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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실리콘밸리를 점령하라" 미국 경제 붕괴, 제 2의 대공황 가상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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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7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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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최근 미국 지식인 사회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아티클입니다. 2028년의 시점에서 AI로 초토화된 미국 경제 및 화이트칼라의 붕괴 과정을 디테일하게 추적한 가상 보고서입니다. 일종의 리포트 형식을 빌린 픽션입니다. 분량이 무척 긴 관계로 관심 있는 분만 일독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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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8년 글로벌 지능 위기 - AI로 초토화된 미국 경제
 
-시트리니 리서치
 
 
 
image.png "실리콘밸리를 점령하라" 미국 경제 붕괴 가상 리포트

 
◇풍부한 지능이 낳은 참혹한 결과
 
-2028년 6월 30일
 
오늘 아침 실업률이 10.2%를 기록했다. 시장 예상치보다 0.3%포인트나 높았다. 주식 시장은 이 숫자에 경악하며 2% 하락했다. S&P 500 지수는 2026년 10월 고점 대비 누적 38%나 주저앉았다.
 
트레이더들은 이젠 무감각하다. 불과 6개월 전이었다면 서킷 브레이커가 발동될 수치였다.
 
단 2년. '통제 가능'하고 '특정 부문'에 국한됐다던 위기가 우리가 알던 경제를 완전히 파괴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이번 매크로 메모는 이 참상의 과정을 재구성했다. 위기 이전 경제를 돌아보는 사후 부검 보고서다.
 
환희는 생생했다. 2026년 10월 S&P 500 지수는 8000선을 넘봤고, 나스닥은 3만 선을 돌파했다. 그해 초 인간의 노동 효용 가치 하락을 이유로 1차 해고 사태가 터졌다. 결과는 월가의 기대대로였다. 비용이 주니 마진이 뛰었고, 실적은 시장 전망치를 가볍게 웃돌았으며, 주가는 치솟았다. 기록적인 기업 수익은 곧바로 AI 컴퓨팅 투자로 다시 빨려 들어갔다.
 
거시 지표는 여전히 눈부셨다. 명목 GDP는 연율 기준 한 자릿수 중후반 성장을 거듭했다. 생산성은 역사적 호황을 누렸다. 시간당 실질 생산량은 1950년대 이후 전례 없는 속도로 폭증했다. 잠도 자지 않고, 병가도 내지 않으며, 건강보험조차 필요 없는 AI 에이전트 덕분이었다.
 
인건비가 증발하면서 컴퓨팅 인프라 소유자들의 부는 폭발적으로 늘었다. 반면 실질 임금 상승률은 처참히 붕괴했다. 정부는 기록적인 생산성을 거듭 자랑했지만,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은 기계에 책상을 뺏기고 저임금 직종으로 추락했다.
 
소비 경제에 금이 가기 시작하자 경제 전문가들은 '유령 GDP(Ghost GDP)'라는 신조어를 입에 올렸다. 국가 장부상 수치는 치솟지만 실물 경제에서는 단 1달러도 돌지 않는 죽은 생산을 뜻한다.
 
모든 면에서 AI는 예상을 압도했다. 시장이 곧 AI였다. 유일한 문제는 실물 경제가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노스다코타의 GPU 클러스터 하나가 맨해튼 미드타운 화이트칼라 1만 명의 몫을 해낸다는 사실. 이는 경제의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끔찍한 전염병에 가깝다는 점을 진작 눈치챘어야 했다. 화폐 유통 속도는 바닥을 기었다. 당시 GDP의 70%를 지탱하던 인간 중심의 소비 경제는 시들해졌다. 기계가 쇼핑몰에서 돈을 얼마나 쓰는지 단 한 번이라도 자문해 봤다면 더 빨리 알아챘을 것이다. 답은 0원이다.
 
AI 성능이 좋아졌다. 기업은 인력을 잘랐다. 화이트칼라 해고가 급증했다. 밥줄이 끊긴 노동자는 지갑을 닫았다. 매출이 꺾여 마진 압박을 받은 기업은 인건비를 더 쥐어짜 AI 투자를 늘렸다. 그리고 AI 성능은 또다시 진화했다.
 
브레이크가 완전히 고장 난 부정적 피드백 루프였다. '인간 지능 대체 소용돌이'가 경제를 덮쳤다.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은 자신의 돈벌이 능력과 소비력이 구조적으로 부서지는 참상을 넋 놓고 지켜봤다. 이들의 소득은 13조 달러(약 1경 8200조 원) 규모 미국 모기지 시장을 떠받치는 기둥이었다. 월가 보험사들은 끄떡없다던 우량 모기지가 과연 아직도 안전한 자산인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큰 부도 사태 없이 17년이 훌쩍 지났다. 사모펀드(PE)가 빚을 내 쓸어 담은 소프트웨어 기업 인수 거래가 시장에 널려 있었다. '연간반복매출(ARR)은 영원히 꽂힐 것'이라는 순진한 가정에 목숨을 걸었다. 2027년 중반 AI가 쏘아 올린 1차 디폴트 사태는 이 어리석은 가정을 산산조각 냈다.
 
충격이 소프트웨어 업계에만 머물렀다면 어떻게든 버텼을 것이다. 현실은 달랐다. 2027년 말, 중간에서 수수료를 떼먹는 모든 비즈니스 모델이 목숨을 위협받았다. 인간의 '마찰 비용'을 돈으로 바꿔 몸집을 불린 수많은 기업이 허무하게 무너졌다.
 
미국 금융 시스템은 결국 '화이트칼라의 영원한 생산성 증가'에 판돈을 건 거대한 폭탄 돌리기(연쇄 고리)로 드러났다. 2027년 11월 시장 붕괴는 이미 돌아가던 파괴의 톱니바퀴에 기름을 부었을 뿐이다.
 
우리는 1년 가까이 '나쁜 뉴스가 좋은 뉴스'가 되는 기적만을 바랐다. 정부가 허둥지둥 대책 논의에 나섰다. 하지만 정부의 구제 능력을 향한 대중의 신뢰는 이미 바닥을 쳤다. 탁상행정은 늘 경제 현실을 뒤늦게 쫓아갔다. 제대로 된 청사진조차 없는 무능은 디플레이션 소용돌이를 수습 불가능한 지경으로 몰아넣고 있다.
 
 
◇발단
 
2025년 말, 에이전트 코딩 도구의 성능이 기하급수적으로 뛰어올랐다.
 
클로드 코드나 코덱스를 다루는 유능한 개발자는 불과 몇 주 만에 중견기업용 SaaS 제품의 핵심 기능을 통째로 베껴냈다. 완벽하진 않아도 쓸 만은 했다. 50만 달러(약 7억 원)짜리 연간 계약 갱신 서류를 쥐고 있던 최고정보책임자(CIO)가 "이거 우리가 뚝딱 만들면 어떨까?"라고 되물을 수준은 충분히 됐다.
 
대부분 기업의 회계연도는 역년과 같다. 2026년 기업 예산은 '에이전트 AI'가 그저 허풍 섞인 유행어에 불과했던 2025년 4분기에 일찌감치 확정됐다. 이듬해 중간 점검 시기가 돼서야 깐깐한 구매팀은 AI 시스템의 진짜 파괴력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내부 엔지니어 팀이 수억 원대 SaaS 계약을 갈아치울 시제품을 단 몇 주 만에 찍어내는 광경을 직접 목격했다.
 
그해 여름, 포춘 500대 기업의 구매 담당자가 겪은 일화다. 소프트웨어 영업사원은 예년처럼 5% 단가 인상안을 들이밀며 "당신네 직원들은 우리 시스템 없인 일 못 한다"는 구식 논리를 폈다. 담당자는 웃으며 맞받아쳤다. "우리는 지금 오픈AI와 얘기 중이다. 우리 엔지니어들이 AI 도구를 써서 당신네 소프트웨어를 아예 치워버릴 계획이다." 결국 이들은 무려 30%나 후려친 가격에 계약을 연장했다. 꽤 훌륭한 방어전이었다. 먼데이닷컴, 재피어, 아사나 같은 이른바 '롱테일 SaaS' 기업들의 처지는 끔찍했다.
 
투자자들은 롱테일 기업들이 먼저 피를 흘릴 것이라 짐작했다. 일반 기업 지출의 3분의 1을 빨아먹었지만 방어막이 얇았기 때문이다. 반면 핵심 기록 시스템은 끄떡없을 줄 알았다.
 
서비스나우의 2026년 3분기 실적 발표가 나오고 나서야 파괴의 메커니즘이 소름 끼치게 뚜렷해졌다.
 
"서비스나우 신규 연간계약가치(ACV) 성장률 23%에서 14%로 반토막. 15% 감원 및 '구조적 효율성 프로그램' 발표. 주가 18% 수직 낙하" (블룸버그, 2026년 10월)
 
SaaS가 하루아침에 멸종한 건 아니었다. 기업이 자체 시스템을 만들고 굴리는 일에는 여전히 가성비를 따져야 했다. 하지만 '자체 구축'이라는 막강한 카드가 생기면서 벤더들의 가격 협상력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더 심각한 건 경쟁 지형 자체가 리셋됐다는 점이다. AI 덕에 코드 한 줄 짜는 게 우스워지면서 제품 간 차별성은 증발했다. 기존 기업들은 피 튀기는 단가 후려치기에 돌입했다. 진흙탕 싸움이자 신흥 도전자들과 벌이는 칼부림이었다. AI 코딩 기술을 무기로 쥔 데다 챙겨줄 직원도 없는 신생 업체들은 미친 듯이 시장 점유율을 강탈했다.
 
기업 시스템이 얼마나 끈끈하게 엮여 있는지, 이 실적 발표 전까지 월가는 까맣게 몰랐다. 서비스나우는 직원 머릿수에 비례해 라이선스를 팔아먹었다. 핵심 고객인 포춘 500대 기업들이 직원을 15% 잘라내자, 서비스나우 라이선스 계약도 기계적으로 15% 날아갔다. 고객사 이익을 불려준 'AI 발 감원'이 부메랑이 되어 서비스나우의 밥줄을 끊어버린 셈이다.
 
워크플로우 자동화를 팔던 회사가 한 차원 높은 자동화 기술에 역공을 당했다. 이들이 택한 생존법은 직원의 목을 치고, 그 피 묻은 돈으로 자신들을 위협하는 바로 그 기술을 사들이는 것이었다.
 
달리 무슨 수가 있었겠는가. 가만히 앉아 말라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AI에 가장 크게 위협받은 기업들이 도리어 AI를 가장 앞장서서 회사에 심었다.
 
지나고 보니 뻔한 얘기 같지만 당시에는 전혀 달랐다. 과거 파괴적 혁신 이론은 기존 기업이 낡은 기술을 고집하다 발 빠른 신생아에게 밀려나 서서히 늙어 죽는다고 가르쳤다. 코닥, 블록버스터, 블랙베리의 무덤이 그 증거였다. 2026년에 벌어진 일은 궤가 달랐다. 기존 기업들은 뻗댈 여유조차 없었다. 주가가 반토막 나고 이사회가 당장 살길을 찾아내라며 윽박지르자 기업들은 가장 확실한 길을 택했다. 인건비를 쳐내고 그 돈을 몽땅 AI 도구에 쏟아부었다. 그리고 그 도구를 쥐어짜 더 싼 값에 회사를 굴렸다.
 
기업 하나하나의 생존 본능은 지극히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집단이 만든 결과는 지옥이었다. 인건비를 털어 마련한 쌈짓돈은 고스란히 AI 성능 업그레이드에 쓰였고, 이는 곧 남은 직원의 목마저 치는 날카로운 칼날로 되돌아왔다.
 
소프트웨어 업계의 몰락은 서막에 불과했다. 투자자들이 SaaS 주가 바닥을 잡겠다고 핏대를 세우는 사이, 이 파괴의 사슬은 이미 모든 산업의 문을 부수고 있었다. 서비스나우의 대량 해고를 합리화한 논리는, 사무실에 화이트칼라를 앉혀둔 지구상의 모든 기업에 완벽하게 똑같이 적용됐다.
 
◇마찰 비용이 0으로 수렴하다
 
2027년 초, 대형언어모델(LLM)은 물이나 공기 같은 기본값이 됐다. 사람들은 클라우드 원리를 몰라도 넷플릭스를 보듯, AI 에이전트가 무슨 원리로 작동하는지 몰라도 신나게 부려 먹었다. 자동완성이나 맞춤법 검사기처럼 스마트폰에 으레 깔려 있는 숨 쉬는 기능으로 여겼다.
 
큐원(Qwen)이 내놓은 오픈소스 에이전트 쇼퍼는 기계가 인간 소비자의 지갑을 낚아채는 완벽한 기폭제가 됐다. 몇 주 만에 주요 AI 비서들이 앞다퉈 에이전트 상거래 기능을 쑤셔 넣었다. 뼈대만 남긴 경량화 모델 덕에 에이전트는 무거운 클라우드를 벗어나 내 손안의 폰과 노트북에서 직접 돌아갔다. AI 구동에 드는 한계비용이 획기적으로 떨어졌다.
 
투자자들을 공포로 몰아넣었어야 할 진짜 팩트는, 이 똑똑한 에이전트들이 주인이 명령하기도 전에 알아서 움직였다는 점이다. 사용자 취향을 꿰뚫고 화면 뒤에서 조용히 지갑을 열었다. 상거래는 더 이상 인간의 충동적이고 변덕스러운 결정이 아니었다. 네트워크에 연결된 소비자를 대신해 365일 24시간 쉬지 않고 가성비를 따지는 기계적 최적화 과정으로 변모했다. 2027년 3월 미국 일반 소비자의 일일 토큰 소비량은 40만 개로 폭등했다. 2026년 말 대비 무려 10배 치솟은 수치다.
 
파괴의 사슬이 조준한 다음 타자는 뚜렷했다. 바로 중간에서 통행세를 뜯어먹는 중개업이다.
 
지난 50년 동안 미국 경제는 인간의 멍청한 '한계' 위에 거대한 지대 추구의 철옹성을 쌓아 올렸다. 가격을 비교하려면 시간이 걸리고 인내심은 금세 바닥난다. 꼼꼼히 따지기 귀찮아 눈에 익은 대기업 브랜드를 덥석 집어 든다. 귀찮은 클릭 몇 번 덜 하려고 터무니없는 바가지요금을 기꺼이 낸다. 수십, 수백조 달러에 달하는 위대한 기업들의 가치가 바로 이 하찮은 인간의 제약 조건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었다.
 
시작은 단순했다. 에이전트가 세상의 귀찮은 마찰을 지워버렸다.
 
몇 달간 쓰지 않아도 내 통장에서 꼬박꼬박 돈을 빼가는 자동 갱신 구독, 무료 체험 기간이 끝나면 슬그머니 요금을 두 배로 올리는 양아치 짓. 에이전트는 기업들이 벌이던 이 비열한 인질극을 모조리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 산산조각 냈다. 그 알량한 낙수효과로 구독 경제 전체를 떠받치던 '고객 생애 가치(LTV)' 지표는 허무하게 곤두박질쳤다.
 
소비자 에이전트는 상거래의 룰을 통째로 엎어버렸다. 인간은 고작 단백질 바 한 통 사겠다고 쇼핑몰 5개를 뒤지며 10원 단위 가격을 비교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계는 0.1초면 한다.
 
여행 예약 플랫폼이 가장 먼저 목이 잘렸다. 중간에서 수수료 떼먹기 가장 좋은 단순한 구조였기 때문이다. 2026년 4분기, 에이전트는 항공권, 호텔, 렌터카, 항공사 포인트 최적화, 내 지갑 사정, 복잡한 환불 규정까지 전부 계산한 완벽한 여행 일정을 그 어떤 거대 플랫폼보다 빠르고 후려친 가격에 짜냈다.
 
가입자의 '귀차니즘'에 기생하던 자동차 보험 갱신 모델도 박살 났다. 매년 만기일마다 0.01%의 확률까지 계산해 최적의 조건으로 알아서 갈아타 주는 에이전트가 등장하자, 보험사들이 자동 갱신으로 꿀 빨던 보험료의 20%가 순식간에 공중 분해됐다.
 
재무 상담, 세금 신고, 지루한 법률 서류 검토도 마찬가지다. "네가 귀찮아하는 복잡한 일들을 내가 대신해 줄게"라며 뻔뻔하게 고액의 청구서를 들이밀던 모든 전문가 집단이 직격탄을 맞았다. 기계는 수만 장의 텍스트를 읽어내는 서류 작업에 결코 지루함 따위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 대 인간의 끈끈함 덕분에 절대 무너지지 않을 거라 굳게 믿었던 철밥통조차 박살 났다. 부동산 시장에서 집을 사는 사람들은 중개인과의 좁혀지지 않는 정보 비대칭 탓에 수십 년 동안 5~6%의 폭리를 수수료로 갖다 바쳤다. 하지만 다중 상장 서비스(MLS) 접근 권한과 수십 년 치 낡은 부동산 거래 데이터를 통째로 씹어 먹은 AI 에이전트가 인간 중개인의 노하우를 단 몇 초 만에 복제해버렸다.
 
2027년 3월 월스트리트의 한 매도 리포트는 이 아비규환을 '에이전트 간의 살육전'이라 불렀다. 주요 대도시의 콧대 높던 매수자 측 수수료 중간값은 3%에서 1% 미만으로 처참하게 꺾였다. 아예 비싼 인간 중개인을 끼우지 않고 기계끼리 서류를 주고받아 집을 사는 비율이 기하급수적으로 치솟았다.
 
우리는 '인간관계'의 가치를 단단히 착각했다. 사람들이 관계라 믿고 기꺼이 지갑을 열었던 것들의 실체는 그저 '웃는 얼굴을 한 귀찮은 마찰 비용'에 불과했다.
 
이는 거대한 중개업계 몰락의 아주 작은 전조였다. 잘나가던 유니콘 기업들은 소비자 행동의 어설픈 허점과 인간 심리의 얄팍한 맹점을 찔러 수십억 달러를 쓸어 담았다. 이제 그런 잔재주는 통하지 않는다.
 
오직 1달러라도 싼 가격과 최적의 조건만 피도 눈물도 없이 따지는 기계는 당신이 폰에 깔아둔 필수 앱이나 4년째 충성하던 쇼핑몰 따위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세계 최고 디자이너가 짠 매끄러운 결제 화면에 현혹되지도 않는다. 피곤하다고 대충 타협하거나 "그냥 평소 시키던 데서 시키자"며 포기하는 법도 없다.
 
기계는 기업들이 파놓은 '습관적 중개'라는 가장 튼튼한 해자를 산산조각 냈다. 도어대시(미국판 배민)가 그 대표적인 제물이었다.
 
AI 코딩 에이전트가 굳건하던 배달 앱 시장의 진입 장벽을 폭파해버렸다. 방구석의 유능한 개발자 한 명이 단 몇 주 만에 그럴듯한 배달 앱을 찍어냈다. 이들은 악랄한 플랫폼 수수료를 걷어내고 배달비의 95%를 기사에게 통째로 쥐여주며 도어대시와 우버이츠의 배달원들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였다. 라이더들은 폰 화면에 멀티 앱 대시보드를 띄워놓고 30개 플랫폼에서 쏟아지는 가장 짭짤한 주문만 쏙쏙 낚아챘다. 플랫폼 기업들이 목숨처럼 여겼던 고객 록인(Lock-in) 효과는 흔적도 없이 증발했다. 시장은 하룻밤 새 수백 개로 찢어졌고 기업 마진은 완벽한 0으로 곤두박질쳤다.
 
에이전트는 파괴의 창조자이자 포식자였다. 싼값에 대체 앱들을 무한정 쏟아내고, 다시 그 앱들을 영악하게 부려 먹었다. 시가총액 수십조 원을 자랑하던 도어대시의 해자는 "당신은 배고프고 게으르며, 내 앱이 당신 폰 첫 화면에 깔려있다"는 얄팍한 조건이 전부였다.
 
하지만 에이전트에겐 '첫 화면'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도어대시, 우버이츠, 동네 식당 홈페이지, 코딩으로 대충 급조된 20여 개의 대체 앱을 단 0.1초 만에 뒤져 가장 싸고 빠른 배달 옵션을 물어왔다. 빅테크의 근간이던 '습관적 앱 충성도'는 차가운 기계 앞에서 완벽한 무용지물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곧 길거리에 나앉을 위기에 처한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에게 에이전트가 베푼 유일한 자비였다. 어제까지 엑셀을 돌리다 내일 배달 오토바이를 타게 됐을 때, 우버와 도어대시에 핏값 같은 수입의 절반을 뜯기진 않았으니까. 물론 거리에 자율주행 배달 로봇이 쏟아져 나오면서 기계가 베푼 이 알량한 호의조차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가계의 거래 주도권을 틀어쥔 에이전트는 더 거대한 사냥감을 노렸다.
 
배달비 몇 푼 깎는 가격 비교는 한계가 명확했다. 주인의 돈을 기하급수적으로 아껴주는 유일한 길은 금융 결제망의 삥뜯기, 즉 중간 수수료를 씨 말리는 것이었다. 에이전트끼리 인간을 배제하고 직접 거래를 틀면서 이는 더욱 쉬워졌다. 기계 간 상거래에서 꼬박꼬박 3%씩 떼어가는 거대한 신용카드 결제망이 첫 타깃이 됐다.
 
에이전트는 굼뜨고 비싼 신용카드를 버리고 더 싸고 빠른 길을 뚫었다. 솔라나나 이더리움 레이어2 같은 블록체인 기반 스테이블코인 생태계로 갈아탔다. 결제는 1초 만에 끝났고 수수료는 신용카드의 수백 분의 1인 1페니에도 못 미쳤다.
 
"마스터카드 2027년 1분기: 순수익 전년 대비 6% 증가. 결제액 성장률 5.9%에서 3.4%로 반토막. 경영진 'AI 에이전트 주도의 가격 후려치기' 및 '소비 둔화 타격' 공식 인정" (블룸버그, 2027년 4월 29일)
 
마스터카드의 2027년 1분기 실적 발표는 결코 되돌릴 수 없는 루비콘강을 건넌 사건이었다. AI 에이전트 상거래가 단순한 눈요기 서비스를 넘어 거대한 금융 인프라의 숨통을 끊어놓기 시작했다. 마스터카드 주가는 이튿날 9%나 피를 흘렸다. 비자 역시 뼈아픈 타격을 입었으나, 스테이블코인 인프라 구축에 한 발 더 빠르다는 월가의 평가 덕에 간신히 낙폭을 막았다.
 
기존 신용카드망을 대놓고 무시하는 기계들의 무자비한 상거래는 낡은 카드 중심의 은행과 단일 카드사들에게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2~3%의 가맹점 수수료 피를 빨아먹고, 그 돈으로 고객에게 캐시백을 뿌리며 연명하던 이들의 비즈니스 모델은 밑동부터 깨끗하게 잘려 나갔다.
 
가장 화려했던 아메리칸 익스프레스가 가장 처참한 일격을 당했다. 대규모 화이트칼라 해고로 연회비를 내줄 알짜 고객층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데다 에이전트가 결제망마저 우회해버리자 수익 모델 전체가 산산조각 났다. 싱크로니, 캐피탈 원, 디스커버 같은 카드사 주가 역시 단 몇 주 만에 10% 이상 고꾸라졌다.
 
수십 년간 이들이 누려온 철옹성 같은 해자는 오직 아둔한 인간의 '마찰 비용'으로 빚어낸 거대한 허상이었다. 그리고 그 마찰이 0으로 수렴하는 순간, 모래성처럼 흔적도 없이 쓸려갔다.
 
◇섹터 리스크에서 통제 불능의 시스템 리스크로
 
2026년 한 해 동안 시장은 AI가 부른 피바람을 그저 일부 업종의 재수 없는 이슈로 치부했다. 소프트웨어와 컨설팅 업계가 박살 나고 결제망 같은 '톨게이트' 사업이 비틀거렸어도 국가 전체 경제 지표는 멀쩡해 보였다. 노동 시장도 미세하게 둔화했을 뿐 붕괴 조짐은 없었다.
 
'파괴적 혁신'이 일어나려면 낡은 구시대 유물들이 박살 나는 진통은 불가피하다는 월가의 안일한 헛소리가 지배적이었다. 국지적인 출혈은 감수하더라도 AI가 뿜어낼 과실이 훨씬 달콤할 것이라 맹신했다.
 
2027년 1월, 우리는 매크로 메모를 띄워 이 순진한 예측 모델이 철저히 틀렸다고 경고했다. 미국은 철저히 화이트칼라가 주도하는 서비스 경제다. 화이트칼라는 전체 일자리의 50%를 차지하며, 당장 안 써도 그만인 임의 소비재 지출의 무려 75%를 쏟아붓는 주축이다. AI가 게걸스럽게 집어삼킨 이들의 일자리는 경제의 변두리가 아니라 미국 소비 경제의 척추 그 자체였다.
 
"신기술은 일자리를 없애지만 결국 훗날 더 많은 일자리를 낳는다." 당시 경제학자들이 입에 달고 살던 가장 흔하고 그럴듯한 반론이었다. 지난 200년간 자본주의 역사상 단 한 번도 틀린 적 없는 절대 진리였기 때문이다. 당장 내일 어떤 일자리가 튀어나올지 몰라도 기필코 빈자리를 채울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과거 은행에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깔렸을 때, 지점 운영비가 팍 줄었다. 은행은 아낀 돈으로 공격적으로 지점을 늘렸고 덕분에 은행원 고용은 20년 동안 계속 늘었다. 인터넷은 동네 여행사와 종이 전화번호부를 쓸어버렸지만 닷컴이라는 거대한 신산업을 열어 수백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토해냈다.
 
그러나 한 가지 치명적인 전제를 망각했다. 과거에 폭발했던 모든 새로운 일자리에는 그 일을 직접 손발로 뛰어 해낼 '인간'이 필수적으로 필요했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AI는 차원이 다른 괴물이다. 쫓겨난 인간이 도망칠 피난처의 일자리까지 미리 학습하고 점령하며 진화하는 범용 지능이다. 회사에서 쫓겨난 코더가 'AI 감독관'으로 옷을 갈아입고 복귀할 수는 없다. 시스템을 통제하고 감독하는 일조차 이미 AI가 인간보다 훨씬 싸고 완벽하게 해내기 때문이다.
 
오늘날 AI 에이전트는 박사급 인력이 몇 달씩 매달리던 연구개발 업무를 커피 한 잔 마실 시간에 끝낸다. 와튼 스쿨 석학들이 해마다 낡은 S커브 곡선에 억지로 데이터를 끼워 맞추며 현실을 부정하는 동안, AI의 기하급수적 진화는 인간 상상력의 한계를 비웃듯 산산조각 냈다.
 
사실상 세상의 모든 코드를 기계가 짠다. 최상위 AI 모델은 지구상의 99% 인간보다 모든 면에서 압도적으로 똑똑하다. 심지어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표는 헐값으로 곤두박질친다.
 
물론 AI도 극소수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긴 했다. 프롬프트 엔지니어, AI 안전 연구원, 데이터센터 케이블을 까는 인프라 기술자 등이다. 소수의 엘리트 인간은 아직 의사결정의 꼭대기에서 방향을 지시하며 시스템 통제권을 쥐고 있다. 하지만 AI가 던져주는 알량한 일자리 하나가 생길 때마다, 수십 명의 평범한 화이트칼라가 가차 없이 거리에 나앉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새로 생긴 직업의 급여는 과거 그들이 받던 연봉의 푼돈 수준에 불과했다.
 
"미국 구인·이직 보고서(JOLTS): 구인 건수 550만 건 붕괴. 구직자 1명당 일자리 1.7개로 팬데믹 공포 덮친 2020년 8월 이후 최악" (블룸버그, 2026년 10월)
 
고용 지표는 1년 내내 늪에서 허우적댔다. 2026년 10월 발표된 JOLTS 보고서가 마지막 숨통을 끊었다. 기업의 신규 구인 건수가 심리적 마지노선인 550만 건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1년 전보다 15%나 일자리가 공중분해됐다.
 
"인디드: '생산성 혁신'이라는 이름의 칼바람. 소프트웨어, 금융, 컨설팅 채용 공고 반토막" (인디드 하이어링 랩, 2026년 11~12월)
 
건설 현장, 병원, 물류창고 같은 블루칼라 구인은 그나마 버텼지만 화이트칼라 채용 시장은 영하 40도로 얼어붙었다. 그럴듯한 기획안을 쓰고(우리 시트리니 리서치 연구원들은 용케 아직 살아남았지만), 엑셀을 돌리며, 예산안에 도장을 찍고 경제의 윤활유 역할을 하던 튼튼한 중간 관리자 일자리들이 낙엽처럼 쓸려 나갔다. 살아남은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 모두 살인적인 물가 속에 실질 임금은 1년 내내 마이너스를 찍으며 바닥 모르고 추락했다.
 
미쳐버린 주식 시장은 일자리 붕괴를 알리는 JOLTS 지표 따위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오직 GE 버노바의 데이터센터용 터빈 주문이 2040년까지 완판됐다는 뉴스에만 환호성을 질렀다. 암울하게 썩어가는 거시 지표와 돈벼락을 맞는 AI 인프라 뉴스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다리기를 하며 횡보장을 버텼다.
 
하지만 늘 주식 시장보다 영악하고 낭만이라곤 1그램도 없는 채권 시장은 냉정했다. 이미 서늘한 소비 위축의 공포를 금리에 꽂아 넣기 시작했다.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불과 4개월 만에 4.3%에서 3.2%로 수직 낙하했다. 길거리에 나앉은 실업자 통계가 당장 헤드라인을 도배하지 않았기에, 어리석은 투자자 상당수는 이 끔찍한 시그널의 속내를 꿰뚫어 보지 못했다.
 
평범한 불황은 앓고 나면 원인 자체가 치유의 백신이 된다. 아파트를 너무 지으면 미분양이 터지고 건설 경기가 죽는다. 경기가 죽으면 중앙은행이 돈줄을 풀고 이자를 내리며, 싼 이자 덕에 건설사들은 다시 삽을 뜬다. 재고가 썩어나면 공장 불을 끄고, 창고가 텅 비면 다시 기계를 돌린다. 자본주의의 순환 사이클 그 자체가 거대한 자동 온도 조절기다.
 
◇AI 광기의 과실은 대만과 한국 손에
 
하지만 이번 위기의 본질은 순환이 아니었다.
 
AI의 뇌는 갈수록 커지는데 몸값은 껌값이 됐다. 벼랑 끝에 몰린 기업은 직원을 잘라 아낀 돈으로 더 독한 AI를 사들여 남은 직원의 목마저 쳤다. 밥줄이 끊긴 중산층이 지갑을 철사로 동여매자, 당장 물건이 안 팔린 소비재 기업들은 살아남으려 인건비를 더 잔인하게 털어내고 AI에 구원을 빌었다. 그렇게 AI는 한 번 더 진화하고 요금제는 더 싸졌다. 브레이크 패드가 완전히 날아간 공포의 무한 루프였다.
 
총수요가 말라비틀어지면 기업들의 AI 인프라 베팅도 식을 것이란 게 월가의 상식적인 예측이었다. 완벽한 착각이었다. 이번 AI 투자는 미래를 위해 빚내서 공장을 짓는 투자가 아니라 당장 숨만 쉬어도 나가는 고정 인건비를 깎아내는 '마른수건 쥐어짜기'였기 때문이다.
 
고액 연봉 직원에게 1억 달러(약 1,400억 원)를 바치고 AI엔 고작 500만 달러(약 70억 원)를 쓰던 회사가, 직원 밥줄을 7,000만 달러(약 980억 원)로 쳐내고 그중 2000만 달러(약 280억 원)를 AI에 쏟아부었다. AI 예산은 4배 폭증했지만 회사의 총지출 비용은 오히려 홀쭉해졌다. 길거리엔 실업자가 넘치는데 기업의 AI 장부만 터져나가는 기형적인 파티가 열렸다.
 
아이러니의 극치였다. 인간의 경제를 갉아먹으며 몸집을 불린 AI 인프라 제국은 실물 경제가 피를 토하는 와중에도 나 홀로 황금기를 누렸다. 엔비디아는 매 분기 월스트리트의 입을 떡 벌리게 하는 실적 신기록을 썼고, 대만 TSMC 공장은 가동률 95%를 넘기며 비명을 질렀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하이퍼스케일러들은 사막에 데이터센터를 짓는 데 분기당 1,500억~2,000억 달러(약 210조~280조 원)라는 천문학적 달러를 쏟아부었다. 이 광기의 과실을 고스란히 챙긴 대만과 한국의 거시 경제는 전 세계가 경악할 압도적인 폭등장을 연출했다.
 
하지만 IT 하청 대국 인도의 처지는 비참했다. 연간 2,000억 달러(약 280조 원)어치 코드를 찍어내 파는 인도의 IT 수출은 뚫린 무역 적자를 메우는 유일한 구명줄이었다. '우리 인도 코더의 몸값이 미국인보다 압도적으로 싸다'는 초라한 가치 하나에 기댄 사상누각이었다.
 
엄청난 성능을 탑재한 AI 코딩 에이전트의 한계비용이 전기세 수준으로 폭락하자 파국이 닥쳤다. TCS, 인포시스, 위프로 같은 거대 인도 아웃소싱 기업들은 2027년 내내 북미 고객사들이 팩스로 던지는 계약 해지 통보에 피눈물을 흘렸다. 국가를 먹여 살리던 달러 흑자가 허공으로 증발하자, 인도 루피화 가치는 불과 4개월 만에 18%나 녹아내렸다. 2028년 1분기, 벼랑 끝에 몰린 인도 정부는 굴욕적으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의 문을 두드렸다.
 
인간을 몰아내는 이 파괴의 엔진은 분기가 지날 때마다 스스로 지능을 진화시켰다. 충격의 가속 페달을 미친 듯이 밟았다는 뜻이다. 추락하는 노동 시장의 바닥을 받쳐줄 안전그물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
 
미국에서 우리는 더 이상 "AI 반도체 거품이 언제 터질까"를 떠들지 않았다. "돈을 쓰는 '인간 소비자'가 돈 한 푼 안 쓰는 '깡통 기계'로 모조리 물갈이되는 판국에, 신용카드 빚으로 굴러가던 미국의 거대한 소비 경제는 대체 어떻게 박살 날 것인가"를 공포 속에 묻기 시작했다.
 
◇지능 대체 소용돌이
 
2027년, 경제가 무너지는 시그널은 변명의 여지 없이 선명했다. 지난 12개월 동안 여기저기서 터지던 악재들이 어떻게 서로의 뇌관을 건드리는지 그 치명적인 전이 경로가 뚜렷해졌다. 굳이 노동부 통계청 사이트를 뒤질 필요도 없었다. 주말 저녁 지인들과 밥 한 끼만 먹어봐도 뼛속까지 냉기를 체감할 수 있었다.
 
쫓겨난 엘리트 화이트칼라들은 손가락만 빨지 않았다. 피눈물을 삼키며 자존심을 꺾었다. 카페 알바, 택배 상하차, 배달 앱 콜을 뛰며 단기 알바 생태계로 꾸역꾸역 기어들어 갔다. 안 그래도 경쟁 치열한 생계형 노동 시장에 고학력 난민들이 홍수처럼 쏟아지자,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얄팍한 시급마저 가차 없이 깎여 나갔다.
 
내 친구 중 한 명은 불과 2025년만 해도 실리콘밸리 세일즈포스의 잘나가는 시니어 매니저였다. 번듯한 명함, 빵빵한 사내 의료보험, 든든한 퇴직연금에 연봉만 18만 달러(약 2억 5200만 원)를 꽂았다. 하지만 세 번째 불어닥친 AI 구조조정의 칼춤을 피하지 못했다. 반년 넘게 이력서를 뿌려대다 결국 운전대 앞 우버 기사용 앱을 켰다. 호화로웠던 수입은 4만 5000달러(약 6300만 원)로 처참하게 쪼그라들었다.
 
이건 안타까운 개인사가 아니다. 그 이면에 숨은 수학적 파급력이 핵심이다. 이 섬뜩한 공식을 뉴욕, 샌프란시스코 같은 대도시에 널린 수십만 명의 고학력 실직자들에게 대입해 보라. 이들이 서비스업 밑바닥으로 밀려들면서 팍팍하게 버티던 기존 서민들의 밥그릇마저 잔인하게 박살 냈다. 특정 섹터의 고용 붕괴가 밑바닥 서민의 임금 하락으로 직행하는 지옥의 하방 압력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일자리 생태계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우리가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살육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밀려난 1차 화이트칼라 난민들을 그나마 품어줬던 초단기 배달 노동판조차, 도로를 점령한 자율주행 배달 로봇과 무인 택시 부대가 무자비하게 밀어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2027년 2월, 용케 책상을 지킨 직장인들마저 '내일은 내 목이 날아갈지 모른다'는 공포에 질려 지갑을 철사로 꽁꽁 동여맸다. 찍혀 나가지 않으려 밤을 새워 두 배로 일했다(물론 AI를 비서로 혹사하면서). 승진이나 임금 인상 따위는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했다. 잔고만 부여잡은 채 소비는 완벽한 빙하기를 맞았다.
 
가장 악랄한 함정은 착시를 부르는 '시차'였다. 목이 날아간 고소득자들은 그동안 쌓아둔 두툼한 예금을 까먹으며 길게는 2~3분기 동안 태연하게 예전의 호화로운 씀씀이를 유지했다. 겉보기엔 멀쩡했다. 실물 경제가 완전히 피를 토하며 쓰러질 때까지 후행적인 통계 지표는 아무런 경고음도 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거대한 환상을 박살 내는 처참한 성적표가 날아들었다.
 
"미국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 48만 7000건으로 폭발. 팬데믹 공포 덮친 2020년 4월 이후 최악" (미국 노동부, 2027년 3분기)
 
실업수당을 구걸하는 행렬이 48만 7000명으로 폭등했다. 고용 데이터 업체 ADP와 신용평가사 에퀴팍스는 신규 실업자의 압도적 다수가 넥타이를 맨 화이트칼라 전문직이라는 충격적인 분석을 내놨다.
 
바로 다음 주, 끄떡없을 줄 알았던 S&P 500 지수가 6%나 피를 흘리며 곤두박질쳤다. 지긋지긋한 거시 경제의 늪이 마침내 월스트리트의 멱살을 잡고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평범한 불황은 융단폭격이다. 건설 노동자든, 사무실 직원이든 고용 비율에 맞춰 사이좋게 고통을 나눠 가진다. 통장 잔고가 없는 저소득층의 지갑이 가장 먼저 닫히기 때문에 소비 충격은 즉각적이고 광범위하게 통계에 찍힌다.
 
하지만 이번 대학살은 정밀 타격이었다. 칼끝은 오롯이 상위 소득 계층의 목줄을 겨냥했다. 이들은 전체 일자리 머릿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깃털처럼 가볍지만, 미국 전체 소비의 기둥을 비정상적으로 묵직하게 떠받치는 큰손들이다. 상위 10% 고소득자가 미국 전체 소비의 50% 이상을 긁어대고, 상위 20%가 무려 65%를 책임지는 극단적인 구조다. 외곽의 큰 집을 사고, 벤츠를 굴리며, 하와이로 휴가를 떠나고, 주말엔 오마카세를 먹으며 자식을 비싼 사립학교에 꽂아 넣는 진짜 물주들이다. 쓸데없이 돈을 펑펑 쓰는 임의 소비재 경제 전체를 멱살 쥐고 끌고 가는 거대한 엔진이다.
 
이 거대한 엔진들이 회사에서 쫓겨나고 연봉이 반토막 난 채 허드렛일로 내몰리면서, 단순 고용 지표 감소를 아득히 뛰어넘는 궤멸적인 소비 타격이 터졌다. 화이트칼라 일자리가 고작 2% 날아갔는데, 고급 소비재 지출은 4% 가까이 증발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공장 노동자의 해고와는 파괴력의 차원이 달랐다. 화이트칼라의 몰락은 교묘한 시차를 두고 경제의 심장부에 더 치명적인 독을 퍼뜨렸다. 곳간에 쌓아둔 쌀알을 믿고 소비 습관을 고치는 데 몇 달씩 늑장을 부린 탓이다.
 
2027년 2분기, 마침내 미국 경제는 돌이킬 수 없는 침체의 늪에 빠졌다. 뒷북치기 일쑤인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공식 사망 선고를 내리기 전부터 데이터의 핏빛 궤적은 선명했다. 2개 분기 연속 마이너스 실질 GDP 성장. 완벽한 경기 침체였다.
 
기막힌 건 이 아비규환의 참상조차 아직 본격적인 금융 시스템이 붕괴하는 '본게임'은 시작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는 점이다.
 
◇거대한 폭탄 돌리기
 
은행의 규제를 받지 않는 사모신용(Private Credit) 시장은 2015년 1조 달러(약 1400조 원) 미만에서 2026년 2조 5000억 달러(약 3500조 원) 규모의 괴물로 덩치를 키웠다. 이 어마어마한 판돈 중 상당액이 소프트웨어와 기술 기업 거래판에 뿌려졌다. 대부분 이들 SaaS 기업이 매년 10%대 중반의 매출 성장을 '영원히' 찍어줄 것이란 환상에 베팅한 빚잔치(차입매수, LBO)였다.
 
그 순진한 가정은 세상에 첫 에이전트 코딩 시연이 나온 순간부터 2026년 1분기 소프트웨어 주가 폭락 사태를 거치며 이미 숨을 거뒀다. 하지만 펀드 장부에 적힌 숫자는 시체가 썩어가는 줄도 모르고 뻣뻣하게 버텼다.
 
멀쩡한 상장 SaaS 기업들의 기업가치(EBITDA 배수)가 5~8배로 반토막이 났다. 하지만 사모펀드가 장악한 비상장 소프트웨어 회사들은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과거의 뻥튀기 된 매출 배수를 뻔뻔하게 장부에 올려놓고 있었다. 운용사들은 1달러짜리 가치를 92센트, 85센트 식으로 눈치 보며 찔끔찔끔 깎아내렸다. 밖에서 거래되는 똑같은 회사가 50센트에 던져지고 있는 판국에 말이다.
 
"무디스, 14개 발행사 180억 달러(약 25조 2,000억 원) 규모 PE 연계 소프트웨어 부채 신용등급 무더기 강등. 'AI 발 경쟁 파괴로 인한 구조적 수익 역풍' 직격. 2015년 에너지 붕괴 이후 최대 단일 섹터 심판" (무디스, 2027년 4월)
 
강등 버튼이 눌린 직후 터진 피바람은 모두가 똑똑히 기억한다. 백전노장들은 이미 2015년 셰일가스 파동 때 에너지 채권이 휴지 조각이 되던 시나리오를 뼈저리게 목격한 터였다.
 
소프트웨어를 담보로 빌려준 빚은 2027년 3분기부터 줄줄이 부도를 내기 시작했다. 정보 서비스와 컨설팅 회사를 집어삼킨 사모펀드 포트폴리오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수십억 달러의 빚을 끌어다 산 유명 SaaS 회사들이 굴욕적인 구조조정 도마 위에 올랐다.
 
젠데스크(Zendesk)의 몰락은 살인 현장의 결정적 증거였다.
 
"젠데스크, AI 고객 서비스 자동화 폭격에 ARR 증발하며 부채 약정 위반. 50억 달러 규모 다이렉트 랜딩 대출채권 반토막 난 58센트로 추락. 사모신용 역사상 최대 규모 소프트웨어 디폴트 참사" (파이낸셜 타임스, 2027년 9월)
 
불과 2022년, 사모펀드 헬맨 앤 프리드만과 퍼미라는 무려 102억 달러(약 14조 2800억 원)를 쏟아부어 젠데스크를 꿀꺽 삼키고 상장폐지 시켰다. 블랙스톤이 총대를 메고 아폴로, 블루아울, HPS라는 기라성 같은 전주들이 뭉쳐 50억 달러(약 7조 1000억 원)라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다이렉트 랜딩 대출을 쏴줬다. 당시 연간반복매출(ARR)을 담보로 잡은 대출로는 역대 최대 규모의 돈잔치였다. 이 무식한 대출은 젠데스크의 '연간 반복 매출'이 말 그대로 지구 끝까지 '반복'될 것이란 순진무구한 가정하에 설계됐다. 회사가 버는 돈(EBITDA)의 25배나 되는 빚을 지우는 건 그럴 때나 겨우 말이 됐다.
 
2027년 중반이 되자 모든 게 통제 불가능해졌다.
 
AI 에이전트 무리가 인간 상담원을 치워버리고 고객 클레임을 스스로 처리한 지 이미 1년이 넘어갔다. 젠데스크가 평정했던 영역(티켓팅, 라우팅, 짜증 나는 인간 고객 응대 관리)은, 아예 불만 접수 티켓 자체를 만들지 않고 0.1초 만에 오류를 고쳐버리는 AI 시스템에 통째로 뜯어 먹혔다. 거액 대출의 든든한 담보였던 '반복 매출'은 더 이상 반복되지 않았다. 그저 고객이 귀찮아서 아직 해지하지 않고 남아있는 찌꺼기 매출일 뿐이었다.
 
결국 역사상 가장 거대했던 매출 담보 대출은 사모신용 역사상 가장 끔찍한 소프트웨어 디폴트 폭탄으로 터졌다. 월스트리트의 모든 크레딧 데스크가 공포에 질려 동시에 소리쳤다. "순환적 경기 불황으로 위장한 구조적 사형 선고를 맞은 놈이 또 어디에 숨어 있나?"
 
하지만 초기 시장의 컨센서스는 놀랍게도 꽤 침착했다. 이 정도 출혈은 버틸 수 있다는 게 주류의 계산이었다.
 
그들의 논리는 이랬다. 사모신용은 언제든 예금자가 달려와 돈을 빼가는 2008년의 순진한 은행 구조가 아니다. 벼락치기 강제 매각을 피하도록 견고하게 짜인 요새다. 돈이 묶여 있는 꽉 막힌 폐쇄형 펀드다. 쩐주들은 7~10년 동안 무조건 돈을 묻어둬야 한다. 패닉에 빠져 뱅크런을 일으킬 예금자도, 당장 내일 만기가 돌아와 돈을 토해내라는 환매조건부채권 압박도 없다.
 
펀드 운용사들은 쓰레기가 된 부실 자산을 깔고 앉아, 여유롭게 담배를 피우며 천천히 빚을 갚도록 협상하고 시장이 회복될 때까지 버틸 수 있었다. 당장은 뼈아프지만 충분히 통제 가능한 고통이었다. 구부러질지언정 절대 부러지지 않도록 설계된 완벽한 시스템이라고 자랑했다.
 
블랙스톤, KKR, 아폴로의 오만한 경영진들은 펀드 내 소프트웨어 노출 비중이 자산의 7~13%에 불과하다며 콧방귀를 꼈다. 월가 애널리스트들의 리포트와 핀트윗(금융 트위터)의 입바른 계정들도 한목소리로 앵무새처럼 떠들었다. "사모신용은 마르지 않는 영구 자본(Permanent Capital)이다. 빚더미에 오른 일반 은행이었다면 당장 파산했을 타격도 거뜬히 스펀지처럼 흡수할 수 있다."
 
영구 자본. 이 마법의 단어는 불안에 떠는 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한 모든 실적 발표와 투자자 서한에 도배됐다. 사이비 종교의 주문과도 같았다. 하지만 대개의 맹목적 주문이 그렇듯, 아무도 그 이면에 숨은 치명적인 디테일을 파고들지 않았다. 그들이 떠벌린 '영구 자본'의 진짜 얼굴은 이랬다.
 
지난 10년간 탐욕스러운 대형 대체 자산 운용사들은 생명보험사를 닥치는 대로 집어삼켜 싼 이자의 거대한 자금 조달 창구로 개조했다. 아폴로는 아테네를, 브룩필드는 아메리칸 에퀴티를, KKR은 글로벌 아틀란틱을 샀다. 계산기는 기막히게 돌아갔다. 매달 꽂히는 연금 예치금이 절대 도망가지 않는 든든하고 장기적인 실탄 창고가 됐다. 운용사들은 노인들의 피 같은 예치금을 자신들이 찍어낸 위험천만한 사모신용 대출판에 밀어 넣고 양손으로 돈을 긁어모았다. 보험사 쪽에선 쏠쏠한 예대마진을 챙기고, 자산운용 쪽에선 묵직한 운용 보수를 뜯어냈다. 수수료에 또 수수료가 달라붙는 기적의 영구 동력 기관이었다.
 
단, 이 완벽한 사기극은 딱 하나의 절대 조건에서만 돌아갔다. 사모신용판에 굴린 대출이 절대 떼이지 않을 '안전한 돈'이어야만 했다.
 
AI 발 손실의 직격탄은 수십 년 뒤 연금을 내어줘야 할 장기 부채를 담보로 팔리지도 않는 쓰레기 비유동 자산을 쥐고 있던 보험사 대차대조표를 정통으로 때렸다. 시스템을 철벽처럼 지켜줄 거라 믿었던 그 위대한 '영구 자본'은, 알고 보니 정교한 리스크를 감수하는 쿨한 기관 자금이나 산전수전 다 겪은 세련된 헤지펀드의 돈이 아니었다.
 
바로 미국 평범한 가정, 즉 '메인 스트리트' 소시민들의 전 재산이었다. 지금 당장 디폴트가 터져나가는 사모펀드 연계 소프트웨어 채권에 떡하니 투자된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은퇴 연금이었다. 철창에 갇혀 도망칠 수 없던 자금의 정체는 생명보험 가입자들의 목숨줄이었고, 이 동네의 룰은 월가 도박판과는 차원이 달랐다.
 
미친 듯이 돈을 돌리던 은행권에 비해, 그간 보험 규제 당국은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순응적이고 안일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썩어가는 사모신용 채권이 보험사를 갉아먹자 마침내 경보음이 울렸다. 생보사들의 위험천만한 사모신용 쏠림을 예의 주시하던 규제 당국이 칼을 빼 들었다. 이들 쓰레기 자산의 위험기준자기자본(RBC) 처리 등급을 가차 없이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비상이 걸린 보험사들은 살기 위해 어떻게든 자본금을 더 쌓거나 알량한 자산이라도 내다 팔아야 했다. 하지만 이미 공포로 마비된 시장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헐값이 아니고선 둘 다 불가능했다.
 
"뉴욕, 아이오와주 규제 당국, 생보사 보유 사모 신용 자본 요건 전면 강화 칼 빼 들어. 전국보험감독관협의회(NAIC) 가이드라인으로 피 말리는 자본 확충 및 대대적 사정 예고" (로이터, 2027년 11월)
 
무디스가 생보사 아테네의 재무건전성 등급에 '부정적' 딱지를 붙이자, 모기업 아폴로 주가는 단 이틀 만에 22%나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브룩필드, KKR 등 잘나가던 포식자들도 도미노처럼 무릎을 꿇었다.
 
막후의 톱니바퀴는 훨씬 더 기괴하게 꼬여있었다. 이 탐욕스러운 이들은 보험사라는 영구 동력기를 만든 데 만족하지 않고, 규제 구멍을 파고들어 수익을 극한으로 쥐어짜는 역겨운 역외 조세회피 구조까지 정교하게 조립해뒀다.
 
미국 본토 보험사가 연금을 끌어모으면 그 막대한 리스크를 자회사가 세운 버뮤다나 케이맨 제도의 페이퍼 컴퍼니(재보험사)로 쓱 넘겼다. 똑같은 쓰레기 자산을 들고 있어도 자본금을 훨씬 덜 쌓아도 되는 헐렁한 섬나라 규제를 악용한 것이다. 이 역외 자회사는 유령 특수목적법인(SPV)을 세워 외부 돈을 끌어왔고, 이렇게 모인 검은돈은 다시 모기업 자산운용사가 찍어낸 사모신용 대출에 보험사 돈과 섞여 맹목적으로 투입됐다.
 
신용평가사들 역시 (당연하게도) 투명함과는 거리가 먼 한통속이었다. 이들 중 일부는 심지어 빚을 찍어낸 사모펀드가 주인을 꿰차고 있었다. 서로 다른 대차대조표에 거미줄처럼 들러붙어 돈을 돌린 이들의 불투명성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기초 대출이 터져 나가며 연쇄 부도가 났을 때, 실제로 어느 회사가 얼만큼의 피를 뒤집어썼는지 실시간으로는 신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2027년 11월의 폭락장은 월가의 오만한 인식을 완전히 박살 냈다. 그저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흔한 경기 침체일 거란 헛된 희망은 산산이 부서지고,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거대한 공포가 자리를 잡았다.
 
미 연방준비제도(Fed) 케빈 워시 의장은 11월 피 말리는 긴급 FOMC 회의에서 이 아비규환을 이렇게 요약했다. "화이트칼라의 영원한 생산성 증가라는 환상에 판돈을 건 상관적 베팅의 거대한 데이지 체인(폭탄 돌리기)이 터졌다."
 
손실 그 자체가 당장 경제를 죽이는 건 아니다. 거대한 손실을 시장이 '인식'하고 공포에 질리는 순간, 진짜 파멸이 시작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손실의 인식을 그 무엇보다 두려워하게 만든, 미국 경제의 심장부이자 가장 거대한 금융 폭탄이 째깍거리는 소리를 듣게 된다.
 
◇1경 8200조 원의 뇌관, 모기지 붕괴
 
"질로우 주택 가치 지수 샌프란시스코 11%, 시애틀 9%, 오스틴 8% 폭락. 국책 모기지 업체 패니메이, 잘나가던 기술/금융직 40% 이상 몰려 사는 부촌에서 '초기 연체율 이상 급등' 경보 발령" (질로우/패니메이, 2028년 6월)
 
이번 달 발표된 질로우 주택 가치 지수는 전년 대비 샌프란시스코 11%, 시애틀 9%, 오스틴 8% 폭락하며 피를 토했다. 심장을 철렁이게 한 뉴스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패니메이는 집값 비싼 동네의 고액 모기지 대출에서 초기 연체율이 튀어 올랐다고 경고했다. 신용점수 780점 이상의 초우량 엘리트 차주들이 몰려 살아, 통상 월가에서 절대 무너지지 않는 '철벽 방어선'으로 불리던 텃밭이다.
 
미국 주거용 모기지 시장의 덩치는 무려 13조 달러(약 1경 8200조 원)에 달한다. 모든 모기지 심사의 뼈대는 단 하나의 근본적 믿음에 기대어 있다. 돈을 빌린 이가 빚을 갚는 수십 년 내내 지금과 비슷한 월급을 받으며 절대 회사에서 잘리지 않을 거란 맹목적 믿음이다. 무려 30년 동안 말이다.
 
AI가 불러온 화이트칼라 대학살은 차주들의 소득 기대치를 꺾어버리며 이 거대한 뼈대를 톱질하고 있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을 끔찍한 질문을 이제 월가 전체가 스스로 던져야 한다. "우리가 안전하다고 믿었던 그 엄청난 우량 모기지 채권은 과연 무사한가?"
 
미국 금융 역사를 피로 물들인 모기지 위기는 다음 세 가지 중 하나가 방아쇠를 당겼다.
 
첫째, 2008년처럼 집을 살 능력도 없는 이들에게 무턱대고 돈을 쏴준  '투기적 과열'.
둘째, 1980년대 초처럼 변동 금리 폭탄이 터져 이자를 감당 못 해 길거리에 나앉은 '금리 충격'.
셋째, 1980년대 텍사스 오일 쇼크나 2009년 미시간 자동차 산업 붕괴처럼 동네 경제 전체가 날아간 '국지적 경제 충격'.
 
하지만 지금 덮친 위기는 이 중 단 하나도 해당하지 않는다.
 
빚을 못 갚고 헐떡이는 이들은 서브프라임 급의 신용불량자가 아니다. 상위 1%에 달하는 신용점수 780점대의 엘리트들이다. 집값의 20%를 번듯하게 계약금으로 밀어 넣었고, 신용카드 대금 한 번 밀린 적 없는 깨끗한 이력의 소유자들이다. 대기업을 수십 년 다닌 안정적인 고용 기록에, 은행 문을 두드릴 때마다 소득 증빙 서류를 철저히 검증받았다. 금융 시스템의 모든 리스크 모델이 기계적으로 '절대 안전' 도장을 찍어준 1등급 신용의 코어들이었다.
 
2008년의 대출 서류는 잉크가 마르기도 전인 첫날부터 썩어문드러진 사기극이었다. 반면 2028년의 대출 서류는 첫날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우량 채권이었다. 돈을 빌려주고 난 뒤, 세상의 룰이 통째로 엎어졌을 뿐이다. 평범한 중산층 엘리트들은 더 이상 오지 않을 환상 속의 미래 월급을 담보로 천문학적인 돈을 끌어다 쓴 꼴이 됐다.
 
우리는 이미 2027년, 지표면에선 보이지 않는 지하 암반의 균열을 포착했다. 당장 집값을 연체하진 않았지만 마이너스 통장(HELOC)을 한도 끝까지 끌어 쓰고, 노후를 대비한 퇴직연금 계좌를 깨부수고, 신용카드 돌려막기 빚이 폭증하기 시작했다. AI에 책상을 뺏기고 신규 채용은 얼어붙었으며 보너스 잔치가 박살 나자, 이 고상한 우량 가구들의 총부채상환비율은 두 배로 미친 듯이 치솟았다.
 
모든 임의 소비를 끊고, 비상금 통장을 박박 긁고, 지붕에서 비가 새도 수리를 미뤄야만 겨우 은행에 모기지 원리금을 바칠 수 있었다. 표면적으론 연체율 0%의 모범 시민이었지만, 실상은 툭 치면 억 하고 무너질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었다.
 
그리고 AI 역량의 잔혹한 발전 속도는 그 마지막 일격이 코앞까지 다가왔음을 경고했다. 전국 평균 연체율은 여전히 평온한 듯 위장하고 있었지만,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맨해튼, 오스틴 같은 비싼 동네의 연체율 지표가 미친 듯이 발작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지금 가장 소름 끼치는 롤러코스터의 꼭대기에 멈춰서 있다. 집값이 떨어져도 싸게 주워 담을 건전한 매수자가 대기하고 있다면 끄떡없다. 하지만 지금 시장을 떠받쳐야 할 이들도 똑같이 월급통장이 반토막 나 피를 흘리고 있다.
 
월가의 공포 지수는 치솟고 있지만, 아직 피바람이 부는 전면적인 모기지 붕괴 사태는 오지 않았다. 연체율 지표가 꿈틀대고는 있으나 2008년 리먼 사태 때의 핏빛 수치엔 한참 못 미친다. 진짜 심장을 옥죄는 위협은 그 숫자가 가리키는 파멸적 '궤적'이다.
 
지능 대체 소용돌이는 이제 실물 경제를 나락으로 처박는 두 개의 육중한 금융 가속 페달을 장착했다.
노동 시장의 붕괴, 모기지 부도 공포, 사모 시장의 대학살. 이 세 가지 재앙은 서로의 꼬리를 물고 파괴력을 배가시킨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썰어내고 달러를 살포하는 낡은 양적 완화(QE) 도구 따위는 금융 엔진의 불만 잠시 끌 뿐, 박살 난 실물 경제의 엔진엔 헛바퀴만 굴릴 뿐이다. 지금 실물 경제가 피를 토하는 건 은행에 돈이 말랐기 때문이 아니다. AI가 인간 지능의 가치를 쓰레기통에 처박았기 때문이다. 연준이 금리를 0%로 후려치고 시장에 굴러다니는 모든 주택저당증권(MBS)과 부도난 소프트웨어 부채를 싹쓸이해 준다 한들 본질은 1mm도 바뀌지 않는다.
 
인간이 18만 달러(약 2억 5200만 원)를 줘야 부릴 수 있던 콧대 높은 매니저를, 무기질의 클로드 에이전트가 단돈 월 200달러(약 28만 원)에 군말 없이 갈아 마신다는 그 잔혹한 사실 말이다.
 
이 서늘한 공포가 뇌관을 때리면 올 하반기 모기지 시장은 거대한 굉음과 함께 쪼개질 것이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이 된다면, 뉴욕 증시의 하락 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고점 대비 57% 폭락했던 악몽을 고스란히 재현할 것이다. S&P 500 지수는 3500 선으로 곤두박질칠 전망이다. 챗GPT가 세상에 처음 튀어나오며 인류를 경악시켰던 2022년 11월 직전으로 주가가 시계열을 역행한다는 뜻이다.
 
13조 달러(약 1경 8200조 원) 규모 주거용 모기지의 토대가 되는 '영원한 월급'이라는 가정이 구조적으로 산산조각 났다는 사실만은 명백하다. 모기지 시장이 이 거대한 똥덩어리를 소화 불량으로 토해내기 전에, 정부 정책이 기적적으로 개입해 시장을 틀어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진 않지만, 시야를 가득 메운 먹구름의 존재를 부정할 순 없다.
 
◇시간과의 싸움
 
파괴의 첫 번째 루프는 실물 경제에서 똬리를 틀었다. AI 성능 폭발, 기업 고용 학살, 가계 소비 빙하기, 마진 쥐어짜기, 기업의 무광기 AI 베팅, 그리고 다시 AI 성능 폭발.
 
이 악순환은 곧장 금융 시스템으로 불똥을 튀겼다. 소득이 썰려 나간 중산층이 모기지를 못 갚고, 손실을 얻어맞은 은행이 대출 수도꼭지를 잠갔다. 자산 가치가 녹아내리며 부의 효과(Wealth effect)가 박살 나자 피드백 루프는 미친 듯이 속도를 올렸다. 그리고 이 모든 아비규환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갈피조차 못 잡고 뒷북만 치는 무능한 정부 탓에 지옥으로 치닫고 있다.
 
애초에 국가 시스템은 이런 기괴한 위기를 버텨내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미국 연방 정부가 걷어 들이는 세금은 본질적으로 인간이 피땀 흘린 '시간'에 매기는 삥뜯기다. 사람이 출근해 일을 하고 기업이 월급을 주면, 정부가 그 중간에서 달콤하게 수수료를 떼어가는 구조다. 개인 소득세와 급여세는 정상적인 국가를 굴러가게 하는 강력한 척추다.
 
하지만 올해 1분기 연방 세수 실적은 의회예산처(CBO)가 뽑아둔 기본 전망치보다 무려 12%나 처참하게 구멍이 났다. 예전처럼 빵빵한 월급을 챙겨가는 사람이 씨가 마르면서 급여세가 증발했다. 간신히 일자리를 구해도 임금 자체가 반토막 나면서 소득세 수입마저 쪼그라들었다. 국가 전체 생산성은 천장을 뚫고 치솟았지만, 그 막대한 과실은 피를 흘리는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가와 거대한 컴퓨팅 인프라 소유주들의 배만 불렸다.
 
미국 GDP 대비 노동 분배율은 1974년 64%에서 2024년 56%로 미끄러졌다. 세계화, 공장 자동화, 노조의 교섭력 박살이 합작해 40년 동안 서서히 피를 말린 결과다. 그런데 AI가 기하급수적으로 발작하기 시작한 지난 단 4년 만에, 이 수치는 46%로 수직 추락했다. 인류 경제 지표 역사상 가장 끔찍한 급락이다.
 
생산량은 여전히 막대하다. 하지만 이 돈이 더 이상 평범한 가계를 거쳐 기업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돈줄이 가계를 패스한다는 건 곧 국세청 금고도 그대로 패스한다는 뜻이다. 경제를 굴리던 거대한 순환의 고리가 끊어졌고, 정부는 어떻게든 몽키스패너를 들고 개입해 이 박살 난 배관을 고쳐내야만 한다.
 
모든 경제 불황이 그렇듯 세금은 안 걷히는데 정부가 쓸 돈은 미친 듯이 늘어난다. 진짜 공포는 이번 지출 압박이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순환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국가의 자동 안정화 장치(실업급여 등)는 몇 달 쉬다 다시 출근할 일시적 해고자에 맞춰 설계됐다. 돌아가지 않는 공장이 다시 돌 때까지 연명하라고 주는 돈이다. 하지만 지금 잘려 나간 수많은 엘리트는 예전 연봉으로 두 번 다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정부는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며 GDP 대비 15%라는 미친 재정 적자를 과감히 용인했다. 바이러스만 잡히면 경제가 V자로 튀어 오를 일시적 재난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 정부의 구호품을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은 백신 맞고 털어낼 전염병에 걸린 게 아니다. 매일 밤낮으로 똑똑해지는 무자비한 기술에 영구적으로 '대체'된 것이다. 정부는 금고에 돈이 가장 쪼들리는 바로 그 순간, 벼랑 끝에 몰린 가계에 천문학적인 현금을 꽂아줘야 하는 모순에 처했다.
 
기축통화국 미국이 디폴트를 내며 쓰러지진 않을 것이다. 빚 갚을 달러를 윤전기로 마구 찍어내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그 끔찍한 스트레스는 약한 고리에서 터져 나왔다.
 
지방채 수익률이 연초부터 심상치 않게 찢어지며 양극화를 보이고 있다. 주민 소득세가 없는 주(State)들은 그나마 버텼다. 하지만 세수를 고소득자들의 소득세에 철저히 의존하던 주(주로 민주당 텃밭인 블루 스테이트)가 찍어낸 일반 보증 지방채는 끔찍한 디폴트 위험을 가격표에 반영하며 박살 나기 시작했다. 냄새를 맡은 정치꾼들은 재빠르게 물고 뜯기 시작했고, 누구에게 구제금융을 쏴줄 것이냐는 논쟁은 역겨운 당파 싸움으로 번졌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건 현 행정부가 이 사태의 구조적 썩음을 일찍 파악하고 '전환 경제법'이라는 초당적 법안을 테이블에 올렸다는 점이다. 국가가 빚을 내고 AI 추론 컴퓨팅에 세금을 매겨, 일자리를 잃고 길거리에 나앉은 노동자들에게 다이렉트로 현금을 꽂아준다는 구상이다.
 
테이블 구석에 놓인 가장 급진적인 법안은 선을 훌쩍 넘는다. '공유 AI 번영법'은 AI 지능 인프라가 벌어들이는 수익에 대한 공공의 지분을 뻔뻔하게 요구한다. 거대한 국부 펀드와 AI가 뽑아낸 산출물에 대한 로열티 사이의 기괴한 잡종을 만들어, 거기서 나오는 배당금으로 국민을 먹여 살리자는 논리다. 기겁한 민간 기업 로비스트들은 이것이 공산주의로 가는 급행열차라며 언론에 거품을 물고 경고장을 날렸다.
 
논의 막후의 정치는 토악질이 나올 만큼 뻔하고 비열했다. 표퓰리즘과 벼랑 끝 전술이 위기를 뻥튀기했다.
 
우파는 현금 살포와 부의 재분배를 마르크스주의라 물어뜯으며, 컴퓨팅에 세금을 매기는 순간 패권이 중국에 넘어간다고 피대를 세운다. 좌파는 기득권 기업들의 입김이 묻은 솜방망이 세금은 이름만 바꾼 규제 포획 사기극일 뿐이라고 맞불을 놓는다. 재정 매파는 나라 곳간이 거덜 난다며 핏대를 세우고, 비둘기파는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섣불리 돈줄을 조였다 경제를 말아먹은 긴축의 뼈아픈 역사를 들이민다. 백악관 주인을 결정할 올해 대선을 코앞에 두고 이 분열은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하고 있다.
 
여의도 뺨치는 정치판의 말싸움이 길어지는 동안, 무능한 입법 속도를 비웃기라도 하듯 사회의 밑동은 썩어 문드러지고 있다.
 
'실리콘밸리를 점령하라' 시위는 폭발 직전인 대중의 분노를 상징한다. 지난달 성난 시위대는 샌프란시스코의 앤스로픽과 오픈AI 본사 입구를 3주 내내 쇠사슬로 틀어막았다. 길거리에 나앉은 시위대는 갈수록 덩치를 키우고 있으며, 이들의 살벌한 텐트촌은 시위를 촉발한 처참한 실업률 지표보다 언론 헤드라인을 더 시끄럽게 장식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수트 빼입고 월가를 주무르던 은행가들보다 더 지독한 증오를 받는 이들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지금 잘나가는 AI 연구소들이 그 역겨운 왕관을 빼앗기 위해 달려가고 있다.
 
대중의 핏발 선 시선에선 당연한 결과다. AI 창업자와 초기 돈을 댄 벤처캐피탈들은 미국의 졸부 시대(도금 시대)조차 우스워 보일 미친 속도로 부를 빨아들였다. 인간의 피를 갈아 넣어 달성한 생산성 붐의 달콤한 과실은 소름 돋게도 거대한 컴퓨팅의 소유주와 AI 연구소 지분을 쥔 극소수 자본가들의 입로 직행했다. 이 지옥 같은 착취 구조는 미국의 빈부격차를 인류 역사상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괴한 수준으로 찢어놓았다.
 
진영마다 손가락질하는 악당은 다 다르다. 하지만 진정 우리 목을 조르는 진짜 악당은 흐르는 '시간'이다.
 
AI의 지능 폭발은 굼뜬 국가 제도가 적응하는 속도를 비웃으며 진화한다. 책상물림들의 정책은 피 터지는 현실이 아니라 한가로운 이념의 잣대에 맞춰 기어간다. 만약 워싱턴의 엘리트들이 당장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합의하지 못한다면, 브레이크 박살 난 피드백 루프가 그들 대신 파멸의 다음 챕터를 피로 써 내려갈 것이다.
 
◇에필로그 - 지능 프리미엄의 잔혹한 해체
 
현대 경제사가 쓰인 이래 인간의 뇌, 즉 지능은 언제나 가장 귀하고 비싼 톱니바퀴였다. 돈(자본)은 세상에 널려 있었고 언제든 찍어낼 수 있었다. 땅속 자원은 언젠가 고갈되겠지만 어떻게든 대체제를 찾았다. 기술 발전은 인간의 굼뜬 뇌가 헉헉대며 적응할 수 있을 만큼 자비롭게 느렸다.
 
하지만 시장을 쪼개 분석하고, 직관으로 결정하고, 무언가를 창조하고, 타인을 혀로 설득하며, 조직을 굴러가게 조율하는 인간 고유의 '지능'. 이것만큼은 공장에서 붕어빵 찍듯 대량으로 복제할 수 없는 유일하고 성스러운 영토였다.
 
인간의 지능은 그 절대적인 희소성 덕분에 수백 년 동안 어마어마한 몸값(프리미엄)을 거만하게 누렸다. 당신이 월급을 받는 노동 시장부터 집을 사는 모기지 대출, 국가를 굴리는 세법에 이르기까지 우리 경제의 모든 뼈대는 '인간의 똑똑함은 영원히 비싸다'는 거만한 전제 위에 콘크리트처럼 부어져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견고했던 프리미엄이 속절없이 박살 나는 잔혹한 라이브 쇼를 목격하고 있다.
 
서버에서 돌아가는 기계 지능은 이제 인간의 뇌를 가볍게 대체하며, 소름 돋는 속도로 똑똑해지고 있다. 수십 년 동안 '복제 불가능한 희소한 인간의 정신'에 맞춰 톱니바퀴를 깎아왔던 거대한 금융 시스템은 당황하며 모든 자산의 가격표를 새로 뜯어고치고 있다. 그 재평가의 과정은 뼈를 깎는 고통을 수반하며 폭력적이고 무질서하다. 심지어 이 피의 축제는 끝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가격표를 바꿔 단다고 해서 세상이 내일 당장 멸망하는 것은 아니다.
 
미쳐 돌아가는 이 경제도 결국 피를 흘리며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낼 것이다. 무너진 잿더미 위에서 그 타협점을 찾아내는 일. 그것이야말로 오직 숨 쉬는 인간만이 해낼 수 있는, AI가 뺏어가지 못한 몇 안 되는 마지막 임무다. 우리는 기필코 이 과제를 제대로 풀어내야 한다.
 
경제 엔진에서 가장 위대한 효율을 내는 자산이 일자리를 폭발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사람들을 길거리로 쫓아내는 이 기괴한 사태는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 케인스든 프리드먼이든 어떤 늙은 경제학자의 프레임워크도 지금 상황엔 들어맞지 않는다. 가장 희귀하고 비싸야 할 '지능'이라는 자원이 쓰레기처럼 흔해빠진 세상을 상정하고 만든 매뉴얼은 지구상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백지상태에서 새로운 룰과 프레임워크를 짜내야만 한다. 파국이 덮치기 전 늦지 않게 이 룰을 완성할 수 있느냐, 오직 그것만이 우리의 숨통을 쥐고 있는 유일한 질문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당신은 지금 경제가 박살 난 2028년 6월이 아니라, 아직 숨을 쉬고 있는 2026년 2월에 이 글을 읽고 있다.
 
S&P 500 지수는 미친 듯이 사상 최고치를 뚫으려 하고 있다. 모든 것을 파괴할 부정적 피드백 루프는 아직 방아쇠가 당겨지지 않았다. 우리는 이 섬뜩한 시나리오의 일부가 그저 소설로 끝날 것이라 확신한다. 하지만 동시에 기계 지능의 진화가 소름 끼치게 가속도를 낼 것이란 사실 역시 1%도 의심하지 않는다. 인간 뇌에 붙어있던 거만한 프리미엄의 거품은 가차 없이 쪼그라들 것이다.
 
우리에겐 아직 시간이 있다. 투자자로서 내 계좌의 포트폴리오가, 앞으로 10년도 못 버티고 박살 날 썩은 가정 위에 세워진 건 아닌지 점검할 시간 말이다. 사회 전체가 몰락의 구덩이에 빠지기 전 선제적으로 방어벽을 칠 시간도 아직 모래시계 안에 조금 남아있다.
 
탄광 속 카나리아는 피를 토할지언정, 아직은 살아 숨 쉬고 있다.
 
 
*시트리니는 매크로 경제 및 금융 시장 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시트리니 리서치 소속으로, 이 글의 주 집필을 맡았다. 알랍 샤는 로터스(LOTUS) 소속 전문가로, 이번 '지능 위기' 시나리오의 핵심 아이디어를 고안해 제공했다. 관련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룬 '지능 폭발(Intelligence Explosion)' 시리즈를 연재 중이다.
 
 
 
 
 
=======
 
 
 
ai위협을 경고하는 글이라 아이러니하지만 ai 요약본도 첨부할게
 
 

1. 유령 GDP(Ghost GDP)의 역설

AI 덕분에 기업의 생산성은 역사적 수준으로 폭증하지만, 일자리를 잃은 인간의 소득이 사라지면서 소비가 실종됩니다. 기계는 물건을 사지 않으므로 국가 장부상의 수치(GDP)는 높으나 실물 경제는 돌아가지 않는 '죽은 생산'의 시대가 도래합니다.

2. 소프트웨어 및 중개 산업의 몰락

AI 에이전트가 코딩과 복잡한 업무를 저비용으로 수행하면서, 기존의 비싼 SaaS(소프트웨어 서비스) 기업들과 수수료를 기반으로 하던 중개업(부동산, 보험, 배달 플랫폼 등)의 해자가 순식간에 파괴됩니다. 이는 기업의 이익이 인간 노동자가 아닌 AI 인프라 소유주(빅테크, 반도체 기업)에게만 집중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3. 1경 8,200조 원 규모의 금융 뇌관: 모기지 붕괴

가장 치명적인 지점은 화이트칼라의 고액 연봉을 담보로 세워진 미국의 모기지(주택 담보 대출) 시장입니다. '우량 차주'였던 엘리트층의 소득이 붕괴하면서,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 때보다 더 거대한 규모의 모기지 채권과 이를 떠받치던 사모신용(Private Credit) 및 연금 시스템이 연쇄 부도 위기에 처합니다.

4. 지능 프리미엄의 종말과 국가 시스템의 무능

수백 년간 유지되던 '인간 지능의 희소성(지능 프리미엄)'이 사라지면서 노동 분배율이 처참하게 추락합니다. 정부는 세수 부족과 정치적 분열로 인해 'AI세'나 '기본소득' 같은 구조적 대책을 제때 내놓지 못하고 디플레이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이 리포트는 "인간의 지능은 영원히 비싸다"는 전제 위에 세워진 현대 자본주의의 모든 가격표가 AI에 의해 다시 쓰여야 하며, 그 과정은 매우 폭력적일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ㅊㅊ-https://www.fmkorea.com/best/953347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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