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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이나영 “우리가 완벽해서 누군가를 구하는 게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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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9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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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여성 서사 영화요? 어휴, 너무 많죠. 몇 년 전에 본 <가장 따뜻한 색, 블루>도 좋았고, <귀주 이야기>랑 <로제타>도 정말 좋아하고요. <블루 재스민> <어디갔어, 버나뎃>처럼 삶의 부조리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작품도 좋아해요. 아, 그런 역할 들어오면 진짜 잘할 자신 있는데.” 이나영이 뭔가를 붙들듯 두 주먹을 그러쥐며 말했다. 스카프를 재해석한 셀린느의 드라마틱한 블라우스가 흔들릴 만큼, 끼를 펼칠 기회가 없어 몸이 근질거리는 사람처럼. 3년의 공백을 깨고 법정물을 택한 이유를 묻자 다시 양손을 움켜쥔다. “대본 읽는데, 저도 모르게 ‘윤라영’의 대사를 소리 내어 말하고 있더라고요. 빨리 그 드라마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어요. 본능적으로요.”



신작 <아너: 그녀들의 법정(아너)>에서 그가 맡은 ‘윤라영’은 여성 성범죄 피해자 전문 로펌의 간판 격 변호사. 뛰어난 언변과 미모로 방송가를 누비지만 화려함 뒤편에 상처와 불안, 죄책감이 뒤섞인 복잡한 내면을 지닌 인물이다.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또렷한 딕션으로 상대의 허점을 파고드는 이나영을 본 순간, 처음 든 감상은 이랬다. 어? 이나영에게 이런 얼굴이 있었나? “신기하군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송해성 감독님도 첫 화 보시고 비슷한 말씀을 하셨거든요. ‘나영, 이런 것도 할 줄 아는 사람이었어?’라고요. ‘이러다 전라도 사투리도 하겠는데?’ 하고 농담처럼 말씀하시기에 제가 그랬죠. 감독님, 제가 진짜 해보고 싶은 역할이 그런 거예요. 어시장에서 전라도 사투리로 경매하는 사람이요!”



이나영, 정은채, 이청아라는 보기 드문 여성 3인 주연 체제만큼 이슈가 된 건, 이나영이 데뷔 후 처음으로 전문직 역할을 맡았다는 점이다. 노련한 발성으로 좌중을 휘어잡는 윤라영을 연기하기 위해, 그는 가까운 보컬 트레이너를 찾아가 목 쓰는 법부터 다시 배웠다. 노래와 접목한 발성 훈련을 통해 소리를 내지르면서도 완급을 조절하는 기술을 익혔다. 그럼에도 첫 촬영 전날엔 가위에 눌려 잠을 설쳤다. 감정 조절도 쉽지 않았다. 죽고 싶어 하는 피해자를 만류하는 장면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크게 화를 내 NG가 나기도 했다. 감정선이 예민한 드라마인 만큼 의상 하나, 소품 하나에도 평소보다 더 주의를 기울였다. 20년 지기 여자 셋이 둘러앉아 야식을 먹는 장면에서 원래 샐러드였던 메뉴를 떡볶이로 바꾸자고 제안한 것도 그다. “작가님께 그랬어요. 여자끼리 정 없게 무슨 샐러드냐고, 전 평소에도 그런 거 안 먹는다고요.(웃음) 좋아하는 음식이요? 전 소박한 식당 좋아해요. 가족이랑 외식할 땐 순댓국이나 감자탕 같은 거 먹으러 가고요.”



연대는 흔히 ‘같은 목소리를 내는 일’로 여겨진다. 그러나 거대 성범죄 스캔들을 쫓는 세 여성 변호사의 연대는 조금 다르다. 서로 다른 신념과 상처가 맞물려 만들어낸 느슨한 결속. 점처럼 작은 교집합에서 시작해 동심원처럼 점차 확장되는 연대다. “저는 그게 ‘좋은 연대’의 조건 같아요. 다양성 안에서 더 힘이 생기고 단단해진다고 할까요. ‘우리’라는 주어로 행동할 땐 반드시 각자 숨 쉴 공간을 남겨둬야 해요. 인간관계도 그렇잖아요. 너무 가까우면 참견하게 되고, 기대가 크면 결국 실망하게 되고요.”



예전에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여성 간의 연대가 중요한 뭔가를 희생해야 하는 비장한 선택처럼 그려지곤 했다. 자동차를 몰고 절벽으로 향하던 델마와 루이스처럼. 이나영은 ‘이제 그다음을 이야기할 때가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저 여성 서사라는 이유로 작품을 고르진 않아요. 여성이라는 단어를 따로 강조하지 않아도 될 만큼 다양한 여성 이야기가 이미 존재하는 세상이니까요.” ‘희생’이나 ‘위로’ 같은 무책임한 말 대신 요즘 그가 새롭게 발견한 단어는 ‘회복’이다. “제작 발표회 때도 배우들끼리 계속 언급한 키워드가 회복이었어요. 우리가 완벽해서 누군가를 구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도 상처가 있고, 심지어 아직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못한 상태죠. 그래도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 곁에 먼저 서보는 거예요. 우리가 완벽하게 정의로워서가 아니라, 우리도 그들과 같은 인간이라서요. 같은 인간으로서 피해자들에게 ‘함께 걸어가보자’고 손 내미는 것. 저는 그게 더 현실적인 연대라고 느꼈어요.”



어느덧 데뷔 28년 차. “28년이요? 1년만 빼주시면 안 돼요?” 손사래 치며 웃던 그의 얼굴이 문득 골똘해진다. “아까 좋아하는 여성 서사를 물었을 때 생각한 건데요. <세 얼간이>의 여성 버전이 나오면 어떨까요? 이제 그런 영화 한 편쯤 나올 때도 되지 않았나요?” 농담처럼 말했지만 농담만은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불완전한 채로 세상의 통념에 좌충우돌 맞서는 여성의 유쾌한 얼굴을, 그는 끝내 한 번쯤 우리에게 보여줄 것 같다. VK




https://www.vogue.co.kr/?p=758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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