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관료이자 조선귀족 작위를 받은 친일반민족행위자. 사도세자(대한제국 장조/조선 장종)의 3남인 은언군의 양현손자, 상계군의 양증손자, 익평군의 양손자, 덕안군의 양자이다. 은언군의 제사를 받드는 봉사손이었다. 생부 쪽으로 따지면 중종의 14대손이 된다.
매국노의 대명사 이완용과 동명이인이다. 다만 이름 끝 글자의 한자가 다르다. 흔히 우리가 아는 이완용은 李完用으로 쓰지만 이 문서의 이완용은 李完鎔으로 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두 이완용 모두 친일반민족행위자다.

1910년 10월 7일에 일본 정부에게서 훈1등 자작 작위와 은사금 3만원을 받았다. 1912년에는 일본 정부에게서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다.
이후 선대 왕들의 생일에 선원전을 봉심하고 종척집사, 장의위원, 수빈원 등 이왕가 내의 의례 행사들에 참여하며 그럭저럭 잘 살았다. 1918년에는 아들의 결혼으로, 1919년에는 모친상으로 순종에게서 각각 100원과 200원을 받았다.
부인 문화 류씨 (1873 ~ ?) 사이에서 아들 이해만을 얻었다. 한편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첩 사이에서 1899년 2월 20일에 아들 이해구를 얻었다.
그러나 이해만은 1936년에 자식 없이 죽었다. 그래서 철종의 생가 누동궁 사손 이해승의 아들 이택주가 사후양자로 입양왔다. 이해만이 이완용보다 먼저 죽었기 때문에 이완용 사후 이택주가 바로 자작 작위를 물려받았다.
이택주는 6.25 전쟁 때 사망했다. 슬하에 이우석, 이우용 두 아들을 두었으며 현재는 이우석의 장남 이성기가 은언군가의 종손으로 있다.
그 밖의 다른 가문의 일원들에 대해선 알려진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