난해 한 식품 대기업에 데이터 분석 직무로 입사한 정세훈(가명·28)씨는 석사 논문을 쓰며 AI 도구를 활용했던 경험을 자기소개서에 구체적으로 담았다. 또 아마존웹서비스(AWS)가 발급하는 AI 기초 활용 능력 인증 자격증도 땄다. 그는 "면접관들이 가장 궁금해한 건 내 AI 활용 능력을 실제 데이터 업무에 바로 쓸 수 있느냐였다"며 "AI 역량 중심으로 이력서를 구성한 게 요즘처럼 좁은 취업문을 통과하는 데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말했다.

 

동득은 "주니어들이 시행착오를 겪을 기회를 빼앗겼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실제 업무 현장에서 보면 경험의 대상이 사람에서 AI로 달라졌을 뿐이라는 생각도 든다"며 "쉽게 나온 결과물을 취하기만 하는게 아니라, 출처와 근거를 따져 물을 수 있는 논리력을 차근차근 갖춘다면 충분히 자신만의 자리를 찾아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젊은 세대의 진로 전략 자체가 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생략

 

https://n.news.naver.com/mnews/ranking/article/469/0000919604?ntype=RAN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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