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이슈 이나영 “우리가 완벽해서 누군가를 구하는 게 아니에요”
1,644 1
2026.02.19 10:32
1,644 1

NBLBWt


“좋아하는 여성 서사 영화요? 어휴, 너무 많죠. 몇 년 전에 본 <가장 따뜻한 색, 블루>도 좋았고, <귀주 이야기>랑 <로제타>도 정말 좋아하고요. <블루 재스민> <어디갔어, 버나뎃>처럼 삶의 부조리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작품도 좋아해요. 아, 그런 역할 들어오면 진짜 잘할 자신 있는데.” 이나영이 뭔가를 붙들듯 두 주먹을 그러쥐며 말했다. 스카프를 재해석한 셀린느의 드라마틱한 블라우스가 흔들릴 만큼, 끼를 펼칠 기회가 없어 몸이 근질거리는 사람처럼. 3년의 공백을 깨고 법정물을 택한 이유를 묻자 다시 양손을 움켜쥔다. “대본 읽는데, 저도 모르게 ‘윤라영’의 대사를 소리 내어 말하고 있더라고요. 빨리 그 드라마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어요. 본능적으로요.”



신작 <아너: 그녀들의 법정(아너)>에서 그가 맡은 ‘윤라영’은 여성 성범죄 피해자 전문 로펌의 간판 격 변호사. 뛰어난 언변과 미모로 방송가를 누비지만 화려함 뒤편에 상처와 불안, 죄책감이 뒤섞인 복잡한 내면을 지닌 인물이다.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또렷한 딕션으로 상대의 허점을 파고드는 이나영을 본 순간, 처음 든 감상은 이랬다. 어? 이나영에게 이런 얼굴이 있었나? “신기하군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송해성 감독님도 첫 화 보시고 비슷한 말씀을 하셨거든요. ‘나영, 이런 것도 할 줄 아는 사람이었어?’라고요. ‘이러다 전라도 사투리도 하겠는데?’ 하고 농담처럼 말씀하시기에 제가 그랬죠. 감독님, 제가 진짜 해보고 싶은 역할이 그런 거예요. 어시장에서 전라도 사투리로 경매하는 사람이요!”



이나영, 정은채, 이청아라는 보기 드문 여성 3인 주연 체제만큼 이슈가 된 건, 이나영이 데뷔 후 처음으로 전문직 역할을 맡았다는 점이다. 노련한 발성으로 좌중을 휘어잡는 윤라영을 연기하기 위해, 그는 가까운 보컬 트레이너를 찾아가 목 쓰는 법부터 다시 배웠다. 노래와 접목한 발성 훈련을 통해 소리를 내지르면서도 완급을 조절하는 기술을 익혔다. 그럼에도 첫 촬영 전날엔 가위에 눌려 잠을 설쳤다. 감정 조절도 쉽지 않았다. 죽고 싶어 하는 피해자를 만류하는 장면에서는 필요 이상으로 크게 화를 내 NG가 나기도 했다. 감정선이 예민한 드라마인 만큼 의상 하나, 소품 하나에도 평소보다 더 주의를 기울였다. 20년 지기 여자 셋이 둘러앉아 야식을 먹는 장면에서 원래 샐러드였던 메뉴를 떡볶이로 바꾸자고 제안한 것도 그다. “작가님께 그랬어요. 여자끼리 정 없게 무슨 샐러드냐고, 전 평소에도 그런 거 안 먹는다고요.(웃음) 좋아하는 음식이요? 전 소박한 식당 좋아해요. 가족이랑 외식할 땐 순댓국이나 감자탕 같은 거 먹으러 가고요.”



연대는 흔히 ‘같은 목소리를 내는 일’로 여겨진다. 그러나 거대 성범죄 스캔들을 쫓는 세 여성 변호사의 연대는 조금 다르다. 서로 다른 신념과 상처가 맞물려 만들어낸 느슨한 결속. 점처럼 작은 교집합에서 시작해 동심원처럼 점차 확장되는 연대다. “저는 그게 ‘좋은 연대’의 조건 같아요. 다양성 안에서 더 힘이 생기고 단단해진다고 할까요. ‘우리’라는 주어로 행동할 땐 반드시 각자 숨 쉴 공간을 남겨둬야 해요. 인간관계도 그렇잖아요. 너무 가까우면 참견하게 되고, 기대가 크면 결국 실망하게 되고요.”



예전에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여성 간의 연대가 중요한 뭔가를 희생해야 하는 비장한 선택처럼 그려지곤 했다. 자동차를 몰고 절벽으로 향하던 델마와 루이스처럼. 이나영은 ‘이제 그다음을 이야기할 때가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저 여성 서사라는 이유로 작품을 고르진 않아요. 여성이라는 단어를 따로 강조하지 않아도 될 만큼 다양한 여성 이야기가 이미 존재하는 세상이니까요.” ‘희생’이나 ‘위로’ 같은 무책임한 말 대신 요즘 그가 새롭게 발견한 단어는 ‘회복’이다. “제작 발표회 때도 배우들끼리 계속 언급한 키워드가 회복이었어요. 우리가 완벽해서 누군가를 구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도 상처가 있고, 심지어 아직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못한 상태죠. 그래도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 곁에 먼저 서보는 거예요. 우리가 완벽하게 정의로워서가 아니라, 우리도 그들과 같은 인간이라서요. 같은 인간으로서 피해자들에게 ‘함께 걸어가보자’고 손 내미는 것. 저는 그게 더 현실적인 연대라고 느꼈어요.”



어느덧 데뷔 28년 차. “28년이요? 1년만 빼주시면 안 돼요?” 손사래 치며 웃던 그의 얼굴이 문득 골똘해진다. “아까 좋아하는 여성 서사를 물었을 때 생각한 건데요. <세 얼간이>의 여성 버전이 나오면 어떨까요? 이제 그런 영화 한 편쯤 나올 때도 되지 않았나요?” 농담처럼 말했지만 농담만은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불완전한 채로 세상의 통념에 좌충우돌 맞서는 여성의 유쾌한 얼굴을, 그는 끝내 한 번쯤 우리에게 보여줄 것 같다. VK




https://www.vogue.co.kr/?p=758309

목록 스크랩 (0)
댓글 1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바비 브라운X더쿠💗 타고난 듯 내 피부처럼 얇고, 가벼운 한 겹 커버! ‘웨이트리스 스킨 쿠션 파운데이션 NEW 컬러’ 체험 이벤트 785 02.17 27,983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24.12.06 4,742,028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11,658,616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12,736,066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은 정치 카테고리에] 20.04.29 34,964,088
공지 정치 [스퀘어게시판 정치 카테고리 추가 및 정치 제외 기능 추가] 25.07.22 1,054,025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82 21.08.23 8,496,179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68 20.09.29 7,414,548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597 20.05.17 8,623,848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4016 20.04.30 8,507,646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4,374,917
모든 공지 확인하기()
2996488 이슈 1년전 오늘 개봉한, 영화 "써니데이" 17:08 0
2996487 이슈 PHOTOISM with 에이핑크 2026 Apink 8th Concert <The Origin : APINK> 17:08 18
2996486 이슈 사우디 수단&예맨 사태 이후 UAE에 행정보복 중 17:08 38
2996485 이슈 저스틴 민이 우즈의 ‘첫 연기’를 극찬한 이유 | VOGUE MEETS 17:07 48
2996484 유머 파마하고 온 엄마를 못알아보는 고양이 2 17:07 241
2996483 이슈 영화 번역계에 길이 남을 초월 번역.txt 1 17:06 464
2996482 이슈 내란에 초범이 어디있어 개소리하고자빠졌어 씨바 15 17:04 1,021
2996481 이슈 김밥은 몇줄부터 배가 찰까? 25 17:04 840
2996480 이슈 아니그럼찰스1세얘기왜햇어 왜존나먼나라로마까지갓다온거야 찰스1세는머리통날아갓는데씨발 16 17:03 693
2996479 유머 자필 작성 이력서 받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어.x 6 17:03 528
2996478 유머 원빈 발견하고 굳어버린 이나영 4 17:03 1,210
2996477 이슈 월세 56만원 2평짜리 고시텔에 사는 외국인 8 17:03 944
2996476 유머 이성경 한지현 오예주 세 자매로 캐스팅하신 분 진심 감다살 17:02 367
2996475 유머 태국인이 사랑하는 한국 샴푸ㅋㅋㅋㅋㅋㅋㅋㅋㅋ 11 17:02 1,101
2996474 이슈 [KITZ 킷츠]어느 날, 운석과 함께 초능력이 떨어졌다 <점프보이 LIVE> 메인 예고편 공개 ✨-베리베리 강민 17:02 30
2996473 이슈 몽골에서 인생을 깨달아버린 07년생 사쿠야 2 17:02 393
2996472 이슈 불가리 새로운 글로벌 앰버서더 발표 17:01 954
2996471 이슈 [딩고뮤직] 아이브 킬링보이스 2월 24일 화요일 19시에 최초 공개 15 17:00 444
2996470 이슈 성공하면 혁명! 실패하면 실패했으니까 형량 바겐세일! 쿠데타 권장 끝내줍니다 18 17:00 879
2996469 이슈 칼을 갈고 있다는 롯데구단 33 16:59 1,7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