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기사/뉴스 직장·육아 스트레스 퍽~ "찬 빙판이 뜨거운 해방구죠"
972 1
2026.02.09 11:44
972 1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353/0000054510?sid=104

 

동계올림픽만큼 후끈일상 속 겨울 스포츠
연습 경기에 한창인 트리걸스 회원. 김정훈 기자
연습 경기에 한창인 트리걸스 회원. 김정훈 기자

“스윽, 슥. 쾅!”

지난달 30일 오후 10시30분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아이스링크. 도시가 잠들 준비를 마친 늦은 시각이지만 이곳의 공기는 한낮보다 뜨거웠다. 두꺼운 보호 장비와 헬멧으로 무장한 이들이 빙판을 가를 때마다 거친 숨소리와 얼음 지치는 소리가 실내를 가득 메웠다.

“거기서 패스! 더 빠르게!” 백우현(35) 코치의 호령이 떨어지자 퍽(Puck·고무 원반)이 총알처럼 골망을 흔들었다. 백 코치는 “훈련할 때만큼은 회원들 눈빛이 프로 선수 못지않게 강렬해진다”며 “가르쳐주는 기술을 하나라도 더 습득하려는 열정은 지도자인 내가 봐도 놀라울 정도”라고 혀를 내둘렀다.

헬멧을 벗자 땀에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환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올해로 창단 10주년을 맞은 아마추어 여자 아이스하키 동호회인 ‘트리걸스(Triggirls)’ 회원들이었다. 낮에는 직장인·학생·엄마로 생활하다가 밤이 되면 ‘빙판 위의 전사’로 변신하는 워킹맘 부주장 이수정(32)씨, 스포츠 마니아 정혜주(29)씨, 독일인 유학생 헬미히 실케(26) 등은 “이 차가운 빙판이 일주일 중 가장 뜨거운 해방구”라고 입을 모았다.
 

 


Q : 다들 본업이 있는데 밤에 힘들지 않나.
A : 이수정=“오히려 그 반대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퇴근하면 육아를 하는 워킹맘으로 살다 보면 정작 ‘나’ 자신을 잃어버린 기분이 들 때가 많다. 하지만 이곳에선 온전히 ‘플레이어 이수정’으로만 존재한다. 낮에 쌓인 스트레스를 밤에 이곳에서 전부 ‘세탁’하고 가는 기분이다. 출산 후에도 100일도 안 지나 복귀했을 정도로 이 시간이 간절했다. 직장인과 하키 선수라는 이중생활이 주는 짜릿함은 덤이다(웃음).”

 

A : 실케=“독일 시골 출신이라 링크가 너무 멀어 스틱을 잡기 힘들었는데 한국에 유학을 온 뒤 인터넷에서 모집 글을 보고 ‘이거다’ 싶어 즉시 달려왔다. 연구실에서 나와 장비를 갖춰 입고 빙판에 서면 나도 모르게 자신감이 샘솟는다. 팀의 일원이 된다는 소속감도 타지 생활의 외로움을 잊게 해주는 버팀목이다.”

 

여성 아이스하키 동호회 '트리걸스' 회원들이 고려대 아이스링크에서 스틱을 모은 채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정훈 기자
여성 아이스하키 동호회 '트리걸스' 회원들이 고려대 아이스링크에서 스틱을 모은 채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김정훈 기자

하지만 아이스하키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엔 여전히 편견이 존재한다. ‘거칠고 위험하다’거나 ‘돈이 많이 드는 귀족 스포츠’라는 인식이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정씨는 “해보기 전엔 나도 같은 생각이었는데 막상 해보니 테니스나 골프보다 훨씬 ‘가성비’가 좋다”고 설명했다. “초기 장비 구매에 100만원가량 들지만 한 번 사면 10년 넘게 쓴다. 회비와 대관료를 따지면 1회에 3만원 정도라 요즘 유행하는 필라테스나 골프에 비해 결코 비싼 게 아니다. 무엇보다 타격감이 남다르다. 스틱 블레이드에 퍽이 정확히 맞았을 때 ‘깡!’ 소리가 나는데, 그 짜릿한 손맛은 쳐본 사람만 안다.”

김준환(35) 코치도 이들의 진정성에 높은 점수를 줬다. 김 코치는 “아마추어라고 해서 적당히 즐기다 가겠지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며 “전술 이해도나 팀워크를 맞추려는 노력은 프로 선수 못지않게 치열하다”고 전했다.
 


(중략)


트리걸스가 창단할 때만 해도 여성 아이스하키팀은커녕 여자 선수를 받아주는 곳도 드물었다. 트리걸스 주장인 최기련(43)씨는 “남자 팀에 ‘깍두기’로 껴서 뛰기도 쉽지 않은 현실에서 우리는 처음부터 과감히 ‘100% 여자팀’을 표방했다”며 “10년을 버틸 수 있었던 것도 가족 같은 끈끈함으로 뭉쳤기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현실적인 어려움도 여전히 적잖다. 서울시내 정규 규격 링크는 손에 꼽을 정도여서 대관은 항상 모두가 잠든 심야 시간에만 가능하다. 이날 훈련도 자정이 거의 다 돼서야 끝났다. 하지만 거친 숨을 내쉬는 회원들 얼굴엔 피곤한 기색보다는 멍 자국을 훈장처럼 여기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Q : 넘어지는 게 두렵진 않나.
A : 정혜주=“사회에서는 넘어지는 걸 ‘실패’라고 여기지 않나. 직장에서도 실수하면 안 되고, 인간관계도 삐끗하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그런데 여기선 매일 수도 없이 넘어진다. 얼음판 위라 넘어지면 더 차갑고 아프게 느껴진다. 하지만 아이스하키 동호회를 하면서 배운 건 ‘넘어져도 괜찮다’는 점이다. 이곳에선 넘어져도 보호 장비가 나를 지켜주고 동료들이 금세 손을 내민다. ‘넘어져도 훌훌 털고 일어나면 그만’이란 단순한 진리를 몸으로 배우는 거다. 어쩌면 우리가 밤마다 이곳을 찾는 건 마음껏 넘어지면서도 또다시 일어서는, 세상에선 접하기 힘든 경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할머니가 돼서도 이 멤버들과 함께 땀을 흘리고 싶다(웃음).”


헬멧을 벗은 그녀들의 얼굴이 붉게 상기돼 있었다. 무거운 장비 가방을 어깨에 메고 링크를 나서는 뒷모습에서도 내일 출근을 걱정하는 직장인의 모습보다 오늘을 불태운 승자의 여유가 진하게 느껴졌다.

목록 스크랩 (0)
댓글 1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이벤트 공지 [💖마몽드X더쿠💖] 화잘먹 맛집 마몽드의 신상 앰플팩! 피어니 리퀴드 마스크 & 데이지 리퀴드 마스크 체험단 모집 367 02.07 45,129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24.12.06 4,648,833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11,536,928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12,650,020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은 정치 카테고리에] 20.04.29 34,829,637
공지 정치 [스퀘어게시판 정치 카테고리 추가 및 정치 제외 기능 추가] 25.07.22 1,045,735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82 21.08.23 8,486,081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68 20.09.29 7,406,039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596 20.05.17 8,618,494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4016 20.04.30 8,497,553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4,362,020
모든 공지 확인하기()
2987403 이슈 응급실에서 겪게되는 거짓말 23:20 58
2987402 이슈 중국 팬싸에서 팬이랑 아이컨택 하면서 1:1 듀엣 해주는 도경수 1 23:19 59
2987401 이슈 현재 우리나라 가요계에서 다시 한번 뜰수 있을지 궁금한 데뷔 계열 2 23:19 284
2987400 이슈 동양 서양 양쪽에서 모두 그 당시 최고미인이라고 생각했던 미국 여배우 3 23:17 805
2987399 이슈 윌스미스 스파게티 먹는걸로 보는 ai 개발 속도.x 6 23:16 491
2987398 이슈 원덬이가 스레드 보다가 케이크가 독특해서 신기한 케이크(몇개만..) 9 23:15 873
2987397 이슈 (일반인 중에) 성덕의 표본 그 자체라는 미미미누 23:14 262
2987396 이슈 최근 미국 토크쇼에서 보여준 짧고 강렬한 연기로 화제된 배우 3 23:13 783
2987395 유머 머리 큰 펭수가 바닥에 숨는 방법 3 23:11 270
2987394 정치 카톡으로 정리한 정청래의 대통령 엿먹이기 25 23:11 725
2987393 정치 이재명 명칭도 못쓰게 하는 민주당 34 23:08 1,273
2987392 이슈 윤두준 인스타그램 업뎃 2 23:08 568
2987391 유머 함정이 너무 큰 초1 시험지 22 23:08 1,759
2987390 이슈 엡스타인 사건 총정리 7 23:06 1,423
2987389 유머 마시멜로우가 신기한 고영희 3 23:06 454
2987388 이슈 한국에서 인기 많은 서양인 얼굴들이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서양권 사람들.jpg 28 23:04 3,555
2987387 이슈 KiiiKiii 키키 ‘404 (New Era)’ 탑백 2위 피크 (🔺1) 19 23:03 692
2987386 이슈 가수 조성모가 인기가 그렇게 많았나요??? 26 23:03 1,152
2987385 유머 전설처럼 내려오는 대학입시 면접 내용 2 23:02 1,462
2987384 유머 놀뭐 미방분만 잠깐 봐도 걍 계속 싸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6 23:02 1,6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