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실록93권, 세종 23년 7월 23일 정사 1/1 기사/ 1441년 명 정통(正統) 6년
왕세자빈 권씨가 원손을 낳아 대사면령을 내리다
왕세자빈(王世子嬪) 권씨(權氏)가 동궁(東宮) 자선당(資善堂)에서 원손(元孫)을 낳아 도승지 조서강(趙瑞康) 등이 진하(陳賀)하매,
임금이 말하기를,
"세자(世子)의 연령이 이미 장년이 되었는데도,
후사(後嗣)가 없어서 내가 매우 염려하였다.
이제 적손(嫡孫)이 생겼으니 나의 마음이 기쁘기가 진실로 이와 같을 수 없다."
하였다. 영의정 황희가 집현전 부제학(集賢殿副提學) 이상을 영솔하고 진하(陳賀)하였으니, 사례(私禮)이었다.
임금이 의정부에 이르기를,
"이제 원손이 생겼으니, 중국(中國)으로 본다면 즉시 대사(大赦)를 행하는 것이 진실로 마땅하다.
그러나 사(赦)라는 것은 군자(君子)에게 불행이요, 소인(小人)에게는 다행이 되는 고로, 내가 오랫동안 행하지 아니하였다.
내 마음에는, 오늘의 일은 비록 경사(慶事)라고는 하지만 원자(元子)의 예(例)가 아니므로,
우선 근년에 수인(囚人)을 방사(放赦)한 예(例)에 의하여, 유(流) 이하의 이미 결정(結正)하였거나 결정하지 못한 죄를 석방할까 하는데,
도승지 조서강은 말하기를, ‘당(唐)나라 고종(高宗) 때에 황손(皇孫)이 탄생하여,
대사(大赦)하고 연호(年號)를 고쳤으니, 한 나라의 기쁜 경사가 이보다 더한 것이 없으므로, 대사(大赦)하는 것이 가(可)합니다.’ 하였다.
경 등의 의향은 어떠한가."
하니, 모두 아뢰기를,
"우리 나라 경사(慶事)에 이보다 더한 것이 없사오니 대사(大赦)하는 것이 가합니다."
하므로,
임금이 그대로 따라, 근정전에 나아가 교서(敎書)를 반포해 내렸는데, 경순 왕후(敬順王后)의 기신(忌晨)이므로 군신(群臣)이 모두 시복(時服)을 입었고,
풍악은 진설하기만 하고 연주하지 아니하였다. 그 사(赦)하는 글에 이르기를,
"예전부터 제왕(帝王)이 계사(繼嗣)를 중하게 여기지 아니한 이가 없었다. 종사(螽斯)080) 에서 여러 아들을 노래하였고 봉인(封人)이 다남(多男)을 축복하였으니,
대개 종사(宗社)의 대본(大本)이요 국가의 경복(景福)이 됨으로서이다.
내가 부덕(不德)한 몸으로 외람되게 대통(大統)을 계승하여, 부탁(付托)의 지중(至重)함을 생각하고 계술(繼述)081) 을 감히 잊을 수 있으랴.
생각하건대, 세자(世子)의 연령이 이미 30이 거의 되었는데, 아직도 적사(嫡嗣)를 얻지 못하여 내 마음에 근심되더니, 이제 세자빈이 7월 23일에 적손(嫡孫)을 낳았다.
이것은 조종(祖宗)께 덕(德)을 쌓고 인(仁)을 쌓으심이 깊으셨고, 또 상천(上天)의 보우(輔佑)하심이 두터우심이다.
신(神)과 사람이 다 같이 기뻐할 바이요, 신하와 백성들이 모두 기뻐할 바이요,
신하와 백성들이 모두 기뻐할 것이다. 정통(正統) 6년 7월 23일 새벽 이전에 대역(大逆)을 모반(謀反)한 것, 모반(謀叛)한 것, 자손(子孫)이 조부모(祖父母)·부모(父母)를 모살(謀殺)하였거나 때리고 욕한 것, 처첩(妻妾)이 남편을 모살(謀殺)한 것, 노비가 상전을 모살(謀殺)한 것, 독약이나 저주로 살인한 것, 강도(强盜)를 범한 것 외에는,
이미 발각되었거나 아니되었거나,
이미 결정(結正)되었거나 아니되었거나 다 용서하여 제(除)해 버리니, 감히 유지(宥旨) 전의 일을 가지고 서로 고(告)하고 말하는 자는 그 죄로써 죄줄 것이다. 아아, 이미 많은 복을 받았으니 진실로 웅몽(熊夢)의 상서에 합하게 할 것이라, 의당 관대한 은전(恩典)을 베풀어서 홍도(鴻圖)의 경사(慶事)를 크게 넓힐 것이다."
하였다.
교지를 읽기를 끝마치기 전에 전상(殿上)의 대촉(大燭)이 갑자기 땅에 떨어졌으므로, 빨리 철거하도록 명하였다.
세종이 죽기전에 수양에게 한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