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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진 “좋은 이야기는 사람의 깊은 곳 건드려…‘영화의 시절’ 다시 올 것”

무명의 더쿠 | 02-21 | 조회 수 2307

배우 유해진, 그는 오랫동안 '믿고 보는 배우'를 넘어, 사실상 하나의 장르가 된 배우다. 능청스럽다가도 짠하고, 웃기다가도 서늘하다. 생활의 결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연기로 관객을 무장해제시킨다. 유해진이 등장하면 영화의 공기가 한 톤 낮아지고, 동시에 사람 냄새가 짙어진다.


다만 최근 몇 년간의 행보는 조금 달랐다. 《파묘》를 비롯해 진중하고 무게감 있는 역할이 이어졌다. 웃음보다는 침묵, 코믹보다는 긴장에 무게를 둔 선택이었다. 그래서 이번 작품이 더 반갑다. 오랜만에 본격적인 코믹 연기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야기의 중심을 이끄는 '주연'으로.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인간적인 유머와 생활형 코미디가 전면에 나온 건 생각보다 오랜만이다.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에는 '유해진표 코믹 연기의 복귀'라는 분명한 이유가 한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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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박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사실이 있다. 유해진은 지금까지 단 한 편의 OTT 오리지널에도 출연한 적이 없다. 플랫폼이 빠르게 재편된 시대에도 그는 꾸준히 극장을 택했다. 이 고집스러운 선택은 어느새 '희소성'이 됐다. 자연스럽게 영화 전문배우라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그래서 이번 흥행은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극장을 향한 그의 외길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증명이고, 한 배우가 오랜 시간 쌓아온 커리어와 태도, 그리고 스크린을 향한 고집이 고스란히 보상받는 순간이기도 하다. 덧붙여 '유해진다운 연기'를 다시 믿게 해준 작품이다.


연출은 장항준 감독이 맡았다. 두 사람의 만남은 이 영화의 가장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유해진의 웃음이 상황에서 스며 나오는 은은한 코미디라면, 장항준의 유머는 조금 더 직설적이고 친절한 편이다. 결은 다르지만 온도는 같다. 편안하고 따뜻하다. 결국 사람에게서 출발하는 인간적인 웃음이다. 유해진에게 영화 비하인드 스토리와 연기관을 들었다.



처음 《왕과 사는 남자》의 시나리오를 읽고 느낀 소감은.


"재미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단종의 이야기는 결국 죽음으로 끝나는 비극이지 않나. 그런데 유배지에서의 삶을 구체적으로 상상해 그려낸 설정이 신선했다. 좋은 이야기는 결국 사람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도 그랬다."



작품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역시 재미다. 그렇다고 꼭 웃긴다는 의미는 아니다. 웃음을 주든, 생각을 주든 '왜 이 영화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 그게 내가 말하는 재미다. 요즘에는 하나가 더 생겼다. 관객이 과연 극장까지 와서 볼 만한 영화인가, 그 질문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유해진이 생각하는 엄흥도는 어떤 인물인가.


"영웅이라기보다는 그냥 왕의 곁에 있어준 사람이다. 신변의 위협을 감수하면서까지 의리를 지킨 인물이다. 그 진심만 제대로 전해지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장항준 감독과의 호흡은 어땠나(두 사람은 서울예술대 선후배 관계다).


"굉장히 유연한 사람이다. 내가 무언가 제안하면 이틀만 달라고 한 뒤 실제로 대본을 고쳐 온다. 내 목표는 대본보다 조금이라도 더 좋아지게 찍는 것이다. 아무리 친해도 현장에서 아쉬운 연기를 그냥 넘어가선 안 된다고 본다. 현장에서 웃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중에 함께 웃는 게 더 중요하다."



단종 역의 박지훈 배우와의 호흡은.


"주변에서 내가 박지훈 칭찬을 많이 한다고 하더라. 크게 의식하진 못했다. 그런데 정말 그럴 만하다. 촬영하면서 에너지에 많이 놀랐다. 연기를 시작하면 이미 준비가 다 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표현이 가볍지 않고 진솔하다. 어느 순간부터는 배우가 아니라 어린 단종 그 자체로 보이더라. 함께해서 든든한 파트너였다."



자신의 연기에 대해 자평을 한다면.


"내 연기는 늘 비슷하다. 잘 보면 똑같다. 그걸 굳이 숨기고 싶지는 않다. 대신 이야기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려고 노력한다. 관객이 불편하게 느낀다면 그건 내가 연기를 잘못한 거라고 생각한다."



흥행에 대한 부담은 없나.


"예전에는 제작비가 많으면 마냥 좋았는데, 요즘은 겁부터 난다. 본전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그래도 많은 분들이 극장에서 함께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극장을 지켜온 영화인으로서 지금 극장가를 바라보는 마음은 어떤가.


"사람들이 극장을 많이 찾던 때가 참 좋았다. 그래서 지금은 조금 씁쓸하다.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그 시절이 돌아올 거라고 믿는다. 우리 영화가 잘돼야 또 다른 투자가 이어지고, 그래야 다양한 영화도 만들어질 수 있다. 자극적인 것만 넘치는 시장보다 영화다운 영화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 작품이 특히 오래 남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 인간이 어려움을 겪고 죽음을 맞기까지 그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의 정서가 마음에 남는다. 무겁지만 어렵지 않게 다가가는 이야기라고 느꼈다. 촬영하면서도 여러 번 울었고, 분장할 때도 울었고, 시사회에서도 울었다. 감정이 오래가는 작품이다. 이 여운이 꽤 오래 남을 것 같다."



어느덧 28년 차 배우다. 롱런의 비결이 있다면.


"잘 모르겠다. 다만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함께하는 사람들과 서로 도우려고 노력한다. 나는 햇빛 좋은 날 현장에서 촬영하고 끝난 뒤 소주 한잔하는 시간이 참 좋다. 그 시간이 계속 일을 하게 만드는 힘인 것 같다."  




시사저널=하은정 대중문화 저널리스트·우먼센스 편집장


https://v.daum.net/v/20260221110125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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