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heqoo.net/movie/4096633148


사육신을 중심으로 한 단종복위사건이 사전에 발각되어, 강원도 영월에 유배 중인 노산군(魯山君: 단종)에게 1457년 사약이 내려질 때 책임을 맡은 의금부도사였다.
영월에 이르러 사약을 받들고 노산군 앞으로 나아가려 하였으나 감히 어찌할 바를 몰라 머뭇거렸다. 나장(羅將)이 시각이 늦어진다고 재촉하자 하는 수없이 뜰 가운데 엎드려 있으니, 단종이 익선관과 곤룡포를 갖추고 나와서 온 까닭을 물었을 때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단종을 항상 곁에서 모시던 공생(貢生: 관가나 향교에서 심부름하던 통인과 같은 사람)이 단종을 죽이는 일을 담당하였다. 당시 왕방연이 괴로운 심정을 토로한 시가 전한다.
『장릉지(莊陵誌)』에는 금부도사(그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가 밤에 굽이치는 여울의 언덕 위에 앉아 슬퍼하면서 노래를 지었는데, 그 뒤 1617년에 김지남(金止男)이 금강에 이르러 여자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한문으로 단가를 지었다고 전한다.

먹골배의 기원-
먹골역의 기원이 된 먹골배 설화의 주인공이다. 왕방연은 단종 호송 임무를 마친후 서울로 돌아와 벼슬을 그만두고 현재는 묵동이 된, 중랑천 가로 터잡아 살았다. 유배지로 떠나는 단종이 갈증으로 물을 마시고 싶어 했으나 물 한 그릇도 국법에 어긋난다 하여 올리지 못했던 왕방연은 배나무를 심고 해마다 단종이 승하한 날이 되면 수확한 배를 올리고 영월을 향해 절을 했다. 뒷날 왕방연이 죽고 무덤도 후손에 의해 이장되었으나 그가 심은 배나무는 남아, 먹골배로 명성을 날리게 된다는 설화.
단종에 영월로 갈 때 호송을 맡았던 금부도사는 어득해라는 사람이고 왕방연은 아니지만
호송하던 사람중 한 명 아니겠느냐 하는 추측이 있나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