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대군 뺨치는 야심가, 바로 그의 아내
[사극으로 역사읽기] TV조선 드라마 <대군-사랑을 그리다>
글김종성(qqqkim2000)편집김지현(diediedie)
등록 2018.05.05 11:17수정 2018.05.05 11:17발췌한 건데, 흥미로워서 가져와봄.
'남편인 세조(수양대군)은 13년간 임금 자리에 있었다. 부인 정희왕후의 수렴청정 기간 8년을 합치면, 부부가 21년 연속으로 조선을 다스린 것이다. 그런데 이 부부가 조선을 다스린 기간만 나란히 이어지는 게 아니다. 나란히 놓일 만한 게 또 있었다. 바로, 권력에 대한 의지다.
왕의 며느리가 되고 싶었던 10세 소녀
수양대군이 강한 권력 의지를 가졌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하극상을 했다. 살아서는 형인 문종의 뜻을 어기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죽어서는 아버지 세종보다 높은 세조(世祖)라는 묘호(사당 명칭)를 받았다. 세조라는 명칭에서는 제2건국자의 뉘앙스가 풍겼다. 거기다가 아버지와 똑같은 세(世)를 쓰면서, 종(宗)보다 높은 조(祖)를 쓴 것도 문제였다. 죽은 뒤이기는 하지만, 그런 일로 불효를 범한 것이다.
남편 때문에 잘 부각되지 않아서 그렇지, 정희왕후도 수양대군 못지 않았다. 정희왕후 역시 권력에 대한 의지가 만만치 않았다. 원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서열쯤은 얼마든지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극상 기질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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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말한 무당에 관심 보인 그녀
열 살 때 있었던 이 일을 철없는 소녀의 일시적 행동으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은 그후에도 유사한 일이 계속 되풀이됐기 때문이다. 시집간 된 뒤에도 윤씨의 행동에서는 하극상이란 행동 패턴이 일관되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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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실록>에서는 무당이 "더 이상 고하지 않고 가버렸다"고 한다. 가마솥에서 소리가 난 직후에 무당을 만난 것이나, 남편이 정변에 관련될 거란 예언을 듣고도 무당을 붙잡아 둔 것이나, 무당이 꺼리는데도 추가 질문을 한 것은 윤씨 마음속에 무엇이 꿈틀대고 있었나를 보여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남편이 정변이라도 벌여서 왕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이때 윤씨는 만 33세였다. 언니를 밀치고 대군 부인이 됐던 만 10세 때의 하극상 기질이 이때도 여전히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극상은 그의 행동패턴이었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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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때 안채로 들어서는 수양대군에게 윤씨가 갑옷을 입혀줬다. 남편이 혹시라도 뜻을 꺾지 않도록 전의를 가다듬어줬던 것이다.
이런 사례들에서 나타나듯이, 수양대군 못지않게 정희왕후 윤씨도 하극상 기질과 정치적 야심이 대단했다. 수양대군이 자기 내부의 기질만으로 일을 벌였던 게 아니었던 것이다. 수양대군의 쿠데타가 수양대군의 의지나 한명회의 조력뿐 아니라 아내의 조력에 의해서도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윤씨는 남편이 죽은 뒤에는 남편에게 세조라는 묘호를 부여했다. 죽은 남편에게 시아버지보다 높은 묘호를 부였던 것이다.
그런 윤씨가 수양대군 사후에 8년간이나 수렴청정을 했다. 일생을 하극상을 향해 달려가다가, 더 이상 하극상이 필요 없는 위치에서 8년을 보냈다. 정희왕후 윤씨는 수양대군이 세상 욕을 다 먹으며 벌인 일들로 혜택을 본 '숨은 승자'의 하나였다.'
실제로 이후 윤씨의 집안은 한씨집안과 더불어 전성기를 누림.
세조의 찐사, 소헌왕후의 최애 며느리로 한정짓기엔 단편적으로 볼 수 없는, 고대의 여인이었음을 알 수 있음. 그 시대 여인으로선 드물게 실행력과 인내심, 여계를 지키지 않고 권력을 추구한 복잡한 인물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