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이슈 핫게 가지 않더라도 그냥 많은 사람들이 봐줬으면 좋겠는 글.jpg
7,181 23
2026.02.11 01:40
7,181 23

하루는 내 동생과 한 이불속에서 밤이 새도록 수다를 떨었다. 
당시 그녀는 고3 이었고 나는 스물일곱. 8살 터울이었지만 
우리는 서로의 나이차이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수학 성적이 좋아서 이과를 선택한 수현이는 고3이 되었지만 한달인가 
지나서 갑자기 사진을 공부하고 싶다고 부모님 속을 엄청 썩이고 결국 
사진기를 손에 쥔지 4개월 정도 지났을 때였다. 

'중앙대에 가고 싶어, 언니. 근데 사진과는 서울캠퍼스가 아니고 지방에 
있어서 집에서 통학하기 쉽지 않을텐데 어쩌지?' 

'그럼 나랑 둘이 따로 나와서 살자. 언니가 얼른 앨범내고 돈 벌고 차 뽑아서 데려다줄게.' 

'내가 언니랑 따로 산다고 하면 엄마가 퍽이나 좋아하겠다.' 

'걱정마, 너 사진 공부 하는 것도 내가 우겨서 허락받은건데... 어디쯤에 집을 구하면 니가 학교 다니기에도 내가 홍대 가기에도 편할까?' 

다음날 동생은 청량리역으로 사진을 찍으러 다녀오겠다고 말했고 난 만원인가를 쥐어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날 저녁, 그녀는 청량리역에서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내게 꼭 필요한 존재였다. 내가 계란 흰자를 좋아하고 그녀는 계란 노른자를 좋아하기 때문일지도. 

아니면 나는 닭가슴살을, 그녀는 닭다리를 좋아해서 치킨을 한마리 시켜도 사이좋게 먹을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엄마가 밥먹으래'라는 한마디가 하루 중 우리의 유일한 대화일 때도 많았고

내 옷을 말없이 가져가는 것에 미칠듯이 분노하며 엄마가 내 동생을 혼내는 날엔 나 역시 엄마편을 주로 들곤했지만 나에게는 역시 내 동생 뿐이었다. 

청량리역에서 사진을 찍던 동생은 이유없이 포크레인에 깔려 즉사했다. 
병원에는 경찰도 오고, 포크레인 회사 사람, 철도청 사람, 방송국, 신문 기자들이 왔다. 

3일이면 충분한 장례식장에 11일을 머물렀다. 너무나 힘들었다. 
하지만 나를 가장 많이 괴롭혔던 것은 엄마가 했던 말이었다. 
사진공부를 시키지 않았다면 수현이는 죽지 않았을거야. 
밤이 오면 옥상에 올라가 많은 것을 생각했다. 
그녀가 죽기 바로 전 날, 새벽까지 우리가 그렸던 내일이 난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중앙대에 갈 수 없고, 사당 근처에서 같이 살 수도 없고 내가 돈을 벌고 차를 뽑아도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집에 돌아와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했다. 
엄마는 매일 아침 밥을 지어야 했고 아버지는 매일 아침 출근을 했다. 
나는 바로 제주도에서 공연이 생겨 웃는 얼굴로 <바나나 파티>를 불러야 했다.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었다. 나는 계속 '내일'에 대해 생각했다. 
누군가 내게 '내일은 뭐해?' 하고 물어오면 '내일? 내가 어떻게 알아. 
바로 죽어버릴 수도 있는데.' 하고 이야기했다. 

동생을 잃고 나서 얼마간 이루 말할 수 없는 비관론자가 되었다. 죽음은 이제 더이상 나에게 쪼글쪼글 할매가 되어서야 맞게 되는 일이 아니었다.

바로 코앞에서 나를 언제나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로 두렵지도 않았고, 늘 내일 죽을 사람처럼 굴었다. 

수중에 있는 돈은 그냥 다 써버렸고, 살찔까봐 조심스러워했던 식성도 
과격해졌다. 술도 퍼마시고 담배도 피워댔다. 그렇지만 나는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내일'이라는 것을. 
동생뿐이었던 내게 아무렇지 않게 그녀를 홀랑 데려가버렸던 신의 의도를. 죽기전에 우리가 보낸 새벽을. 그녀의 죽음을. 사진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죽지 않았을거라는 엄마의 절규를. 그녀의 죽음을 통해 나는 무언가를 깨달아야했고 그걸로 내 삶이 변화해야 했다. 깨닫지 않고서는 그녀의 죽음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일년 반 정도가 지났다. 

그리고 나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 동생의 죽음의 교훈을 알아 내었다. 그 교훈은 민망할 정도로 너무나 당연해 모두가 간과하고 있던 시시한 진실. 

그것은 바로 '빛나는 오늘의 발견'이고 '빛나는 오늘의 나' 였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내가 내 동생을 잃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던 것. 오늘에 충실하는 것.

이것이 여러분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다. 

나는 여러분이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고문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여러분이 오늘 먹고 싶은 음식을 먹기를 바라고, 너무 입고 싶어 눈에 밟히는 그 옷을 꼭 사기를 바란다. 
나는 여러분이 늘 보고 싶지만 일상에 쫓겨 '다음에 보지 뭐' 하고 넘기곤 하는 그 사람을 바로 오늘 꼭 만나기를 바란다. 

나는 여러분이 100만원을 벌면 80만원을 저금하지 않고 50만원만 저금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사고 싶은 옷을 참고 먹고 싶은 음식을 참으며 만나고 싶은 사람을 다음으로 미루는 당신의 오늘에 다 써버리기를 바란다. 

나는 당신이 사진을 찍을 때 행복하기를 바란다. 나는 당신이 그림을 그릴 때 행복하길 바라고, 당신이 무대위에서 대사를 읊조리고 동선을 고민할 때 행복하기를 바란다. 

이 사진이 사람들의 호응을 살지, 이 그림이 얼마나 비싸게 팔릴지, 당신의 연기를 사람들이 좋게 봐줄지를 고려하기보다

그저 당신이 원해왔던 행위를 하고 있는 바로 지금 이 순간 당신의 행복을 더 우선했으면 한다. 

내일 죽어도 좋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당신의 오늘이 완성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오늘 노래하는 것이 너무나 행복하고, 오늘 수중에 돈이 없을때면 맛있는 라면을 먹고 돈이 많을 때 내가 좋아하는 봉골레 스파게티를 먹는게 행복하다.
사랑하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거나하게 취하고 다음날 눈을 떠 조금 창피한 기분을 느끼는 것이 행복하다. 
나는 내가 글을 쓰는 2009년 5월 22일 뮤지션으로 살아있는 것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 

'사진공부를 시키지 않았다면 수현이는 죽지 않았을 거야' 하고 이야기했던 엄마는 조금 틀린 것 같다. 수현이는 그 날, 행복했을 것이다. 그렇게 원했던 사진을 그 날도 찍을 수 있어서, 찍고 싶었던 청량리역을 찍고 있어서, 내가 쥐어준 만원으로 맛있는 밥을 먹어서 행복했을 것이다. 

얼마전 차안에서 그냥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스피노자가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을 인용하는 것을 듣고 나는 엉엉 울었다. 
이제야 이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며 흘린 눈물이었다. 
나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내일 모레 공연을 위해 오늘 합주를 할 것이다. 
여러분도 그렇게 해주길 바란다. 나는 당신의 오늘이 행복하길 바란다. 
당신의 내일같은 건 관심도 없다.

- from 요조

DVPqn.png
목록 스크랩 (3)
댓글 23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성분에디터X더쿠💙] 모공은 채워주고, 피부는 당겨주고! 성분에디터 그린토마토 NMN 포어 리프팅 모공 앰플 체험이벤트 #화잘먹극찬템 #산리오캐릭터즈 굿즈 추가증정 247 00:05 16,250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24.12.06 4,658,943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11,550,519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12,661,301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은 정치 카테고리에] 20.04.29 34,851,664
공지 정치 [스퀘어게시판 정치 카테고리 추가 및 정치 제외 기능 추가] 25.07.22 1,046,857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82 21.08.23 8,487,417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68 20.09.29 7,406,039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596 20.05.17 8,619,975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4016 20.04.30 8,498,329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4,363,330
모든 공지 확인하기()
2989021 이슈 의외의 동계올림픽 효자종목 13:56 6
2989020 정치 합당이 뜻대로 안 돼서 돌아버린 것 같은 김어준 13:55 119
2989019 유머 공룡화투 13:55 101
2989018 유머 이제 하다하다 오디션에서 참가자들이 유사연애 말아줌 2 13:52 805
2989017 유머 같은 동양인이니까 중국어도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9 13:50 1,096
2989016 이슈 우리가 알던 성수동 감성이 점점 사라지는 이유 14 13:48 2,141
2989015 유머 좋소식 아침인사 3 13:46 1,038
2989014 유머 여자 나이 46이면 여자로서의 생명은 끝이란다.threadss 34 13:46 2,785
2989013 기사/뉴스 [어제 부산 폭설현장] 마 부산서 이정도믄 폭설이다! 부산 눈 소식에 뛰쳐나간 아이들 2 13:45 455
2989012 기사/뉴스 청담동 피부클리닉 찾는 손님들 #강남 #시술소 #주사 2 13:45 492
2989011 기사/뉴스 유엔, 음력설 공식 기념우표에 '중국설' 7 13:42 960
2989010 이슈 '믿을 수 없다' 손흥민 배신 당한다, 부앙가 흥부 듀오 6개월 만에 해체 선언...'LAFC 떠나겠다' 경고 11 13:40 1,716
2989009 기사/뉴스 [단독] '인천판 도가니' 색동원 시설장, 피해자 입막음 시도했다 13:40 267
2989008 이슈 코숏 턱시도 고양이 키운다는 배우 이성민 32 13:39 3,394
2989007 기사/뉴스 브리트니 스피어스, 저작권 통매각 “3천억원 수준 예상” 13 13:39 1,218
2989006 이슈 할아버지 개부럽다 4 13:38 717
2989005 이슈 "단종한테 사과해 XX야"…'왕사남' 흥행에 세조 광릉 별점테러, 후기창 폐쇄 30 13:38 1,954
2989004 기사/뉴스 박현빈 “‘오빠 왔다 아기들아’로 여심 저격? 난 다 누나로 보여”(손트라) 13:36 365
2989003 기사/뉴스 미성년자에 2000만원 빚 떠넘기고 강제집행까지···법원 “지급명령 무효” 3 13:36 794
2989002 이슈 아기와 소통하기 위해 수어를 가르치는 엄마 16 13:36 2,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