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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뉴스 [스브수다] 단종 서사 완성한 보석 눈빛…'왕사남' 박지훈, 안약의 힘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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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16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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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의 마음을 연기하는 게 죄송스러웠달까요. 저는 제 연기에 대한 의심이 많은 사람이거든요. 스크린에 고스란히 제 얼굴을 드러내고 그 감정을 헤아릴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대본을 받고 부담감에 시달리고 있었어요. 장항준 감독님이 네 번째 미팅 때 '지훈아, 단종은 너여야만 해'라고 얘기해주셨어요. 차를 타고 집에 가면서 감독님을 믿고 도전해 보겠다고 결심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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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은 시리즈 '약한영웅 Class 1'(2022)로 업계를 놀라게 한 배우였다. 그땐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와 사랑스러운 윙크와 함께 "내 마음속에 저~장!"을 외치던 10대 아이돌의 모습이 아니었다. 시리즈를 통해서 보여준 강단과 카리스마, 애수 어린 눈빛을 영화계 관계자들로 눈여겨 보기 시작했고, 정통 사극의 주인공으로 거론된 끝에 나온 캐스팅이었다. 다만 자신의 연기를 의심한 박지훈의 자기 검열 때문에 무려 세 번의 거절 끝에 단종 역을 수락했다.


가장 먼저 몸을 준비했다. 15kg의 체중감량으로 20대 중반까지 남아있었던 젖살을 모두 뺐다. 영화에서 단종이 피골이 상접한 인상을 준 건 못먹어서라기 보다는 마음의 병에서 비롯된 결과였을 것이다. 그러나 배우가 할 수 있는 건 몸을 준비한 뒤 마음을 구현하는 것이었다.


"피골이 상접했다, 말랐다라는 느낌보다는 '너무 안됐다, 이 어린애가...' 이런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입술도 버석하게 말라 있고, 아무것도 할 의욕이 없는 상태처럼 보이고 싶었어요. 그걸 표현하기 위해 매 끼니, 사과 한 쪽만 먹고 버텼어요. 촬영하면서는 물도 최대한 안 먹었죠. 목소리에도 버석함을 담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두 달 반 동안 목표한 15kg을 뺐던 거 같아요"


"대본을 보면서 감독님께서는 나약하지 않은 단종을 그리고자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이 분은 어렸지만 나약하지 않았어요. 정통성을 가진 왕이었고 역사의 순리대로 흘렀다면 왕이 되셨겠죠. 그랬다면 역사가 바뀔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비운의 왕이지만 비극적으로 끝나지 않았음을 표현하고 싶은 감독님과 작가님의 마음이 대본 페이지마다 느껴졌어요. 금성대군에게 서찰을 보자신 때문에 주변 사람이 다치길 원하지 않는 마음을 표현할 때 어떻게 할지도 고민했어요. 촬영할 때도 여러 테이크 찍었던 것 같아요. 어린애처럼 소리도 질러보고, 정통성 있는 왕으로서의 굵직한 발성도 내봤는데 후자가 맞다고 판단했던 것 같아요"


박지훈은 대사보다는 눈빛으로 단종의 여러 감정을 표현했다. 눈빛 하나면 충분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많은 감정을 담아낸 연기였다. 어떤 장면에서는 보석을 박아놓은 듯한 절절함과 아련함이 느껴지게끔 표현했다. 그것은 소리 내 엉엉 우는 절규와는 다른 표현이었다. 항상 촉촉히 젖어있는 듯한 눈빛으로 인해 안약을 쓴 건가 싶을 정도(많은 배우들이 감정신에서 안약의 힘을 빌리곤 한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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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본을 보면서, 슬픔의 감정을 좀 더 섬세하게 만들어 나갔어요. 단종 캐릭터는 슬픔 안에 뭔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가족도 없고 나 홀로 유배지에 왔잖아요. 매화와 함께 유배를 떠나갈 때, 유배지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 실의에 빠져있을 때, 낭떠러지에 서 있는 것 같은 무기력함과 깊은 슬픔을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연기했습니다. 안약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유해진은 처음 호흡을 맞춘 박지훈의 에너지에 놀랐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말을 전하자, 박지훈은 "오히려 제가 선배님과 촬영하면서 순간순간 놀랐어요. 그 에너지를 잘 받아서 돌려드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선배님이 늘 연기는 '기브 앤 테이크'라고 강조하셨거든요. 돌이켜보면 그렇게 선배님과 저는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연기하지 않았나 싶어요. 선배님에게 감사할 뿐이죠"라고 화답했다.


'왕과 사는 남자'의 하이라이트인 '그 장면'의 여운은 영화가 끝나도 쉬이 잊히질 않는다.


"단종은 자신의 마지막을 직감했고, 그때 그는 '저들에게 죽기 싫다, 차라리 그대의 손에 죽겠다'는 마음이었을 거예요. 그 신의 촬영 현장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한데요. 정말 고요했어요. 중요한 신이었으니까요. 유해진 선배님은 그날따라 저를 안 보려고 하셨어요. 저도 바로 눈치를 챘죠. 선배님이 저를 보면 감정이 깨질거라 생각해서 피하시는구나라고요. 그래서 저도 선배님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최대한 떨어져 있었어요. 리허설이 시작됐고, 문이 열리고 선배님이 멀리서 들어오시는데...그건 '아빠의 모습'이었어요. 지금도 마음이 뭉클해지는데(실제로 이 말을 하는 박지훈의 눈시울은 붉어졌다) 제가 연기를 하며 느껴본 최고의 순간이었어요. 선배님과 이런 호흡을 할 수 있다니. 놀라운 에너지였어요. 카메라가 제 얼굴을 찍어야 하는데 제가 눈물을 너무 흘려서...가슴이 아플 정도로 눈물을 흘렸던 것 같아요. 제가 연기를 하면서 느꼈던 최고의 날이었습니다"


감정의 클라이맥스가 지나고 난 후, 힘을 뺀 장면에서 또 한 번의 슬픔이 몰려오기도 한다. 단종의 평화로운 일상을 담은 개울가 신이다. 이 장면은 유해진이 촬영 쉬는 시간 중 개울가에서 박지훈이 손을 씻는 모습을 보고 제안한 아이디어였다.


"그걸 보면서 저도 납득이 간 게 17살이면 친구들이랑 뛰어놀고 그럴 시기잖아요. 혼자 이렇게 유배와서 쓸쓸하게...그 장면을 보면서 저도 가슴이 아팠던 게 '홍위도 마을 사람들 뛰어놀고 싶지 않았을까?', '왕이기 전에 청소년이고 어린 나이인데…라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그 장면을 찍으면서 단종의 그런 마음을 신경 썼고, 누구나 납득이 가는 장면으로 완성되지 않았나 싶어요"


배우 박지훈의 필모그래피에서 '왕과 사는 남자'는 어떤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시리즈 '약한 영웅'이 '배우의 발견과 가능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면 '왕과 사는 남자'는 '가치 입증과 도약'으로 집약할 수 있다. 


박지훈은 "아역 시절부터 연기에 미쳐있었다"고 말했다. 스무 살이 넘어서는 아역 때와는 다른 감정의 진폭을 연기하며 배우로서 한층 성장하고 깊어졌다. 연기의 재미는 당연히 따라왔다.


"매 작품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것을 배워나가는 게 연기의 재미 같아요. 나는 이 캐릭터를 연기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캐릭터에 어떻게 빠지고, 어떤 연기를 하는지 늘 궁금증을 가지고 보게 돼요. 현장에서 그런 것을 보는게 너무 재밌고 행복해요. '약한 영웅'을 하고 난 후 '쟤는 저렇게 슬프고 외롭고, 사람들과 동떨어져있는 캐릭터가 어울려'라는 글을 본 적 있는데 '나는 이런 캐릭터만 어울리는걸까'라는 생각도 한 적 있어요. 다양한 작품에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연기가 너무 재밌어요"





김지혜 기자


https://v.daum.net/v/2026021611000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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