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경제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는 가상 시나리오 보고서로 뉴욕 증시 변동성을 키운 시트리니 리서치(Citrini Research) 창업자가 시장 반응에 대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당혹감을 드러냈다. 실제 경제 전망이 아닌 사고 실험 성격의 분석이 투자 심리를 자극하며 글로벌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린 데 따른 후일담이다.
25일(현지 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제임스 반 길런(James van Geelen·33) 시트리니 리서치 창업자는 “주가가 움직일 것이라 생각했다면 보고서를 무료로 공개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번 시장 반응이 예상 밖이었다고 밝혔다.
문제의 보고서는 ‘2028 글로벌 인텔리전스 위기(The 2028 Global Intelligence Crisis)’라는 제목의 약 7000자 분량 글로, AI 확산이 화이트칼라 고용을 급격히 대체할 경우 실업률이 10% 이상 상승하고 자산 가격이 급락할 수 있다는 가상 경제 시나리오를 담고 있다. 해당 보고서는 온라인 뉴스레터 플랫폼 서브스택(Substack)을 통해 공개된 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며 월가 투자자들 사이에서 주요 논쟁 주제로 떠올랐다.
● 가상 시나리오가 촉발한 하루짜리 ‘AI 쇼크’
보고서 확산 직후 뉴욕 증시는 급격히 흔들렸다. S&P500 지수는 장중 상승세에서 하락세로 전환해 1% 넘게 떨어졌고 금융주 지수는 지난해 4월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소프트웨어 관련 상장지수펀드(ETF)는 4% 이상 급락했다.
보고서에서 구조적 위험 사례로 언급된 서비스나우(ServiceNow), 도어대시(DoorDash), 아메리칸익스프레스(American Express) 등 개별 종목들도 동반 하락했다. 다만 시트리니 측은 해당 종목에 대한 공매도 포지션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반 길런 창업자는 “시장 참여자들이 이미 AI가 기존 산업에 미칠 2차 충격(second-order disruption)을 우려하고 있었고, 보고서가 그 불안을 집중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 하루 만에 반등…드러난 ‘AI 심리 민감도’
증시 충격은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급락했던 주요 지수와 종목들은 다음 거래일 시장 전반 반등 흐름 속에서 상당 부분 낙폭을 회복했다. 시장의 펀더멘털 변화보다 투자 심리 위축이 단기 변동성을 키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보고서 공개 이후 반 길런 창업자에게는 수많은 반박 의견이 쏟아졌다. 그는 가장 인상 깊었던 사례로 한 투자자가 자신의 AI 위기 시나리오에 반대하면서도 반박 논리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앤트로픽의 인공지능 챗봇 ‘클로드(Claude)’를 활용한 일을 소개했다. 반 길런은 “AI가 인간을 대체하지 못한다는 주장을 AI의 도움을 받아 설명한다면 논리 자체가 약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례는 AI를 둘러싼 시장 인식이 성장 기대에서 산업 파괴 가능성에 대한 우려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된다. 기술 낙관론이 주가 상승을 이끌던 국면에서 이제는 고용과 기업 수익 구조에 미칠 영향이 새로운 위험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 개인 뉴스레터가 흔든 월가…정보 권위 이동
이번 사건은 대형 투자은행이나 국제기구가 아닌 소규모 독립 리서치 기관의 온라인 보고서가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을 촉발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전통적 투자은행 보고서가 아닌 개인 뉴스레터가 시장 변동성의 촉매로 작용하면서 금융 정보 권위가 기관 중심에서 디지털 네트워크로 이동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직원 약 10명 규모의 시트리니 리서치는 테마형 투자 분석을 제공하는 연구기관으로 구독자 수는 11만 명을 넘는다. 반 길런은 의대를 목표로 했던 학생 시절 이후 대체의학 사업을 매각한 자금을 바탕으로 투자 분석 활동을 시작했으며,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SVB) 붕괴 이전 해당 종목 공매도 의견을 제시하며 월가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금융시장에서 아이디어는 결국 결과로 평가된다”며 “누가 말했느냐보다 어떤 논리를 제시했느냐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 “폭락론자 아니다”…AI 이후 경제 논쟁 촉발
반 길런은 이번 보고서가 시장 충격을 의도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논의를 촉발하기 위한 문제 제기였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트리니 리서치가 그동안 엔비디아와 알파벳 등 AI 관련 산업에 대해 비교적 낙관적인 시각을 유지해 왔다며 “우리는 금융위기 발생을 전제로 투자 포지션을 구축한 상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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