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누적 관객 수 670만 명을 돌파하며 천만 고지를 향하는 중이다. 2년 전 영화의 배경인 영월 청령포를 찾았을 때 느꼈던 그 적막하다 못해 스산한 공기가 지금도 생생하다. 강원도 산골까지 끌려와 배 없이는 오도 가도 못할 섬에 갇혔던 어린 왕의 한 서린 유배지. 그런 청령포가 이제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니 대중문화 콘텐츠 하나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이토록 지대하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해외 관광객 유입도 기대해볼 만한데 영화가 터준 물꼬를 영월군이 어떤 식으로 이어갈지 모르겠다. 일시적인 유행에 그칠지, 꾸준히 이어갈지는 결국 얼마나 기본에 충실한지에 달려 있지 않을까.
K-콘텐츠가 세계적인 관심을 받을수록 기본은 더욱 중요해진다. 최근에 본 기본에 충실한 작품 몇 편 추천해본다. 우선 웨이브 다큐멘터리 <공양간의 셰프들>. 사찰 음식 명장들이 모여 '공양'의 참된 의미를 짚어보는 기획이다. 얼마 전부터 사찰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릇된 인식도 덩달아 생기고 있는데 여섯 분의 명장 스님이 한자리에 모여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삶의 지혜를 나눈다. 정갈하니 군더더기 없는 구성이니 꼭 한번 보시길 권한다.

드라마는 tvN <언더커버 미쓰홍>. 16부작인데 적어도 13회까지는 흐름이 괜찮다. 극을 이끄는 박신혜와 하윤경의 합이 좋고 새로운 얼굴들이 눈에 들어온다. SBS <귀궁>에 이무기 '비비'로 등장해서 얼굴을 알린 조한결이 이번에는 '알벗 오'라는 맞춤옷을 제대로 입었다. 그리고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강노라' 역의 최지수와 위기관리본부 과장 '이용기' 역할의 장도하. <언더커버 미쓰홍>이 이 배우들의 연기 인생에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드라마 한 편을 더 꼽자면 넷플릭스 <레이디 두아>. 허세 가득한 명품 세계가 배경이라서 호불호가 나뉠 수 있는데 일단 신혜선이 배역을 찰떡같이 소화하고 이준혁의 절제된 연기도 마음에 든다. 자칫 과욕을 부려 상대 배우의 기운을 침범하는 연기자들이 있는데 선을 지킬 줄 알아서 좋다. 8부작이어서 지루할 틈이 없고 추리하는 재미, 퍼즐을 맞추는 재미도 쏠쏠하다.

예능으로는 tvN <보검 매직컬> 4회. 곽동연이 케잌을 만들기에 멤버 중 누군가의 생일인가 했다. 그런데 첫날 찾아온 손님 라옥자 님이 무심코 생일이라고 하셨던 것을 흘려듣지 않고 축하해 드리려고 준비했던 것. 셋이 직접 댁으로 찾아가서 초에 불을 붙이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드렸다. 라옥자 님에게는 두고두고 잊지 못할 따뜻한 추억이 되지 않을까?
2017년 tvN <우리들의 인생학교> 때부터 지켜본 곽동연은 상대를 빛나게 하고 장점을 끌어내는 재주가 있다. 나의 기준은 늘 같다. '성의껏 최선을 다하는가'와 '개념이 있는가'. 이와 같은 개념 있는 행보는 시청자에게 남 같지 않은 내적 친밀감을 준다.

심형탁이 바로 그렇다. 2014년 <나 혼자 산다>에서 고물상을 운영하는 부모님을 위해서 애쓰던 모습부터 그 이후에 어머니로 인해 전 재산을 잃고 절연하기까지의 과정. 그 지난했던 날들을 지켜본 시청자라면 심형탁이 잘되길 바라지 않을 수 없을 거다. 다행히 '사야'라는 복덩이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또 다른 슈퍼 복덩이 '하루'까지 얻었다. 최근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공개한 하루의 돌잔치는 허례허식이라곤 없이 진정으로 가까운 인연들만 초대한 소박한 자리였다.
하루네 가족을 보면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유튜브 채널 '조동아리'에서 공개된 김수용의 모친상 소식에 일본에서 곧장 날아온 일화 또한 인상적이다. 급히 사 입느라 상표도 떼지 못한 검은 양복 차림으로 자정을 넘어 빈소에 도착한 정성. 이런 게 바로 개념이 아니겠나.

반면에 대중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개념 없는 행태도 적지 않다. 최근 배우 김지호가 도서관 대여 도서에 볼펜으로 밑줄을 그은 사진을 SNS에 올려 지탄을 받았다. 내 것이 아닌 물건에 흠집을 내면 안 된다는 건 기본 상식이 아닌가. 신동엽의 유튜브 채널 '짠한형'에 출연한 이재룡, 안재욱, 윤다훈, 권상우의 행보도 아쉽다. 음주운전이나 폭행 등으로 물의를 빚었던 이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희희낙락하는 장면은 대중을 너무 만만히 보는 게 아닌가 싶다.
K-콘텐츠가 뜨거운 관심을 받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기본'이다. 연예계 선배 소리를 듣는 이들부터 제발 개념 좀 챙기자. 격에 맞게 행동하고 상대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게 그렇게 어렵습니까?
정석희 TV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https://v.daum.net/v/20260301131902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