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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사표 던지고 1000만 쐈다…'왕과 사는 남자' 임은정 대표[문화人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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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9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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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news.naver.com/article/277/0005731026?ntype=RANKING

 

투자 빙하기, 기획 보류 맞서 홀로서기 감행
취중 전화가 뚫어낸 유해진 캐스팅 등 뒷이야기
단종 유배 서사에 부동산 등 현대적 욕망 이식
"비극 겪은 현대인의 애도법 묻고 싶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제작사 온다의 임은정 대표가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마친 후 천만 관람객을 기원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동주 기자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제작사 온다의 임은정 대표가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마친 후 천만 관람객을 기원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동주 기자

(중략)

조선 시대 단종의 유배를 다룬 이 작품은 궁궐 내 권력자들의 정치적 암투를 과감히 도려냈다. 대신 비운의 소년 단종(박지훈)과 역사의 격랑에 휩쓸린 변방의 촌장 엄흥도(유해진)를 전면에 내세웠다. 가장 높은 곳에서 추락한 왕과 가장 낮은 곳에서 연민을 배운 촌부의 처연한 서사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극심한 투자 빙하기에 흥행 공식에 기대지 않고 영화를 완성한 임은정 온다웍스 대표를 만나 기획의 궤적과 앞으로의 다짐을 물었다.

실록에 입힌 현대인의 갈망

임 대표는 기획 초반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위인이 아닌 평범한 촌부 이야기에 업계의 반응이 싸늘했다. 황성구 작가마저 여러 차례 집필을 고사했다. 정체된 기획을 타개한 돌파구는 현대적 욕망이었다. 임 대표는 "수동적인 유배 서사에 유배객을 유치해 마을을 부흥시키겠다는 야심을 이식하면 극에 활력이 생기겠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 컷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 컷

황 작가는 이 기발한 설정에 현실적 고민을 곁들여 서사를 구체화했다. 당시 외지에 터를 잡은 그는 자녀의 교육 환경을 걱정했다. 임 대표는 "서울과 지방의 교육 격차가 크다 보니 다른 도시로 이사까지 생각하셨다"며 "이런 고민이 과거에도 있었으며, 양반의 유배가 오히려 지역의 부흥을 이끌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발견하시고 캐릭터의 뼈대를 세우셨다"고 밝혔다. 이어 "현대인의 부동산에 대한 갈망까지 반영해 엄흥도의 입체성을 강화했다"고 말했다.

극 중 단종은 촌민들과 한 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 시대에 있을 수 없던 일이다. 하지만 임 대표는 과감하게 밀어붙여 영화의 주제를 단단히 다졌다. 왕과 백성의 수직적 충성 관계를 밥을 나누는 식구(食口)라는 수평적 연대로 치환해 서사의 힘을 극대화했다. 이 연출에는 장항준 감독 특유의 성정도 한몫했다. 임 대표는 "사람을 좋아하셔서 많은 분과 어울려 지내시는 분"이라며 "함께 밥 먹으면 식구고, 같이 물난리를 겪으면 친구라는 가치관이 장면 하나하나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고 말했다.

투자 빙하기 뚫은 뚝심

모두가 영화 투자를 꺼리며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리즈로 눈을 돌리던 빙하기에 제작을 밀어붙인 동력은 확신과 무거운 책임감이었다. 2018년 출발한 '왕과 사는 남자' 프로젝트는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전면 보류라는 암초를 만났다. 대형 투자배급사 소속이던 임 대표는 영화 개발을 멈추고 숨 고르기에 들어간 기류 속에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자신을 믿고 참여한 여러 창작자가 기약 없이 기다리는 상황을 수수방관할 수 없었다. 긴 고민 끝에 2023년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들을 들고 조직의 울타리에서 벗어났다. 그는 "저만 믿고 따라온 창작자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특히 '왕과 사는 남자'는 5년 안에 무조건 영화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던 터라 신의를 지켜야 했다"고 회고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제작사 온다의 임은정 대표가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동주 기자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제작사 온다의 임은정 대표가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동주 기자

홀로서기를 감행한 임 대표의 최우선 과제는 연출자 물색이었다. 해답은 퇴사 직후 관람한 영화 '리바운드'에서 찾을 수 있었다. 평범한 인물들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시선이 '왕과 사는 남자'에 제격이라 판단했다. 임 대표는 "비극을 겪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세상을 향한 연출자의 시선이 무엇보다 중요했다"며 "'리바운드'를 보자마자 이 작품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과 일치한다고 확신했다"고 밝혔다. 이어 "처음 마주한 장 감독님께서 작품이 품은 메시지를 구체적인 언어로 정확히 짚어내 놀랐다. 완벽한 적임자를 찾았다는 생각에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취중 전화와 박지훈의 슬픈 눈빛

배우 캐스팅은 험로를 걸었다. 유해진을 1순위로 낙점했지만, 실제 합류 여부는 막판까지 불투명했다. 교착 상태를 단숨에 깬 건 장 감독의 취중 전화였다. 임 대표는 "장 감독님께서 유해진 선배와 방송을 마치고 술에 취한 채로 전화해 '해진이가 엄흥도를 하면 너무 좋을 것 같은데, 시나리오를 재미있게 읽은 것 같더라'라며 기뻐했다. 그 들뜬 목소리를 듣는 순간, 멈춰 있던 제작에 가속도가 붙었다"고 돌이켰다. 이어 "촬영 직전 장 감독님께서 '현장에서 해진이가 나를 못살게 굴면 어떡하냐'라며 평생의 우정이 깨질까 봐 전전긍긍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며 웃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 컷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 컷

단종 역 캐스팅에는 애초부터 확고한 기준을 세웠다. 대중에게 익숙한 청춘스타가 아닌, 낯설지만 깊이 있는 얼굴을 찾고자 했다. 임 대표는 "쇼박스 투자팀과 드라마 '약한 영웅' 속 연기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박지훈으로 낙점했다"면서 "눈에 물기가 어려 있는 슬픈 눈빛이 저는 물론, 장 감독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말했다.

이들의 열연은 후반부로 갈수록 진가를 발휘한다. 특히 결말부의 활시위 장면은 많은 관객의 뜨거운 호응을 끌어냈다. 임 대표는 "과거 회상 몽타주를 철저히 배제하고, 핏발 선 배우들의 민얼굴 하나로 승부수를 던졌다"며 "유해진 선배가 장 감독님의 '컷' 사인에도 멈추지 않고 처절한 감정 연기를 이어갈 만큼 극에 깊이 몰입했다. 끝난 줄 안 스태프가 자리를 뜨려 해 그 팽팽한 흐름이 깨질까 봐 조마조마했다"고 돌이켰다. 그는 카메라 뒤에서 이 연기를 지켜보며 흥행을 직감했다. 임 대표는 "배우의 얼굴 하나로 모든 서사가 닫히는 순간을 목도했다"며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 컷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 컷
스크린에 '애도'를 새기다

웃음과 일상으로 빚어낸 서사의 출발점은 현대 사회의 상흔이었다. 잇단 거대 비극을 겪어낸 보통 사람들의 '기억법'을 스크린으로 묻고 싶었다. 임 대표는 "세월호 참사 당시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이 뉴스를 보며 고요하게 울음을 참아내던 풍경을 잊지 못한다"며 "모두가 '잊지 말자'라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정작 어떻게 기억해야 할지 방식을 찾지 못하고 너무 쉽게 비극을 흘려보내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단종의 비극을 마주한 촌부의 찢어지는 감정도 우리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관객 스스로 깊은 여운을 느끼고 일상에서 조금 더 나은 어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강조했다.

개봉 전 일반 시사회 맨 뒷자리에서 관객과 함께 영화를 보던 날, 그는 수백 번도 더 복기했을 활시위 장면에서 눈시울을 붉혔다. 스크린의 슬픔이 객석의 뜨거운 반응으로 고스란히 전이되는 순간을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다. 임 대표는 "8년 전 기획 단계부터 품었던 애도의 본질이 어떤 강요도 없이 온전히 객석에 가닿았음을 목격했다"며 "1000만이라는 숫자를 넘어 이토록 많은 관객이 영화의 진심에 공명했다는 사실 자체가 거대한 기적"이라고 강조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제작사 온다의 임은정 대표가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동주 기자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제작사 온다의 임은정 대표가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동주 기자

임 대표의 시선은 이제 다음 이야기를 향한다. 차기작에서도 사람 냄새 나는 기조를 이어간다. 좇는 가치는 맹목적인 온정주의와는 궤를 달리한다. 그는 "단순한 감동이나 일회성 위로를 던지는 데 그치지 않겠다. 온기를 전하더라도 명확한 '이유'가 존재하는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겠다"고 말했다. 궁극적인 지향점은 관객 스스로 소중한 감정을 되뇌게 하는 영화다. 현대인들이 속도와 효율에 매몰돼 놓쳐버린 감정을 복원해 인간 본연의 가치를 일깨우고자 한다. "상처 입은 시대를 통과하는 이들에게 단단한 위로를 건네고 연대의 손길을 내밀고 싶다. 이것이 다음 스크린에 새길 우리의 변치 않을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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