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반민족행위자, 매국노. 의붓동생으로 이완용이 있다.
조선 후기의 친러 성향의 개화파 정치가로 동생인 이완용과 아관파천을 일으켜 친일 내각을 붕괴시키지만 러일전쟁 직후 친일로 전향하며 헤이그 특사 사건 직후 고종을 압박하는 등의 친일 행적을 이어간 인물이다. 매국행위에 있어 동생에 결코 뒤지지 않지만 동생이 워낙 악질이라 그런지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편이다.
하지만 동생이 매국행위로 악명을 떨치기 이전부터 구설수를 오간 탐관오리의 전형을 보여주는 인물로 여색을 밝히는건 기본이고 뇌물을 통한 매관매직, 아부를 하는 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거기다 형제애가 두터웠는지 이완용과는 항상 의견을 같이 하고 쌍으로 엮이는데 나중에는 총리대신의 오른 동생의 빽으로 이완용 내각의 국방부 장관인 군부대신이 된다.
경술국치 이후 조선귀족 남작 작위를 받았고 영친왕의 결혼식에도 참석했다. 또 조선총독부에서도 일하며 매년 3000원씩 수당을 받았다. 그 후 1937년 4월 도쿄 중의원 선거에 나가는 박춘금과 이선홍을 후원하기 위해 당선후원회를 조직하고 회장을 맡았다.
1939년 당뇨로 향년 85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작위는 손자 이병옥이 이어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