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은 애초부터 세조랑 다른 케이스라고 생각해서 이 새벽에 주저리주저리 써봄
우리가 보통 세조랑 태종이랑 비슷한 점을 말해보자 하면 "왕위를 얻으려고 가족을 죽였다" 라는 이야기들을 하는데,
솔직히 이건 태조의 판단미스에 가까웠고 태종이 그럴 수 밖에 없던 사건이긴 했음
태조의 가족관계도를 보자(이미지는 걍 다운받아옴)

태조는 경처인 신덕황후 강씨/ 본처인 신의황후 한씨를 두었음
(경처(京妻)는 고려 시대 말기부터 조선 초기에 걸쳐, 향리나 지방관들이 서울(개경/한양)에 머물 때 혼인하여 둔 처를 뜻함. 근데 사실 고려도 정실부인은 1명만(1처)맞이하는 걸로 두기 때매...따지자면 후처인 것임 ㅇㅇ)
한씨는 조선이 세워지기 전 죽었고, 강씨는 살아서 왕후가 됨

Q.그럼 걍 계모 소생 자녀들이 미워서 죽인거냐
A. 아녀
신덕왕후랑 사이가 나쁘지 않았음.조선 개국 전 신덕황후랑 아들들 목숨 위험할때 태종이 구해줬고 정몽주 살해때문에 태종이 성토당할때 신덕왕후가 태종 편 들음 ㅇㅇ 조선왕조실록에도 실려 있는 이야기임
근데 문제는 이 신덕왕후의 아들, 그것도 둘째아들이 왕세자로 지목이 된거임
첫째아들도 아님;; 둘째임. 즉 후처 소생의 막내가 왕세자가 된거
Q. 오 그럼 세종처럼 똑똑했나요?
A. 아니오
Q.공을 세웠나요?
A.아니오
진짜 개억지여서 태조가 왜 그랬는지 그 이유는 아직까지 다들 추측만 하고 있긴 함
일단 걍 태조가 신덕왕후 강씨를 너무 편애해서 그 아들들을 먼저 챙겨주고 싶었다( 실제로 태조는 본처인 신의왕후 한씨를 굉장히 푸대접했음..죽었다 해도 시호는 내려줄 법한데 왕후의 시호를 내리지도 않았거든(왕비대우 안해줬다는 말임))
신덕왕후만 중전으로 세워서 그녀 소생인 2남 1녀만 적자로 만들어두고 정통성을 세울 생각이었다
등등
하지만 일단 말도 안되는 거지 ㅇㅇ
그래서 나중에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왕실 종친들도 그래서 다 이방원 편이었음. 신덕왕후의 가족들도 이성계/신덕왕후의 편이 아닌 사람이 있을 정도였는데, 신덕왕후의 면전에서 이방원을 편 들었다고 함
여튼 이렇게 모두가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신덕왕후가 일찍 죽어버림....
그리고 그녀가 죽은 후 3년 뒤, 태종은 무인정사를 일으켰고 두 동생과 정도전 등을 죽임.

Q.근데 왜 죽인건 똑같은데 왜 태종은 긍정적으로 봄?
A.애초에 걍 아무리 생각해봐도 무리수였기 때문
일단 뭐 말자상속(막내에게 상속하는 제도) 가 있던 나라도 아니었고, 심지어 적장자 뻔히 따로 있는데다 공으로 치자면 정종(이방과), 태종(이방원) 을 못따라가는데 말이 안 되잖음.
그리고 만약 이게 정말 부당하고 말도 안되고 그런 쿠데타였다면
왜 민간으로부터의 반항이 없었을까?
무인정사(제1차 왕자의 난)은 생각보다 종친/공신들도 많이 참여했기 때문임... 심지어 세자의 형인 이방번마저 이방원이 난에 침여할지 물어볼 때 그냥 방치했다고 함(아마 동생이 죽음 세자 자리가 자기에게 올 것이라 생각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음...(내주장아님))
그리고 당시 이래저래 반대파로 엮여서 하옥되거나 처벌된 이들도 나중에 적당히 중앙에 복귀해 벼슬살이를 하는 사람들 많았음. 세조처럼 걍 다 미친놈처럼 죽인게 아님;;;,.
태종은 이렇게 1차 왕자의 난 이후에도 공신 숙청/외척 숙청을 단행하고 그 자리에 신진 세력들을 넣어 단단한 기반을 세종에게 물려줌
이것만으로도 태종이 세조와 같다는 말은 정리된다고 생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