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의 한일전이 열린 도쿄돔은 뜨거운 승부의 장이어야 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목격된 일본의 모습은 승부를 떠나 상대국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조차 실종된 ‘안하무인’ 그 자체였다. 관중석의 욱일기부터 조직위의 부적절한 공지문까지, 일본의 도를 넘은 ‘홈 텃세’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한일전이 종료된 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조직위 측이 내린 공지가 실소케 했다. 조직위는 “천황 폐하의 방문에 따라 8일 특정 시간대에는 관계자 출입구에서 VIP 게이트 구간의 통행을 전면 금지한다”라고 통보했다.
문제는 용어 선택이다. 자국 내에서 사용하는 극존칭인 ‘폐하’라는 단어를 타국 국가대표팀과 외신 기자들이 포함된 공식 공지문에 그대로 사용한 것. 국왕의 방문에 따른 보안 통제는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라 해도, 국제대회 운영 주최가 중립적인 용어 대신 자국 중심적인 표현을 강요한 것은 명백한 외교적 결례이자 상대국을 무시하는 처사다. 대한민국 ‘폐하’는 아니지 않나.
경기장 안팎의 상황은 더 점입가경이었다. 이날 도쿄돔 관중석 곳곳에는 과거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를 지참한 팬들이 포착됐다. 스포츠 현장에서 정치적 상징물 사용을 엄격히 금지하는 국제관례를 비웃듯, 일본 관중들은 몰상식한 응원 행태를 반복했다.
현장의 질서를 유지해야 할 기자석과 인터뷰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 대표팀의 공식 인터뷰가 진행되는 엄숙한 시간에 일본 대표팀 유니폼을 버젓이 입고 들어온 일본 기자의 모습은 ‘기자 윤리’ 이전에 ‘상도덕’의 문제였다. 상대국에 대한 배려도, 취재원인 한국 선수단에 대한 예우도 찾아볼 수 없는 오만한 태도였다.
일본은 이번 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자신하며 ‘야구 종가’로서의 자부심을 내비쳐왔다. 현장에서 보여준 행태는 ‘야구 변방’보다 못한 수준이다. 자국의 상징을 타국에 강요하고, 금지된 상징물을 묵인하며, 취재 현장의 기본 매너조차 지키지 않는 모습에서 ‘신사적인 일본 야구’의 흔적은 찾기 힘들었다.
한일전은 늘 치열하다. 그러나 그 치열함은 그라운드 위에서 페어플레이로 빛나야 한다. 장외에서 벌어지는 이러한 저열한 심리전과 무례한 공지는 일본 야구의 수준을 스스로 갉아먹는 행위이지 않나. WBC라는 이름에 걸맞은 품격 있는 운영과 상대국에 대한 진정성 있는 예우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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