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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단독] 단종 몰아낸 계유정난 공신 부인들, 부귀장수 빈 불상 일본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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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3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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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공개된 조선 초 15세기 금동지장보살좌상의 정면. 손금과 발금이 묘사됐고 가사 자락, 연화대좌 등의 세부에도 섬세한 장식무늬가 베풀어져 있다. 소장자 제공

지난 1월 공개된 조선 초 15세기 금동지장보살좌상의 정면. 손금과 발금이 묘사됐고 가사 자락, 연화대좌 등의 세부에도 섬세한 장식무늬가 베풀어져 있다. 소장자 제공


계유년인 1453년 11월, 건국 60년을 갓 넘긴 조선왕조에 정변이 일어났다. 4대 세종의 차남이자 5대 문종의 동생인 수양대군 이유(세조)가 12살짜리 조카인 6대 단종의 실권을 빼앗는 쿠데타를 벌였다. 단종을 보필하던 조정 중신들을 죽이고 정권을 탈취한 것이다. 이유는 2년 뒤 세조 임금이 됐고, 유배한 조카에게 사약을 내린다. 최근 1천만 관객을 눈앞에 둔 영화 ‘왕과 사는 남자’로 다시 조명되고 있는 계유정난이다. 그로부터 19년 뒤 정변에 가담한 공신들의 부인들끼리 부귀와 장수를 빌며 바친 지장보살 불상이 일본에서 발견됐다.

조선시대 불교미술 전문가인 송은석 동국대 와이즈캠퍼스 교수는 지난 1월 일본의 한 고미술 수집가 의뢰로 도쿄의 한 호텔에서 조선 전기 15세기 금동지장보살좌상을 확인하고 판독 작업을 벌였다. 당시 한겨레 취재진도 동행해 지켜봤다. 전체 높이 20.5㎝, 무릎 너비 9㎝, 대좌 높이 4.5㎝, 밑면 좌우폭 11.5㎝, 밑면 전후폭 9.0㎝로 동합금에 도금한 불상이다. 외형상 중국 원나라와 명나라 때 유행한 티베트 불상 양식이 고려시대 전통 불상 양식과 어우러졌고, 손금과 발금, 손톱 마디, 가사 깃과 소매 등의 꽃·덩굴무늬 등이 유례없이 정교한 수작이다.

금동지장보살좌상의 옆면. 손금과 발금이 묘사됐고 가사 자락, 연화대좌 등의 세부에도 섬세한 장식무늬가 베풀어져 있다. 소장자 제공

금동지장보살좌상의 옆면. 손금과 발금이 묘사됐고 가사 자락, 연화대좌 등의 세부에도 섬세한 장식무늬가 베풀어져 있다. 소장자 제공


관심은 불상 몸체 안에 든 예물인 복장물에 쏠렸다. 송 교수가 불상 아래 바닥판을 떼어 오색실로 묶인 후령통(불상의 기운을 상징하는 오곡, 보석, 발원문 등의 예물용기) 주머니와 거울, 다라니경문 등으로 이뤄진 복장물을 꺼내고 비단천에 쓴 발원문을 판독했다. 흥미진진한 사실이 드러났다. 성화 8년인 1472년 5월에 고태필의 부인 김옥금 등 계유정난 원종공신들의 부인 10여명이 부귀영화와 무병장수를 빌면서 불상을 시주한 내용이 250자 이상 빽빽하게 한자로 적혀 있었다. 최고급 비단에 최고 수준의 글씨체로 쓴 왕실급 발원물로, 모든 시주자가 여성으로 추정됐다. 발원문은 가로 24㎝, 세로 28㎝ 푸른빛 명주천에 붉은 주사 안료를 묻혀 정갈한 해서체 글씨로 적었다.

‘나의 복락과 수명이 길게 이어져, 부귀영화를 누리며, (…) 사백네가지 병과 삼재와 팔난이 한순간에 모두 소멸되기를 바랍니다. (…) 다음 생에는 여자의 몸 대신 남자의 몸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버지 고득종과 어머니 모니비의 영가가 번뇌의 세계를 벗어나 정토에 태어나기를 바랍니다.’

불상의 몸체 안에서 나온 복장물의 일부. 불상의 내부 오장육부 장기 성격을 지닌 후령통과 이를 싼 주머니천, 각종 공양물이 보인다. 노형석 기자

불상의 몸체 안에서 나온 복장물의 일부. 불상의 내부 오장육부 장기 성격을 지닌 후령통과 이를 싼 주머니천, 각종 공양물이 보인다. 노형석 기자

복장물 일부. 콩 등 곡식 씨앗과 거울, 오색천이 들어간 용기 등이다. 노형석 기자

복장물 일부. 콩 등 곡식 씨앗과 거울, 오색천이 들어간 용기 등이다. 노형석 기자


시주자들은 계유정난 당시 세조의 쿠데타를 도와 후대 권세를 누린 좌익원종공신들의 배우자 여성들이다. 세조와 성종의 신임을 받았던 원종공신 고태필의 부인 김옥금이 대표 시주자로 나오고, 고태필의 동생 고태보, 같은 원종공신 오효영, 고태익, 최유지, 이계산, 조원지, 김금음동의 부인들이 함께 발원한 시주자로 적혀 있었다. 복록과 수명의 연장, 부귀, 득남, 무병, 극락과 미륵정토 왕생, 남성으로 태어나기, 시부모의 왕생극락, 친척들의 안락 등을 기원하며 조성한다는 사유를 밝혀놓았다.

고태필은 탐라(제주) 출신으로 일본과 중국을 오간 외교사절과 전라·황해도관찰사, 한성부좌윤 등 행정관료로 활약했다. 1451년 문과 급제하고, 1455년 계유정난 원종공신 2등급인 좌익원종공신에 올랐다. 1472년 5월16일 황해도관찰사로 임명됐으나 닷새 만에 어머니가 병들고 늙었음을 이유로 물러났다. 사직과 동시에 어머니에 대한 효심을 담아 불상을 발원·제작한 것으로 추정이 가능하다. 그는 이후 1474년 10월6일 다시 황해도관찰사로 제수됐다.

고태필 등 계유정난 공신들의 배우자들이 모여 부귀영화와 무병장수를 기원한 내용을 담은 발원문. 푸른 바탕의 명주천에 최고 수준의 정갈한 해서체 글씨로 썼다. 노형석 기자

고태필 등 계유정난 공신들의 배우자들이 모여 부귀영화와 무병장수를 기원한 내용을 담은 발원문. 푸른 바탕의 명주천에 최고 수준의 정갈한 해서체 글씨로 썼다. 노형석 기자


아버지 고득종(1388~1452)도 태종~문종 치세기에 외교사절과 한성부판윤, 동지중추부사 등을 지낸 중신인데, 계유정난으로 몰락한 안평대군의 측근이었다. 안평대군의 꿈을 화가 안견이 그린 명작 ‘몽유도원도’(일본 덴리대 소장)에 찬시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발원문 덕분에 제작연대가 분명해 몇 안 되는 조선 초기 불상의 편년 기준작이 나왔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송 교수는 짚었다. 현재 전해지는 조선 초 소형 금은·금동불상 가운데 연대가 확인된 불상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1점, 통도사 성보박물관 소장품 1점, 북한 조선중앙역사박물관 소장품 2점에 불과하다.

시주자 가운데 남성과 승려가 한 사람도 없고 모두 사대부가 여성들이란 사실이 주목된다. 2024년 3~6월 경기 용인 호암미술관은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이란 제목의 기획특별전을 통해 여성과 한·중·일 불교미술 관계를 집중 조명한 바 있다. 이번 불상의 발견으로 전시 뒤 본격화한 관련 연구에 소중한 사료가 추가로 확보된 셈이다.

지장보살좌상 주위로 불상 몸체 안에서 나온 후령통, 다라니경문, 천으로 된 충전물 등을 꺼내놓은 모습. 노형석 기자

지장보살좌상 주위로 불상 몸체 안에서 나온 후령통, 다라니경문, 천으로 된 충전물 등을 꺼내놓은 모습. 노형석 기자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794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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