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초(史草)에 이른바 ‘노산(魯山)의 시체를 숲속에 던져버리고 한 달이 지나도 염습(斂襲)하는 자가 없어 까마귀와 솔개가 날아와서 쪼았는데, 한 동자가 밤에 와서 시체를 짊어지고 달아났으니, 물에 던졌는지 불에 던졌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한 것은 최맹한(崔孟漢)에게 들었습니다. 신이 이 사실을 기록하고 이어서 쓰기를 ‘김종직(金宗直)이 과거하기 전에, 꿈속에서 느낀 것이 있어,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지어 충분(忠憤)을 부쳤다.’ 하고, 드디어 종직의 조의제문을 썼습니다."
하였다.
연산군일기 30권, 연산 4년 7월 13일 정미 3번째기사
노산의 시체 = 단종의 시체
한달이 지나도 아무도 수습하지도 않고, 세조는 수습했다고 실록에서 구라깜
그 정통성짱짱한 군주가 죽어서 염습도 되지 못하고 동물에게 쪼아먹힘
역대급 싸패임...
+추가)

현재 단종의 왕릉은 영월에 수습되어 존재함(장릉)
엄흥도라는 지방아전 관리가 목숨을 걸고 수습했다는 설이 제일 유력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