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훗날 영국 왕 리처드 3세(Richard III)가 되는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 (1452-1485)

1483년 요크 왕조의 전성기를 이끌던 에드워드 4세가 갑작스럽게 사망하고 당시 겨우 12세였던 에드워드 5세가 왕이 되자
리처드 공작은 우드빌 가문의 권력 독점을 막고 조카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실권을 장악, 왕의 최측근이었던 헤이스팅스 경 등을 반역죄로 몰아 즉결 처형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였고,

결국 에드워드 4세와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결혼이 무효라고 주장하며 왕위를 찬탈한다.

리처드는 어린 조카들을 안전상의 이유라며 런던 탑에 유폐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왕자들은 "우연히" 대중의 눈에서 완전히 사라져 쥐도새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훗날 아이 두명의 유골이 탑 밑에 묻힌채 발견되었다.)

악랄하게 왕위를 찬탈한 리처드 3세는 고작 2년뒤 헨리 튜더와의 전투에서 죽기 전까지 평민들에게 몹쓸 정책을 여럿 벌였는데

가난한 사람들이 대리인이나 막대한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국왕에게 직접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청구법원(Court of Requests)을 세웠고
재판의 공정성과 질을 향상시킨다며 배심원의 자격과 급여를 강화했으며
유죄 확정 전까지 피고인이 재산을 몰수당하거나 무작정 투옥되는 것을 방지한다며 보석금 제도를 통과시키고
영국 법령을 프랑스어나 라틴어가 아닌 영어로 작성하여 평민들도 법을 읽고 자신의 권리를 알 수 있게 했으며
지식보급을 장려한다며 인쇄업자와 서적 상인들에게는 이례적으로 보호무역 예외 규정을 두어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했고
종교 기관과 대학 등 교육 시설에 막대한 기부금을 제공하였으며
'선의(Benevolence)'의 기부라는 이름으로 왕이나 영주들이 강제로 세금을 뜯어가는 제도를 의회에서 폐지시켰고
지방 관리들이 가난한 이들의 재산을 함부로 압류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해 부정부패를 척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