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바이러스에 점령당한 세계. 유럽 대륙은 바이러스 창궐을 진압하는 데 성공했지만, 영국은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영국은 완전히 격리된다. 28년이 흐른 뒤, 홀리 아일랜드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는 12살 소년 스파이크는 병에 걸린 엄마를 치료하기 위해 본토에 홀로 생존해 있다는 의사 켈슨을 찾아 나선다.
한편 켈슨은 자주 마주치는 알파 감염자, 즉 우두머리 감염자 '삼손'과는 말이 통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는다. 그는 목숨을 건 모험을 감행한다. 과연 그들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스파이크는 지미스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지미 크리스털은 어떤 이유로 컬트의 리더가 되었을까.
'악의 본질'과 '죽음'을 향한 질문
영화 <28년 후: 뼈의 사원>은 '28일 후'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이자 '28년 후 트릴로지'의 두 번째 작품이다. 시리즈 전반을 총괄해 온 대니 보일과 알렉스 가랜드 콤비가 이번에도 감독과 각본, 기획, 제작 등 여러 방면에서 깊이 관여했다. 덕분에 시리즈는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방향을 잃지 않고 제 궤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리즈의 순항에 변수도 생겼다. 평가가 다소 엇갈렸던 <28년 후>는 흥행에 성공한 반면, 평단의 호평을 받은 <28년 후: 뼈의 사원>은 북미에서 흥행에 참패했다. 소재와 주제가 다소 하드한 편이라 대중적 확장성에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이 영화의 주제는 대니 보일이 직접 밝힌 대로 '악의 본질'이며, 핵심 소재는 '죽음'이다. 전자는 지미 크리스털과 지미스를 통해, 후자는 전편에 이어지는 켈슨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난다. 동시에 스파이크와 삼손을 통해 희망의 가능성도 비춘다. 트릴로지의 마지막 편을 염두에 둔 포석처럼 보인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우리의 현재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모종의 이유로 종말을 맞은 이후의 세계를 다루는 서브컬처 용어다. 지난 20~30년간 아포칼립스와 디스토피아 서사가 범람했고, 이후에는 그 이후의 세계를 그리는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완전히 재편된 세상이기에 현실적이면서도 판타지적이다. 창작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극단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 장르이기도 하다.
<28년 후: 뼈의 사원>은 아포칼립스 이후 28년이 지난 시점에서 시작된다. 앞서 <28일 후>, <28주 후>에 이어 의도적으로 '28'이라는 숫자를 맞춘 셈이다. 12살에 불과한 스파이크는 이전 세계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다. 더구나 영국만이 분노 바이러스에 점령돼 고립됐다는 설정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대륙이 히틀러와 파시스트 세력에 점령됐지만 영국이 홀로 버텨냈던 역사와 대비되는 안티테제처럼 읽힌다.
그렇다. 인류는 불과 100년도 채 되지 않은 지난 세기에 아포칼립스를 경험했다. 전 세계적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21세기 초, 불과 몇 해 전에도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미증유의 위기를 겪었다. 우리는 이미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경험했고, 여전히 그 연장선 위에 서 있다. 그 세계에는 다양한 형태의 죽음이 상존한다. 역설적으로 죽음은 흔해지고, 삶은 더욱 고단해진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인간을 가른다
지미 크리스털은 '악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장치로 기능한다. 그의 몸짓과 표정, 차림새는 실제 인물 지미 새빌을 연상시킨다. 생전 영국인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방송인이자 자선가였지만, 사후 드러난 최악의 성범죄로 인해 완전히 추락한 인물이다.
'악마의 소행'이라 불릴 만큼 충격적이었던 지미 새빌의 행적은 극 중 지미 크리스털의 악행으로 변주된다. 감염자를 처단하는 선행을 가장하면서도, 서로를 죽이고 아무 죄 없는 일가족을 도륙하는 만행까지 서슴지 않는다. 문제는 거기에 합당한 이유가 없다는 점이다. 그들에게는 이 세계를 구원할 '올드 닉'이라는 사탄의 명령과, 죽음이야말로 축복이라는 왜곡된 신념만이 존재한다.
죽음을 바라보는 태도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켈슨이 죽음을 평화로운 안식처로 인식한다면, 지미 크리스털은 그것을 비틀린 축복의 완성으로 여긴다. 전자는 죽음을 존엄하게 여기기에 인간을 존중하지만, 후자는 죽음을 가볍게 여기기에 인간 또한 하찮게 취급한다. 죽음이 일상이 된 세계에서, 죽음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는 결국 인간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로 이어진다.
하여 이 영화는 외관상 가볍게 볼 만해 보이지만 실상 새롭게 재편된 세상에서 세계관, 가치관, 인생관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현장을 보여주는 만큼 결코 가볍지 않다. 보통의 좀비물에서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켜 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한편 켈슨은 자주 마주치는 알파 감염자, 즉 우두머리 감염자 '삼손'과는 말이 통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는다. 그는 목숨을 건 모험을 감행한다. 과연 그들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스파이크는 지미스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지미 크리스털은 어떤 이유로 컬트의 리더가 되었을까.
'악의 본질'과 '죽음'을 향한 질문
영화 <28년 후: 뼈의 사원>은 '28일 후'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이자 '28년 후 트릴로지'의 두 번째 작품이다. 시리즈 전반을 총괄해 온 대니 보일과 알렉스 가랜드 콤비가 이번에도 감독과 각본, 기획, 제작 등 여러 방면에서 깊이 관여했다. 덕분에 시리즈는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방향을 잃지 않고 제 궤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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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28년 후: 뼈의 사원>의 한 장면. |
| ⓒ 소니 픽처스 코리아 |
하지만 시리즈의 순항에 변수도 생겼다. 평가가 다소 엇갈렸던 <28년 후>는 흥행에 성공한 반면, 평단의 호평을 받은 <28년 후: 뼈의 사원>은 북미에서 흥행에 참패했다. 소재와 주제가 다소 하드한 편이라 대중적 확장성에 한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이 영화의 주제는 대니 보일이 직접 밝힌 대로 '악의 본질'이며, 핵심 소재는 '죽음'이다. 전자는 지미 크리스털과 지미스를 통해, 후자는 전편에 이어지는 켈슨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난다. 동시에 스파이크와 삼손을 통해 희망의 가능성도 비춘다. 트릴로지의 마지막 편을 염두에 둔 포석처럼 보인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우리의 현재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모종의 이유로 종말을 맞은 이후의 세계를 다루는 서브컬처 용어다. 지난 20~30년간 아포칼립스와 디스토피아 서사가 범람했고, 이후에는 그 이후의 세계를 그리는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완전히 재편된 세상이기에 현실적이면서도 판타지적이다. 창작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극단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 장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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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28년 후: 뼈의 사원>의 한 장면. |
| ⓒ 소니 픽처스 코리아 |
<28년 후: 뼈의 사원>은 아포칼립스 이후 28년이 지난 시점에서 시작된다. 앞서 <28일 후>, <28주 후>에 이어 의도적으로 '28'이라는 숫자를 맞춘 셈이다. 12살에 불과한 스파이크는 이전 세계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다. 더구나 영국만이 분노 바이러스에 점령돼 고립됐다는 설정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대륙이 히틀러와 파시스트 세력에 점령됐지만 영국이 홀로 버텨냈던 역사와 대비되는 안티테제처럼 읽힌다.
그렇다. 인류는 불과 100년도 채 되지 않은 지난 세기에 아포칼립스를 경험했다. 전 세계적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21세기 초, 불과 몇 해 전에도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미증유의 위기를 겪었다. 우리는 이미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경험했고, 여전히 그 연장선 위에 서 있다. 그 세계에는 다양한 형태의 죽음이 상존한다. 역설적으로 죽음은 흔해지고, 삶은 더욱 고단해진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인간을 가른다
지미 크리스털은 '악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장치로 기능한다. 그의 몸짓과 표정, 차림새는 실제 인물 지미 새빌을 연상시킨다. 생전 영국인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방송인이자 자선가였지만, 사후 드러난 최악의 성범죄로 인해 완전히 추락한 인물이다.
'악마의 소행'이라 불릴 만큼 충격적이었던 지미 새빌의 행적은 극 중 지미 크리스털의 악행으로 변주된다. 감염자를 처단하는 선행을 가장하면서도, 서로를 죽이고 아무 죄 없는 일가족을 도륙하는 만행까지 서슴지 않는다. 문제는 거기에 합당한 이유가 없다는 점이다. 그들에게는 이 세계를 구원할 '올드 닉'이라는 사탄의 명령과, 죽음이야말로 축복이라는 왜곡된 신념만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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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28년 후: 뼈의 사원>의 한 장면. |
| ⓒ 소니 픽처스 코리아 |
죽음을 바라보는 태도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켈슨이 죽음을 평화로운 안식처로 인식한다면, 지미 크리스털은 그것을 비틀린 축복의 완성으로 여긴다. 전자는 죽음을 존엄하게 여기기에 인간을 존중하지만, 후자는 죽음을 가볍게 여기기에 인간 또한 하찮게 취급한다. 죽음이 일상이 된 세계에서, 죽음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는 결국 인간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로 이어진다.
하여 이 영화는 외관상 가볍게 볼 만해 보이지만 실상 새롭게 재편된 세상에서 세계관, 가치관, 인생관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현장을 보여주는 만큼 결코 가볍지 않다. 보통의 좀비물에서 기대하는 바를 충족시켜 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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