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정지수 기자 = "여기는 20평대가 11억원입니다."
영하 10도를 밑도는 강추위가 몰아친 7일 서대문구 한 가파른 언덕. 롱패딩으로 무장한 2030 세대 15명 남짓이 부동산 임장 모임장의 설명에 하얀 입김과 함께 탄식을 내뿜었다. "집 사기 정말 힘드네요. 이제 경기도까지 봐야 하나 봐요." 참가자 사이에선 "지금 돈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한숨이 터져 나왔지만, 그러면서도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꼼꼼히 메모를 이어갔다.
정부가 '부동산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연일 강도 높은 메시지를 내놓고 있지만 청년들의 발길은 오히려 부동산 현장으로 향하고 있다. 정부의 엄포가 '지금 아니면 영영 못 산다'는 불안감과 '혹시나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에 따른 급매물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동시에 자극했기 때문이다.
이날 기자는 서대문·마포에서 열린 임장 2곳에 동참했다. 서대문에서 만난 A씨는 기자에게 "정부가 정책을 쏟아내니 뭔가 더 자극되고 조급해진다"며 "조만간 다주택자들이 매물을 던지지 않을까 싶어 그 시기를 맞추려 미리 공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현장의 분위기는 기대와 다소 달랐다. 서대문 토박이라는 한나연(27·임상병리사)씨는 "중과세 이슈 때문에 매물이 나올 거라는 얘기를 듣고 살 수 있는 집이 있나 싶어 임장을 시작했는데, 실제로는 나오는 집도 없다"며 "이상과 현실이 너무 다르다"고 토로했다.
한씨는 "서민들은 대출 규제라도 풀어줘야 매매든 경매든 할 텐데 규제는 안 풀리고, 막상 현장에 와보니 용산에 100억대 매물 이야기나 듣고 있다"며 씁쓸해했다.
참가자들은 대출이 막히고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종잣돈'을 모으기 위해 주식과 코인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고 했다.
금융권에 재직 중인 30대 한모씨는 2021년 '패닉 바잉'한 마곡 아파트에서 마포·서대문 아파트로 갈아타기 위해 임장에 왔다. 한씨는 "투자 스터디의 어떤 분은 트럼프 당선 후 돈이 풀릴 거라며 인생 역전을 위해 미장(미국 주식시장)에 '몰빵'했다고 하더라"며 "나도 어제 워런 버핏 책을 샀다"고 웃어 보였다.
반면 직장인 김모(31)씨는 "주식 투자는 번번이 잃어서 부동산에 집중하려 한다"며 "그래도 부동산이 안전자산 아니냐"고 반문했다.
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신도 감지됐다. 정부가 다주택자를 압박하고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시장의 반응은 뚜렷하지 않은 상황이다.
마포 임장에서 만난 손모(31)씨는 공급 대책에 대해 "실효성이 없을 것 같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친구들끼리 '공직자들도 다 강남에 집 갖고 있는데 다주택자 때려잡는 게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말을 한다"며 "서울 집값은 안 떨어질 것 같다"고 했다.
한나연씨 역시 "다주택자를 잡으면 안 그래도 없는 전세가 더 없어질 것"이라며 "그러면 다들 월세로 돌릴 테고, 결국 서민들만 월세살이에 전전긍긍하게 될 것 같아 착잡하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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