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이 급속히 발전하는 가운데 한쪽에선 전 세계 투자금이 AI로 쏠리는 AI 버블론이, 다른 한편에선 소프트웨어(SW) 산업을 비롯한 금융·부동산·물류 등 기존 산업이 잠식당할 것이라는 AI 파괴론이 확산되고 있다. 부작용과 과속을 우려하기엔 이미 AI의 발전은 선택의 문제를 넘어선 생존의 문제가 됐다. ‘창조적 파괴’의 창시자 조지프 슘페터의 후예로 불리는 필리프 아기옹 프랑스 인시아드(INSEAD) 교수(69)는 지난 10일(현지시간) 매일경제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사스포칼립스’ 공포도 창조적 파괴의 한 과정이라는 낙관론을 폈다. 특히 AI의 생산성 효과가 일자리·산업 대체 효과를 압도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다음은 아기옹 교수와 일문일답.
-기존 산업을 파괴하는 AI의 급속한 발전이 논란이 됐는데.
“자연스러운 기술의 진보다. AI가 이 같은 창조적 파괴 현상을 촉진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AI를 도입하는 기업들은 더 생산적이 된다. 결과적으로 더 경쟁력이 생기는 것이다. 제품에 대한 새로운 수요나 업무가 증가하게 되고 이런 생산성 효과가 대체 효과를 상쇄하게 된다. 생산성 성장을 촉진할 것이다.”
-기존 산업의 일자리가 위협받는 부작용이 있는데.
“AI로 인해 일자리 파괴가 일어날 것이고 특정 직업들은 쓸모없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일자리 창출과 파괴가 동시에 일어난다. 사라지는 직업도 있지만 새로운 아이디어 덕분에 새로운 직업 활동도 활발해질 것이다. 보통 새로운 아이디어는 기존 아이디어의 재조합인 경우가 많지만 AI를 활용해 더 많은 아이디어를 재조합해 새로운 아이디어나 직업을 만들 수 있다.”
-AI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AI를 활용한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대응하려면 좋은 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스스로 계산하고, 수학적 연구를 하고, 책을 읽고 쓰는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배우는 법을 배우는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 위에 ‘유연안전성(flexicurity)’이라는 덴마크 모델이 결합돼야 한다.
-AI 버블 논란이 한창이다.
“아직은 버블 단계가 아니다. 곧 터질 것 같지도 않다. 어느 순간 버블이 터진다고 해도 세상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IT 버블이 터졌을 때도 세상은 끝나지 않았다. 금융위기를 촉발한 것도 버블 그 자체가 아니라 블랙스완 같은 뜻밖의 상황들과 가계의 과도한 부채였다.
-AI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AI의 미래는 대단히 밝다. 문제는 그 힘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AI가 한두 기업의 독점으로 이어진다면 새로운 혁신가들의 진입을 막아 성장의 장애물이 될 것이다. AI 혁명에 맞는 경쟁정책이 필요하다. AI는 성장을 촉진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지만 잘 활용할 수 있는 제도와 정책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그러지 않으면 AI는 실업과 불평등을 초래하는 위험한 길로 우리를 인도할 수 있다.”
-현재 글로벌 경제의 최대 리스크는 무엇인가.
“얼마 전까지는 트럼프 관세였는데 이젠 전쟁이 가장 큰 리스크가 됐다. 미국, 이탈리아, 영국 등에서 포퓰리즘이 확산되는 것도 걱정스럽다. 하지만 낙관론을 갖고 있다. 미 대법원이 트럼프 관세에 위법 판결을 내린 것처럼 말이다.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이 힘을 합치면 거대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란 전쟁의 충격을 어떻게 진단하는가.
“국제통화기금(IMF)도 밝혔지만 전쟁으로 세계 경제성장률이 연간 최대 0.4%포인트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 평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인플레이션도 0.4~0.5%포인트 상승할 것이다. 전쟁이 장기화한다면 인플레이션 상승과 결합된 성장 둔화가 예상된다. 그렇더라도 세계 경제가 붕괴할 수준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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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중진국 함정’에 빠져선 안돼 … 모방 아닌 ‘선도적 혁신’ 나설때
-한국의 AI 기술에 대한 대응은.
“한국은 배우는 법을 배우는 훌륭한 교육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유연안전성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이런 좋은 교육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그런 면에서 한국은 AI 시대에 대비하는 좋은 유연안전성 시스템을 구축할 준비가 잘돼 있다.”
-한국의 기술혁신 수준은 어떤가.
“놀라운 국가다. 아시아 네 마리 호랑이 중 첫 번째 주자였다. 높은 경제성장률은 물론, 거대한 기술적 진보를 경험한 대표 사례다. 낮은 수준의 기술에서 첨단기술로 생산 단계를 끌어올렸다. 한국의 발전 모델은 칭송받을 만하다. 그동안 모방전략을 통해 성장했지만 이젠 프런티어(선도) 혁신에 적합한 제도와 정책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그러지 못하면 중진국 함정에 빠지게 된다.”
-선도적 혁신을 위한 방안은.
“선도적 혁신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화두는 경쟁이다. 한국의 고성장기에는 재벌이 큰 역할을 했다. 위험한 것은 그들이 새로운 혁신기업의 진입을 저해하고 경쟁을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당연히 재벌들은 더 많은 경쟁을 원치 않는다. 모방 단계에서 거대하게 성장한 기업들이 선도적 혁신으로 나아가기 위해 제도와 정책을 변화시키는 데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재벌이 신생기업의 진입에 걸림돌이 된다면 경쟁정책을 효과적으로 운용해야 한다. 시스템의 본질을 보존하면서도 창의성을 독려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포스트 반도체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있는데.
“무엇보다 AI를 중단 없이 밀고 나가야 한다. 한국은 좋은 교육 시스템을 바탕으로 AI를 추진할 기반을 가지고 있다. 에너지 전환과 방위산업도 매우 유망한 분야이다. 이들 산업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최근 주프랑스 한국대사와 이야기를 나눠보니 한국은 교육 시스템은 훌륭하지만 파괴적 혁신의 확산으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
-한국의 기술 스타트업들이 성공하는 기반을 갖추려면.
“혁신을 위한 거대한 시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벤처캐피털, 기관투자자와 같은 훌륭한 금융 생태계를 확보하는 것도 선도적 혁신의 기반을 만드는 데 필수다. 이런 기반 위에 실패를 장려하는 문화가 갖춰져야 한다. 절대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분위기에선 리스크를 감수할 수 없고 선도적 혁신이 만들어질 수 없다. 장기적 연구자금 지원, 창의적 교육 시스템, 효율적인 금융 생태계 그리고 미국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과 같은 산업 육성 모델이 필요하다.”
아기옹 교수는…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필리프 아기옹 교수는 평생 조지프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 개념을 이론화하고 실증하는 데 매진했다. 기술 발전을 통한 성장 패러다임을 연구해왔고 저서 ‘내생적 성장 이론’ ‘성장의 경제학’ ‘경쟁과 성장’으로 유명하다. 프랑스 인시아드 석좌교수이자 콜레주드프랑스 및 런던정경대(LSE) 교수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9/00056504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