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한성판윤, 의정부 찬정 등을 거쳐 1905년 법부대신(지금의 법무부 장관)과 군부대신(지금의 국방부 장관)을 역임하였는데 이완용이 주도한 을사조약 체결에서 적극적으로 지지 의사를 밝힘으로서 을사오적이 되었다. 때문에 조선 민중들과 의사의 표적이 되어서 습격을 받거나 위협을 받았지만 살아남았고 이후로는 일본군을 호위 대동하여 출퇴근을 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 때 조선총독부로부터 훈1등 자작 작위를 받았으며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이 되었고 1919년 사망했다.
이근택의 아들 이창훈(1890~1947)는 아버지의 사후 작위를 습작받았고 그 아들인 이원구(1912~1972)는 1949년 반민특위 조사 때 기준으로 충청남도 공주 공주중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으며, 반민특위의 조사를 받았으나 아버지가 광복 후에 사망하여 습작을 받지 않아 무혐의로 풀려났고, 1949년부터 1971년까지 공주사범대학 교수를 역임하였다. 그리고 이원구의 아들, 즉 이근택의 증손자인 이상우는 1963년부터 공주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1995~1998년 공주대학교 총장을 역임하다가 1998년 사망했고, 그 동생 이춘우는 공주대 물리학과 명예교수를 역임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