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이 풍요로운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사업에 성공했거나, 부동산을 잘 샀거나, 유산을 물려받았기 때문일까요. 조금 더 현실적인 답은 퇴직연금을 잘 운용하는 사람들입니다.
퇴직연금은 대부분 직장에서 자동으로 가입됩니다. 그러나 가입 이후 어떻게 굴릴지를 따로 결정하지 않으면, 연금은 그대로 멈춰 있게 됩니다. 이처럼 손을 놓고 있는 사이, 노후 자산의 방향은 사실상 이미 정해지고 있을지 모릅니다.
디폴트옵션, 자동 운용이라 안심?
이러한 방치를 줄이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디폴트옵션'입니다. 퇴직연금 가입자(DC·IRP)가 일정 기간, 보통 2~6주 동안 별도의 운용 지시를 하지 않으면 미리 정해둔 금융상품으로 자동 운용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2023년 7월부터 시행됐고 모든 퇴직연금 사업자에 동일하게 적용됐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자동 가입' 제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미 가입돼 있는 퇴직연금이 오랫동안 현금성 자산이나 저수익 상품에 머물러 있는 상황을 막기 위한 장치입니다.
아직 디폴트옵션을 적용하지 않은 가입자는 언제든지 해당 제도로 전환할 수 있고(옵트인), 디폴트옵션으로 운용 중이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상품으로 변경할 수 있습니다(옵트아웃). 자동으로 운용되지만, 방향을 바꿀 권한은 가입자에게 있습니다.
다만 금융회사마다 상품 구성은 다릅니다. 같은 '디폴트옵션'이라도 어떤 자산을 얼마나 담느냐에 따라 성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또한 이미 본인이 운용 지시를 하고 있다면 디폴트옵션은 작동하지 않습니다. 일정 기간 아무 지시가 없을 때에만 사전에 지정된 상품으로 운용이 시작됩니다.
디폴트옵션 상품은 위험 수준에 따라 △안정형 △안정투자형 △중립투자형 △적극투자형으로 나뉩니다. 안정형은 정기예금이나 원리금보장보험처럼 원금을 지키는 데 초점을 둔 구조입니다.
반면 안정투자형·중립투자형·적극투자형은 주식과 채권 등 다양한 자산을 섞어 분산 투자합니다. 위험을 나누는 대신 수익 기회를 넓히는 방식입니다. 결국 디폴트옵션은 자동으로 굴러가지만, 어떤 유형을 선택해 두었는지가 장기 성과를 좌우하게 됩니다.
유의할 점은 같은 유형의 디폴트옵션이라도 금융회사에 따라 수익률 차이가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적극투자형처럼 주식 비중이 높은 상품일수록 운용 전략에 따른 격차가 더 크게 나타났습니다.
27일 금융감독원이 지난해 1년 수익률을 기준으로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적극투자형에서는 증권사 간 차이가 뚜렷했습니다. 상위 5개 기업을 보면 한국투자증권이 26.62%로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습니다. 이어 한화투자증권(19.81%), 삼성증권(19.55%), iM증권(19.38%), 미래에셋증권(19.32%)이 상위권을 형성했습니다.
중립투자형 역시 금융회사별 차이가 확인됐습니다. 상위 5개 기업은 광주은행(17.47%), 대신증권(16.00%), 삼성생명(14.62%), NH투자증권(14.52%), 미래에셋증권(13.97%) 순으로 집계됐습니다.
안정투자형의 경우 상위 5개 기업이 모두 16.27% 수준의 동일한 수익률을 기록한 점이 특징입니다. iM증권, 우리투자증권, 유안타증권, 한화생명, 미래에셋생명이 나란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동일한 구조의 포트폴리오 상품이 다수 판매된 영향으로 풀이됩니다.
반면 안정형은 전반적으로 3% 안팎의 수익률에 머물렀습니다. 상위 5개 기업은 IBK연금보험(3.67%), DB손해보험(3.41%), 흥국생명(3.39%), 미래에셋생명(3.25%), 현대해상(3.22%)으로 집계됐습니다.
적극형 14.93%로 최고…적립금은 안정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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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금융감독원
그러면 어떤 유형을 선택하는 게 유리할까요. 지난해 1년 수익률을 기준으로 보면 적극투자형이 가장 높은 평균 성과를 냈습니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적극투자형의 연간 수익률은 14.93%였습니다. 중립투자형은 10.81%, 안정투자형은 7.47%였고, 안정형은 2.63%에 머물렀습니다.
다만 자금의 흐름은 정반대였습니다. 전체 디폴트옵션 적립금 53조3000억원 가운데 적극투자형에 들어간 금액은 1조3646억원으로 2.6%에 불과했습니다. 중립투자형은 2조5336억원(4.7%), 안정투자형은 3조9053억원(7.3%) 수준이었습니다. 반면 수익률이 가장 낮았던 안정형에는 45조5282억 원, 전체의 85.4%가 몰려 있었습니다.
가장 높은 수익률을 낸 유형에는 소수의 자금과 가입자만 몰려 있고, 가장 낮은 수익률의 유형에 대부분의 자금이 집중돼 있는 셈입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가입자가 자신의 투자 성향과 은퇴 시점에 맞는 유형인지 반드시 확인한 뒤 선택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특히 안정형은 원리금이 보장되지만 사실상 정기예금과 유사한 구조라는 점도 충분히 인지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다만 연 1회 정도는 수익률과 운용 현황을 점검하고, 가입자의 상황 변화에 따라 필요하면 유형을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