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안 풀릴 때는 관악산에 가라'는 한 역술인의 발언... 관악산에 생긴 '새로운 서사'

▲ 인스타그램에 '관악산'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여러 컨텐츠들. 관악산에 몰린 인파를 담은 것이 대부분이고, '운이 안 풀리면 관악산으로 가라는 말에 난리가 났다'는 내용을 담은 영상도 있다.
ⓒ 인스타그램 갈무리
관악산에 오르는 젊은 얼굴들
최근 SNS에 유독 자주 등장하는 산이 있다. 바로 관악산이다. 피드에 올라오는 관악산의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정상인 연주대에 가까워질수록 좁은 계단을 따라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정상에 오르면 그곳은 마치 작은 광장처럼 북적거린다. 연주대 비석 앞에도 긴 줄이 늘어서 있다. 비석을 배경으로 인증 사진을 찍기 위해서다.
사실 관악산은 새로운 장소는 아니다. 서울 근교에 있는 여러 산 중 하나일 뿐이고, 등산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특별히 독보적인 산으로 여겨지진 않는다. 무엇보다 등산은 전통적으로 중장년층의 취미생활 정도로 여겨져 왔다. 그런데 관악산 등반이 유행처럼 번지는 이 현상의 중심에는 젊은 층이 있다. 왜 갑자기 관악산 등반이 뜨는 것일까?
살펴보니 하나의 계기가 있긴 하다. 지난 1월 28일, 유명 역술가 박성준이 <유 퀴즈 온 더 블럭> 방송에 나와 '관악산의 정기가 좋으니 운이 안 풀릴 때 가보라'고 언급한 것이다. 방송이 때마침 연초에 방영되면서 새해에 좋은 기운을 받고 싶어 하는 심리를 자극한 듯하다. 영상을 본 사람들이 관악산을 보다 활발히 찾기 시작했고, 그 장면을 SNS에 올리면서 쇼츠와 릴스를 통해 빠르게 퍼졌다. 그렇게 '관악산 등반 인증'이라는 유행이 번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등산은 원래 운동이나 취미의 영역이다. 그런데 현재 관악산을 오르는 일은, 단순히 이에 그치지 않고 서사의 영역에 가까워진 듯하다.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은 '정기를 받는 산'이라는 '이야기'이다. 북한산의 절경, 설악산의 비경이 아니라, 관악산의 '기운'이 콘텐츠가 된 것이다. 산 자체보다 그 산에 덧씌워진 이야기, 즉 상징성이 소비되는 것이다.

▲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방송 화면 캡처
ⓒ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왜 하필 '정기'일까
이는 불안의 시대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취업, 주거, 관계, 미래 전망까지 어느 하나 낙관하기 어려운 세대에게 '좋은 기운을 받는다'거나 '운이 좋아진다'는 말은 누구나 한 번쯤 기대고 싶어지는 말이다. 노력이나 성취가 아닌, 보이지 않는 어떤 에너지에 기대어 마음을 의탁하는 방식. 어쩌면 불안을 해소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인증 글을 보면 소원, 다짐, 기도 같은 문장이 함께 올라온다. "올해는 잘 풀리게 해 주세요", "취업하게 해 주세요" 같은 문장들이다. 산 정상이 풍경을 감상하는 곳이 아니라 개인의 소원을 빌고 걱정을 내려놓는 작은 의식의 장소가 된 셈이다.
유행은 쉬울수록 번진다
관악산이 서울 남쪽에 위치한 접근성 좋은 산이라는 점도 한몫한다. 대중교통으로 편하게 갈 수 있고 특별한 등산 장비도 필요하지 않다. 비교적 짧고 완만한 코스가 있어 초보자도 무리 없이 오를 수 있다. 올라가고 내려오는 데 반나절이면 충분해 주말 몇 시간만 내면 가볍게 다녀올 수 있다.
좋은 운을 끌어들이고 싶다는 욕망이 다소 미신적으로 보일지라도,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법이 등산 한 번이라면 부담 없이 받아들여진다. 역술인을 찾아갈 필요도 없고 복채를 낼 필요도 없지 않은가. 운동 삼아 산을 올라가기만 하면 그뿐이다. 유행이란 자고로 실행 난이도가 낮을수록 빠르게 번진다.
생각해 보면 한국 사회에서 좋은 기운, 혹은 정기를 받는다는 개념은 딱히 낯설지 않다. 다만 그것이 SNS의 알고리즘을 타고 확산된다는 점이 새롭다. 여기에는 SNS를 기반으로 한 동조 심리도 작동한다. 누군가 갔다 왔다는 후기가 쌓이면, 과학적 근거와는 별개로 '어쩐지 나도 가봐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된다. 이때 중요한 건 효과의 진위가 아니라 참여 경험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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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47/0002506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