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경제발전상을 강조하기 위해 필리핀과 비교하면서 필리핀이 예전에는 아시아에서 일본 버금가는 수준으로 잘사는 나라였고, 심지어 선진국이었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완전히 거짓이다.
1960년 ~ 1965년 1인당 GDP로만 비교해 봐도 필리핀은 100달러 중반에서 200달러 중반 정도이지만, 말레이시아는 이미 그 시기에 200달러 중반에서 300달러 초반이었다. 심지어 싱가포르는 400달러 초반에서 500달러 초반이었다.
이미 1960년대 당시에도 동남아시아에서 필리핀은 그닥 잘사는 축도 아니었던 셈이다.

필리핀이 한국에 비해 1인당 국민 소득으로 우위를 점한 때는 6.25 전쟁으로 한국이 초토화되었던 때부터 60년대 후반까지 약 15년 정도 남짓한 기간 뿐이며, 1969년을 기점으로 한국에게 1인당 국민소득을 추월당하였다.
필리핀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60년 264달러
한국의 경우 1960년 159달러로
당시 한국이 전세계 최빈국이었던걸 생각하면
최빈국보다 그래도 필리핀이 약간 사정이 낫다 수준의 도토리 키재기였음을 알 수 있다.

60년대 및 70년대 필리핀과 한국의 거리 사진을 비교하는 식의 게시물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정작 필리핀은 대도시의 도심 지역 사진이고, 한국은 외곽의 시골 지역 사진을 가져와 놓았다.
여러모로 한국의 전후 급격한 경제성장이 매우 드라마틱했기에 이는 한국인들의 자부심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그런 자부심이 과도하게 본인들의 과거를 과소평가하게 되는 경향으로 변질됐고, 저런 식의 선동적인 글도 여과없이 받아들이게 됐다.

한국이 필리핀을 롤모델로 삼았다는 근거 없는 루머가 퍼져있지만, 당시 외무부 장관이었던 이동원의 회고록을 살펴보면 애초에 박정희는 필리핀을 후진국이라고 무시하였다. 또한 서울의 장충체육관을 지을 기술이 부족했던 한국 대신 필리핀이 지어줬다는 얘기가 이상하게 많이 퍼져 있으나, 거짓이다. 장충체육관은 필리핀과는 아무 연관도 없다.
심지어 이명박 전 대통령 또한 이게 사실인 줄 알고 필리핀을 방문했을 때 얘기한 바 있는데, 대한민국의 대표인 대통령이 외교관계에서 잘못된 정보를 말한 건 문제가 있으며, 외교에는 사실 확인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 외에 미국 대사관, 현 문화관광부 등의 청사 건설에 필리핀 엔지니어가 참여했다는 설도 있으나, 전부 확인되지 않은 추측의 영역이다. 그리고 아주 만약에라도 필리핀 엔지니어가 참여했던 게 사실이라고 한들, 몇몇 기술자가 '참여'한 것이 어떻게 '지어줬다'는 셈이 되는 건지 의문이다.
이러한 오해에는 바나나도 한 몫 한다. 짜장면 한 그릇이 200원이던 시절, 바나나 한 송이 가격이 5,500원에 달할 정도였다. 지금 물가로 환산하면 한 송이에 20만원에 달하는 초호화 과일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런 사치품으로 여겨지던 바나나를 전량 필리핀에서 수입해오다보니 필리핀을 더욱 부자나라로 인식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