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원래부터 이상한 성격은 아니었다는 증거들 -
윤씨는 평소 허름한 옷을 입고 검소한 것을 숭상하며 매사에 정성과 조심성으로 대하였고
자신이 왕비로 간택되었다는 말을 듣자 "저는 본디 덕이 없고 과부의 집에서 자라나
보고 들은 것이 없으므로 주상의 거룩하고 영명한 덕에 누를 끼칠까 몹시 두렵습니다"라고 하니
내가 이러한 말을 듣고 더욱 더 그녀를 현숙하게 여긴다
- 성종실록 7년 7월
돌아보건대 숙의 윤씨는 성품이 부드럽고 아름다우며 마음가짐도 깊고 고와서
효성은 세 대비를 움직이고 공손하고 검소한 몸가짐은 왕을 보필하는 자리에
진실로 으뜸으로서 마땅하다고 여겼다
- 폐비 윤씨가 중전이 되던 날, 반포했던 글에서
애초에 간택후궁 출신인것 부터가 성품에 결함이 없었다는 증거이고
하물며 왕비에 오르려면 그 인품과 성정은 여러모로 검증되었다고 봐야 타당함
정희왕후 소혜왕후 성종 모두에게 인정 받았기에 왕비책봉이 된 것임
연산군 출산 및 왕비책봉 이후 주요 행동과 어록들 -
* 성종 앞에서 대놓고 비상을 들고다님 (독약)
* 성종 침전에 무통보로 쳐들어감
* 성종에게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함
* 다른 후궁들을 모함하다 걸림
* 성종과 대화도중 열받는다고 국그릇을 날려버림
* 궁녀들이 성종에게 접근하면 죽인다고 엄포
성종 얼굴에 손톱자국을 내었다 이건 야사라서
실록으로 확인된 것은 아님
근데 굳이 이거 아니어도 이미 어나더 이셔서 필요없을듯
성종이 폐비시킨 이유도 폐비로 출궁 시키지 않으면
그 전에 내 생명을 담보할수 없다는 이유로 출궁시킨 것.
그리고 후궁들이 폐비윤씨를 모함했다는 드라마나 야사는
그냥 거르면 됨. 조선 역사상 적통 왕세자를 낳은
중전에게 대들수 있는 후궁은 단 한명도 없었음.
추가로 인수대비는 이미 시어머니 정희왕후가 살아 있었기 때문에 며느리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자세였다고 하고
아들 성종이 폐비를 사사하겠다고 하였을 때 의견을 물어보니까 아들의 편을 들어서 옳다고 편을 들어주었다고 한다
단지 연산군이 어린 세자시절 폐세자되지 않도록 엄청 애를 썼다고 함
그녀의 죽음 진짜 성종의 의지였고 죽이고 난 다음에도 폐비 관련 이야기만 나오면 치를 떨었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