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액션은 거침없이 확장됐다. 타격은 묵직하고, 긴장은 한 순간도 느슨해지지 않았다. 류승완 감독이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야기가 멜로로 기울면서 영화의 크기는 예상보다 작아진다. 액션은 분명 '굿'이다. 다만 그 긴장감이 향해야 할 서사는 '굿바이'에 가깝다.
(※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휴민트'(감독 류승완)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벌어지는 북한 여성들의 실종 사건을 조사하던 조 과장(조인성 분)이 북한 보위성 조장 박건(박정민 분)과 뜻밖의 관계로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초반부터 조인성의 다대일 액션으로 화려하게 문을 연다. 조인성은 류승완 액션의 속도를 시원하게 소화했다. 긴 팔다리를 이용해 군더더기 없는 액션을 완성했다.
그의 움직임은 과장되지 않았다. 그러나 임무 수행이라는 목적성이 분명한 움직임이었다. 총격과 육탄전 모두에서 감정보다 기능이 먼저 작동했다. 그래서 더 날카롭고 예리했다.
박정민과 정유진(임 대리 역)이 맞붙는 장면은 단순한 남녀 대결의 구도를 넘는다. 살기 위해 몸을 쓰는 두 인물이 충돌하며 긴장감은 최고조로 증폭된다.
마지막 조 과장과 박건이 한 팀이 돼 완성한 액션은 현실적인 타격감을 살려냈다. 정직한 힘으로 밀어붙이는, 고전적이고 정제된 액션이다.
류승완은 와이어나 CG에 기대기보다 배우의 몸과 동선을 활용했다. 불필요한 장식 없이 타격과 동선만으로 완성된 액션이었다. 그럴수록 타격감은 더 묵직하고 선명해졌다.

문제는 그 밀도 높은 긴장감이 향하는 방향이다. 영화는 초반부터 거대한 이야기를 예고한다. 국경을 넘나드는 작전, 실종된 여성들, 국가 권력이 개입된 음모까지.
그러나 서사는 점차 멜로로 무게추를 옮긴다. 신세경이 연기한 '채선화'는 북한 식당 종업원이자, 조 과장의 정보원이다. 동시에 박건의 옛 연인이다. 두 남자는 인신매매 조직에 잡혀간 채선화를 구하기 위해 달려든다.
채선화는 혼자서도 충분히 단단한 인물로 그려진다. 스스로 인신매매 조직을 벗어나 총까지 들어 올린다. 자신과 같은 처지의 여성들을 구해야 하는 서사의 가능성도 열려 있었다.
하지만 영화는 끝내 이를 능동성으로 확장하지 않았다. 서사를 움직이는 인물이 아닌, 서사가 구해야 할 대상으로 남겨둔다. 조과장과 박건을 보조하는 장치에 머무른다.

러닝타임 내내 빠른 속도로 사건을 몰고 간다. 군더더기를 덜어내며 사건을 직선으로 돌진한다. 문제는 그 속도가 서사의 밀도를 대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조 과장은 블랙 요원이다. 냉정한 판단과 임무 수행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과거 휴민트가 죽었던 경험 하나만으로 자신의 목숨을 거는 선택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트라우마가 동력이 되기엔, 과정의 축적이 충분하지 않다.
조 과장의 감정이 축적 없이 표출된다면, 박건의 감정은 축적 없이 전환된다. 박건은 표정을 지운 채 피도 눈물도 없는 인물처럼 그려진다. 체제에 완전히 귀속된 얼굴.
그러나 서사가 진행될수록 감정에 흔들리고 관계에 반응하며 선택을 바꾼다. 변화의 방향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그 변화에 이르는 과정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후략
https://m.entertain.naver.com/now/article/433/00001252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