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텍스트만 많은거같아서 영조 첨부)
영조는 편집증 환자라 사람들에 대해 호불호가 강력했는데 그중에서 제일 사랑했던 자식은 화평옹주임 반대로 미워했던 사람은 정성왕후
영조가 자신의 친딸인 화평옹주와 며느리 조씨를 함께 일컬어
'내 마음을 알아주는 자식은 너희 둘뿐이다'라고 대놓고 말할 정도로 며느리 현빈 조씨도 아꼈음
며느리가 삶아주는 밤을 좋아해서 자주 조씨의 처소에 놀러갔고
조씨가 죽었을 때도 '너는 이제 없지만 내게 삶아주던 밤은 여전히 놓여있구나'라며 눈물지었다고 함
다른 한명은 친딸인 화평옹주
<화평옹주가 홀로 부왕의 자애를 받는 일이 숨은 아픔이 되어 부왕께 "마옵소서" 여쭈나 아무리 해도 부왕께서 듣지 않으시니 할 수 없었느니라.>
<화평옹주 계실 제는 동생 역성을 들어 일에 따라 부왕께 말씀을 올려 맺힌 것을 푼 일이 많았는데, 그 옹주 돌아가신 후에는 위에서 과한 행동을 하시거나 자애가 부족하셔도 "참으시어 그리 마소서" 할 이 없으니, 점점 부왕의 자애는 부족하고 경모궁께서는 두렵기가 날로 심하시니 자식 된 도리를 점점 못 차리시니라. 화평옹주 계셨으면 부자간에 자애와 효도를 갖추게 하였을 것이니, 착하신 옹주 일찍 돌아가신 것이 어찌 국운(國運)과 관계치 않으리오. 지금 생각하여도 애석하도다.>
-한중록 中-
경모궁 = 사도세자
역피셜로 성품이 온화해서 영조 편애받는걸 동생들에게 미안해하고 사도와 아버지 사이를 중재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사람임
미인이고 성격이 좋은걸로 유명했는데 밝혀진 일화중에 하나를 보면 영조가 왜 그토록 사랑했는지 조금은 이해할수 있음

1727년 출생이면 신해년에는 만 네살정도인데 영조가 봤을때는 너무 기특하고 예뻤을듯
21살에 요절했을때는 영조가 부고 듣고 바로 가서 밤세워 통곡함 화평옹주를 염하는 것도 직접 보고 장례도 호화스럽게 치르려 해서 신하들이 옹주의 장례로는 너무 지나치다고 간언했지만 영조는 듣지 않고 오히려 간언한 신하들을 모조리 파직하고 유배형에 처함
사도세자의 아들인 의소세손을 처음엔 못마땅해하다가 (영빈이씨에게 죽은 딸은 잊고 손자가 태어난것만 기뻐한다고 한소리 했을정도)
의소세손이 화평옹주와 같은 자리에 점이 있다고 환생으로 믿고 예뻐할정도였음
옹주 사후에 시조카 박상철이 옹주의 양자로 입적되는데. 훗날 그가 과거를 보아 명단에 이름을 올리자 영조는 내 손자가 왔다며 감격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