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을 오래 탐구한 사람은 대화할 때 표가 난다. 다소 추상적인 질문을 던져도 말의 속도는 느리지만 의견을 막힘없이 서술한다. 함부로 확신하지 않고 여전히 답을 찾는 중이라는 겸손도 함께. 배우 김유정이 그렇다. 아직 20대지만 23년 차 배우.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필모그래피가 풍성해야 가능한 ‘액터스 하우스’의 최연소 주인공이었고, 동물과의 소통을 절감했다는 이야기에선 여섯 살에 출연한 영화 <각설탕>(2006)을 언급했으며, 드라마 <친애하는 X>(2025)에 이어 홍의정 감독의 영화 <복수귀> 촬영을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막 마쳤다. 그녀의 깊은 사유에 이유를 찾던 중 10대에 촬영한 영화 <우아한 거짓말>(2014)과 <비밀>(2015)에 이르렀다. 쉽지 않은 상황에 놓인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또 사춘기의 여러 의문이 겹치면서 김유정은 밤마다 본질적인 질문에 골몰했다. “나는 어떤 존재이고 성향과 성격은 어떤가를 세세히 파고들었어요. 답이 없는 질문에 답을 갈구하니 힘들었죠.” 고민은 10여 년 이어졌고 몇 년 전에야 조금 안정됐다. “계기는 너무 사적이라 비밀이에요.(웃음) 너무 슬픈 일을 겪으면서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단순하게 사는 연습을 시작했죠.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보고 싶으면 보고 못 보면 할 수 없다는 마음을 먹으니 조금 편안해졌어요.” 다만 오늘 밤에도 질문은 계속된다. “사물도 각각의 의미를 가지잖아요. 내가 무겁지 않고 즐겁게 나아가려면 주변의 소중한 것들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가야 할지를 연구하고 있어요. 물론 너무 깊이 도달하지 않게 제어해야죠.(웃음)”
김유정은 완벽주의 성향이라 자신에게 가혹한 적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뭔가 답답하고 불안한 이유를 어느 순간 알았어요. 완벽할 수 없는데 그러려고 애쓴 거죠. 어릴 땐 NG를 내면 안 된다는 강박이 있었고, 가족과 있을 때도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어요. 나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엄격해지고 있음을 깨닫고 멈추려 했어요. 이제는 NG가 나더라도 실수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고 위안해요. 작품을 준비할 때도 방향성은 염두에 두되 다른 이들과 의견을 주고받으며 조율해가죠. 또 이젠 어려우면 어렵다고 이야기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감정을 표현하고 힘들면 기대기도 하려고요. 그게 저를 지키는 방법 같아요.” 얼마 전엔 고양이에게 큰 위로를 받았다. “슬픈 날이었어요. 키우는 고양이가 말없이 곁에 있으니 편안해졌어요.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무언의 소통이 큰 힘을 가졌구나 싶었죠.” 지난 수년간 김유정의 오랜 과제는 소통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사람들과 일을 해오면서 소통의 중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을 계속 만나는 직업이기도 하고, 소통이 잘돼서 감동하고 또 어려움을 겪기도 했죠. 무엇이 내게 가장 중요한지 생각해보면 주로 소통이었어요. 저뿐 아니라 모두에게 해당될 거예요. 완벽한 소통은 어렵지만 그를 되새기면서 에너지와 마음을 쓰고 있어요.”
사유와 질문으로 꽉 찬 김유정이 비워지는 때는 여행 중이 아닐까 싶다. 10대 시절부터 혼자 여행을 다녔고 산티아고 순롓길에 이어 지난해에는 캐나다를 기차로 횡단했다. 평소 즐겨 입는 편안한 캐주얼 차림에 배낭 하나 메고 길 위에 섰다.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때론 벅차올라 카메라를 켜고 오래 혼잣말을 했다. “지금의 나와 이야기해야만 할 것 같았어요.(웃음) 여행으로 시야가 넓어지고 제가 정화되는 것 같아요.”
김유정은 배우로서 어느 단계를 지나고 있을까. “특정 단계를 언급하면 거기에 갇혀버릴 것 같아요. 다만 자유로운 단계라고 말하고 싶어요. 원하는 것을 섬세하게 찾아가면서 방향을 잡는 중이죠. 반면에 그냥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길이 보이고, 그때만의 색이 나오겠죠. 우선 지난 이미지에 갇히지 않고 다른 일을 해보려고요. 언뜻 쓸데없어 보이더라도 일단 열어보고 싶어요.”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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