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이켜보면 ‘평창’은 거저 찾아온 영광은 아니었다. 조직위원회와 지역민의 노력도 눈물겨웠지만, 동계 종목 불모지의 불리함을 근성으로 메운 ‘겨울 올림피언’들의 도전이 쌓아올린 금자탑이기도 했다. 몬트리올 양정모(하계 첫 금)보다 알베르빌 김기훈(동계 첫 금)을 본 사람들이 훨씬 많기 때문일까? 동계올림픽의 알싸한 환희는 하계대회의 화끈한 희열 못지않게 선명하다. 나가노 대회 전이경의 네 번째 금, 토리노 진선유·안현수의 3관왕, 밴쿠버를 빛낸 김연아·모태범·이상화 등 동계 팀코리아의 선전은 평창 유치의 밑거름이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 동계올림픽 역사상 가장 기이하고 부끄러운 사건이 평창에서 터졌다는 사실 또한 잊기 어렵다. 미디어가 실마리를 제공하고, 언론과 정치인이 논란을 증폭시켰으며, 그에 고무된 일단의 군중이 선수 한 명을 무참히 매장하려 했던 희대의 ‘집단 가해’. 바로 평창올림픽 팀추월 여자대표팀 왕따 논란이다.
2018년 2월 19일, 벌써 8년 전이다. 팀추월은 세 명이 트랙을 돌아 최후방 주자의 결승점 진입을 기록으로 인정한다. 김보름 박지우 노선영의 대표팀은 8강전에서 노선영 혼자 뒤로 처지는 등 호흡이 맞지 않는 문제를 노출하며 4강 진출에 실패했다. 시청자 눈에도 한 명이 따로 달리는 건 어색해 보였는데, 당시 중계진이 “최악의 모습”(캐스터)이라거나 “이런 장면이 나오지 않게 해야”(해설자) 한다는 평가를 내리며 논란에 불이 붙었다. 김보름 기사엔 악플이 수만 개씩 달렸다. 당시 대통령 문재인은 김보름의 매스스타트 은메달을 축하하며 “메달보다 값진 교훈을 얻었을 것”이라고 이상한 사족을 달았다. 대통령이 교훈을 운운한 저격성 발언으로 논란에 앞장섰고, 여러 정치인들이 말을 섞었다.
진실은 그해 5월 뒤늦게 밝혀졌다. 문체부 감사 결과 선수들은 누구를 따돌리거나 기록을 늦추려는 의도 없이 최선을 다했다. 팀추월 경기 낙오는 타국 대표팀에서도 종종 있던 일이었다. 경기 종반엔 함께 가는 것보다 각자 최선을 다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김보름이 겪었을 마음고생을 생각하면 너무 허무한 결론이었다. 김보름 국가대표 퇴출 청원에 60만 명이 서명하는 등 마녀사냥은 이미 끝난 뒤였다.
김보름 탓을 하던 사람들은 여전히 방송을 하거나 정치를 하고,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내뱉고 산다. 그러나 오히려 움츠린 김보름은 인터뷰에서 웃는 얼굴을 보이는 것마저 조심스러웠다. 얼음판에 남지 못하고 한 번도 한 적 없는 야구로 예능을 하는 중이다. 이게 그 대통령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정의’는 아닐 테다. 팬층이 두꺼우면 얼굴마저 두꺼워지는 기묘한 현상. 김보름 사건 역시 한국적 결말로 정리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저들은 반성할 리 없으니 김보름이라도 보란 듯 잘살았으면 좋겠다. 그게 그나마 정의에 가까운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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