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치킨게임의 전운 (2006년 ~ 2007년 초)
대만의 공격적인 투자: 대만의 반도체 기업들(난야, 파워칩, 프로모스 등)은 대만 정부의 전폭적인 자금 지원을 바탕으로 생산 라인을 대대적으로 증설함
윈도우 비스타(Vista)의 저주: 당시 마이크로소프트가 고사양을 요구하는 새 운영체제 '윈도우 비스타'를 출시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PC 메모리(DRAM) 수요가 폭증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지배적이었음
공급 과잉의 시작: 하지만 윈도우 비스타는 시장에서 참패했고, 수요는 기대에 한참 못 미쳤습니다. 반면 대만, 일본, 독일(키몬다) 등 전 세계 반도체 기업들이 이미 생산량을 미친 듯이 늘려놓은 탓에 심각한 공급 과잉이 발생하게 됨
1차 치킨게임: 피 튀기는 출혈 경쟁 (2007년 ~ 2009년)
2007년: 가격 폭락과 삼성의 역공
DRAM 가격이 폭락하기 시작함. (예: 1달러가 넘던 512MB DRAM 가격이 0.5달러 밑으로 추락).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기업들은 생산량을 줄여 가격을 방어해야 함.
하지만 업계 1위였던 삼성전자는 오히려 생산량을 더 늘려버리는 초강수를 둠. 압도적인 미세공정 기술력과 막대한 현금 보유량을 무기로, "경쟁사들이 말라 죽을 때까지 원가 이하로 팔겠다"는 진정한 의미의 치킨게임을 시작한 것.
하이닉스(현 SK하이닉스) 역시 뼈를 깎는 원가 절감으로 버티기에 들어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강타
설상가상으로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며 PC 수요가 곤두박질 침. 모든 반도체 기업이 적자를 냈지만, 원가 경쟁력이 떨어졌던 대만과 유럽 기업들의 출혈이 훨씬 컸음



2009년: 첫 번째 희생자 발생
결국 버티지 못한 세계 4위의 독일 반도체 기업 키몬다(Qimonda)가 파산함. 대만 기업들 역시 빈사 상태에 빠졌고, 대만 정부는 이들을 통폐합하려 했으나 실패함. 1차전은 원가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한 한국 기업들의 승리로 마무리되는 듯 했음
2차 치킨게임: 일본의 최후의 발악 (2010년 ~ 2012년)
2010년: 잠시 동안의 평화와 엘피다의 도발
키몬다 파산 후 공급이 줄어들며 2010년 잠시 반도체 가격이 회복되고 흑자 전환이 이루어짐. 이때 일본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던 엘피다(Elpida)가 대만 기업들과 연합하여 타도 삼성을 외치며 다시 생산량을 대폭 늘리기 시작함
2011년: 삼성의 확인 사살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며 PC DRAM 수요가 다시 꺾이고 가격이 폭락함. 엘피다의 도전에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30나노급 미세공정 양산에 돌입하며 원가를 더욱 극단적으로 낮춰버림.
아무리 가격이 떨어져도 삼성은 흑자를 내거나 버틸 수 있었지만, 기술력에서 뒤처진 엘피다와 대만 기업들은 팔면 팔수록 막대한 적자가 쌓이는 구조가 되었음. 일본 정부가 엘피다에 막대한 구제금융을 쏟아부었지만, 밑빠진 독에 물 붓기

2012년: 종전과 엘피다의 몰락
결국 2012년 2월, 누적된 적자를 감당하지 못한 일본 엘피다가 파산 보호 신청을 하며 백기를 듬. 대만 기업들(파워칩, 프로모스 등)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범용 PC DRAM 시장에서 철수하거나 파운드리(위탁생산) 및 특수 메모리 기업으로 노선을 변경하며 항복을 선언함
치킨게임의 결과 및 영향
이 무자비한 생존 게임의 결과는 글로벌 반도체 지형을 영구적으로 바꿔놓았음
한국의 완승 및 과점 체제 확립: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살아남은 것을 넘어 시장을 완벽히 장악 이후 엘피다를 인수한 미국의 마이크론(Micron)과 함께 '삼성-SK하이닉스-마이크론'이라는 견고한 3강 과점(Oligopoly) 체제가 완성 됨. 이들은 이후 공급량을 조절하며 막대한 영업이익을 누리게 됨
일본 메모리 반도체의 몰락: 1980년대 전 세계 시장의 80%를 장악했던 일본의 DRAM 산업은 엘피다의 파산과 함께 역사 속으로 완전히 퇴장
대만의 전략 수정: 메모리 치킨게임에서 처절하게 패배한 대만은 이후 TSMC를 필두로 한 '파운드리(비메모리 위탁생산)' 분야에 국가적 역량을 올인하게 되는 계기가 됨
결과적으로 2000년대 후반의 치킨게임은 삼성전자의 '압도적인 기술 격차'와 '탄탄한 자금력'이 어떻게 시장을 평정하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경영 사례로 남아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