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종관은 일제시대 전형적인 대지주로서
조선인 소작농들을 착취하여 부를 쌓았다.
음주가무와 축첩을 좋아하며 재력과 여성편력이 남달랐음을 방증한다



뒷뜰 역할을 하는 과수원을 합치면 8천 평, 순수한 대지가 3천 평이나 되는 집이었다. 해자 같은 도랑, 솟을 대문, 그 안에 잘 지은 조선식 건물군. 전화기를 둔 전화방과 사진 현상용 암실도 냈다. 사랑채 왼쪽의 아래채에는 여러 명의 소실들이 살았다.
육종관은 이 대저택을 자신의 왕국처럼 다스렸다. 사위가 대통령이 된 뒤에도 그는 자신을 굽히지 않고 박정희를 사위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견지했는데 이런 오기는 아무의 간섭도 받지 않고 이 성채를 지켜온 관록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육영수 아버지 =
충청도 옥천 지방에서 알아주던 지역유지 겸 사업가
그리고 조선인 소작농들 착취하면서 배불리 살던 전형적인 대지주
육영수 태어나던 1920년대부터 이미 집에 전화기 설치하고
수십명 하인 거느리면서 자동차까지 굴리면서 살던 집안이었음
(실제로 저 집에 차고가 남아있다고함)
그리고 육영수는 그런 집안의 공주로 호의호식하며 자람
일제강점기 때 사실상 조선인들의 상전이었던 일본인까지
본인의 첩으로 거느릴만큼 세력이 엄청났다고 함
박정희를 엄청나게 싫어했고 끝까지 사위로 인정하지 않았는데
친일파로서 엄청난 부와 세력을 쌓았던 그에게
한낱 소령 따위가 눈에 찰 리가 없었기 때문

악질 친일파 저택을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해서
생가 안내도까지 몸소 배부하고 있는게 개그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