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북 모텔 연쇄살인 피의자 김모씨가 2번째 살인을 저지른 당일 인근 치킨집에 접수된 주문 내역. 22개 메뉴가 범행 현장으로 주문됐다. 나민서 기자
서울 강북구 모텔 연쇄살인 피의자 김모씨의 기이한 행적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김씨는 두 번째 살인을 저지른 당일 모텔로 치킨집 메뉴 22개를 주문 후, 배달된 음식은 집에 가져갔다. 피해자를 모텔로 유인한 데엔 배달음식을 챙기려던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배달 시점은 범행 직후로 추정되는데, 음식을 가져다준 배달기사에 따르면 김씨는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고 한다.
5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김씨가 범행을 저지른 지난달 9일 오후 9시 23분 강북구 한 치킨집에는 사건이 일어난 모텔 객실로 22개 메뉴 주문(13만1,800원어치)이 접수됐다. 선택된 메뉴는 4가지 맛의 치킨 2마리 반, 떡 추가 2회, 치즈볼 2개, 떡볶이 2개, 치즈스틱 1개, 즉석밥 1개, 감자튀김 1개, 제로콜라 1.25ℓ·500㎖ 각 1병, 소스 5개 등이었다. 여기엔 240g 병에 담긴 소스도 2개 포함됐다. 배달비는 4,100원이었다. 주문자는 결제 방법으로 '카드 현장결제'를 선택했다.

강북 모텔 연쇄살인 피의자 김모씨가 2번째 살인을 저지른 당일 인근 치킨집에 접수된 주문 내역. 22개 메뉴가 범행 현장으로 주문됐다. 치킨집 업주 제공
주문받은 음식을 전달한 배달기사 A씨는 이날 한국일보에 "주소를 아무리 봐도 모텔이고 객실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최대 6명 정도일 텐데, 13만 원어치 치킨을 시킨 게 이상했다"며 "(여럿이 사는) 가정집인데 주소를 잘못 적었나 의심도 했다"고 말했다. 또 "배달량이 워낙 많아 배달비 보너스를 받았던 터라 (그날 일을) 기억한다"고 덧붙였다.
오후 10시 11분, 치킨을 받으러 나온 건 피의자 김씨 혼자였다. 김씨는 얼굴이 살짝만 보일 정도로 문을 빼꼼히 열고, 손을 내밀어 결제를 한 후 음식을 받았다고 한다. 메뉴가 워낙 많아 3봉지에 담겨 있었는데, 김씨 혼자서 양손에 들었다. A씨는 "가족여행인가 했는데 부모님이 안 나오시고 여자 한 명만 나와,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며 "양이 많으면 다른 사람이 함께 받아주거나 하는데, 그냥 혼자서 3봉지를 받아 한 번에 들고 갔다"고 했다. 이어 "(김씨가) 양손을 써야 하니까 휴대폰을 안 들고 있었다. 딱 카드 한 장 들고 왔다"고 부연했다. 13만 원이 넘는 치킨값은 이날 사망한 피해자의 카드로 결제됐다.
김씨는 피해자에게 약물을 먹인 뒤 직접 치킨을 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배달이 완료된 지 8분 만에 현장을 빠져나온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씨가 음식을 받을 때 표정은 "아무 생각 없어 보였고, 배달받는 다른 사람들과 별다를 바 없었다"는 게 A씨의 기억이다. A씨는 또 "(김씨가) 거의 밖으로 나오지 않아 옷차림도 기억나지 않고, 모텔방 내부도 잘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방 안에서는 다른 기척도 없었고, 김씨가 다른 사람을 부르지도 않았다고 한다.

김씨가 지난달 9일 모텔을 나온 뒤 자신이 약물을 먹여 의식을 잃고 결국 사망한 피해자에게 남긴 메시지. 남언호 법률사무소 빈센트 변호사 제공
김씨는 오후 10시 19분쯤 피해자를 두고 모텔을 빠져나왔다. 피해자 유족 측을 대리하는 남언호 법률사무소 빈센트 변호사에 따르면, 이후 김씨는 10시 22분 피해자에게 택시에 탄 사진을 전송한 뒤 "전 (택시) 타서 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피해자가 의식을 잃은 사실을 몰랐다는 증거를 만들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김씨와 피해자는 이미 저녁을 먹고 모텔에 입실한 상태였고, 배달시킨 치킨 등은 김씨가 자신의 집으로 가져와 먹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일보가 입수한 송치결정서에는 "피의자(김씨)는 피해자들에게 고가의 데이트 비용을 전적으로 부담하게 하거나 배달 음식을 주문하게 했으며, 먼저 모텔 투숙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경제적 이익을 제공받았다"는 내용이 적시됐다. 경찰은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김씨가 고급 맛집, 호텔 방문, 배달 음식 등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피해자들을 이용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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