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들과 동남아 여성들이 인종차별적 언사를 주고받은 장면은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언제든 민족이라는 상위 정체성에 흡수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여성이라는 공통성은 연대의 토대가 아니라 민족적 경계를 긋는 도화선으로 타들어 갔다. 이는 특정한 정치적·정동적 조건 아래에서 젠더 정체성이 민족주의적 동원 논리에 포섭될 위험성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예컨대 유럽의 사례처럼 페미니즘의 일부 흐름이 극우 정치와 결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의 온라인 공간은 정체성 정치와 정파 정치가 형성되고 재생산되는 유사 시민사회다. 이 공간에서 국경이 없는 SNS와 초국적 문화산업의 속성을 지닌 케이팝이 매개가 되자 갈등은 유례없는 국제적 부족주의로 확전되었다. 그 결과는 추상적 논쟁에 머물지 않는다. 재한 이주민에 대한 사이버 불링과 신상털기라는 구체적 가해로 이어졌다. 이번 사건은 한국 사회의 인종차별이 잠재적 사회 정서를 넘어 증오 범죄로 증폭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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