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우리가 아는 음식강국 중국은
원래부터 그런 나라였던것은 아니었음
원래 중국에서 일반적으로 먹는 요리는 기본적으로 맛을 위해서 먹는다기보다
말 그대로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생존식에 가까웠음.

특히 중국의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기 이전의 시대인 한나라~당나라까지는
중국 인구 대다수가 화북 지역에 살았기 때문에
겨울이 강남보다 길고 건조한 지역 특성상
채소 및 곡류 다양성이 별로였고
간단한 면이나 빵류 내지 아욱국등 실용음식이 주였다고 보는게 맞음.
물론 황제나 귀족들이야 잘 먹었지만 그건 상위 0.1% 도 될까 말까
게다가 이런 상류층의 호화스러운 음식도 주지육림이란 말에서 드러나듯
당시 서민들이 먹기 힘든 많은 양의 육류와 주류등을 먹는 과시의 형태
즉 미식이나 요리의 맛 그 자체보다는
'내가 이렇게 비싼 음식을 많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이다' 라는 의미에서 식재료들이 쓰였고
그런 의미에서 잘 먹은건 맞긴함.
조리 철학, 취향, 테크닉 등에 초점을 맞추면서
단순히 비싼걸 먹는다는 과시성이 아니라
요리의 맛과 풍미 그 자체로 중심이 이동한 분위기는 아니었던것임

그러다가 송나라 때 강남개발이 본격화되고
심지어 전통의 번화가였던 화북 지역을 경제력으로 역전해버리면서 얘기가 달라짐
강남이 경제적으로 급부상하며 서서히 경제 중심이 이동했고
이는 상업 발달과 도시문화를 꽃피우게 만들었음.
특히 양저우는 당시 중국의 최고 부자 도시로
지금으로 치면 상하이 느낌
소금 무역과 상업과 연회 문화와 미식도시로 매우 유명했음.
지금은 일개 지방도시 중 하나로 몰락했으나 과거 부유했던 미식도시 흔적은 중국 요리에 남아
양저우 볶음밥은 여전히 중국 볶음밥 표준.
송나라는 도시문화와 상업의 전성기
그로 인한 상인 세력 확대와 외식 산업의 등장
전문 음식점들간의 피 튀기는 경쟁
도시 대중들의 소비문화 폭발로 상징됨
24시간 불이 꺼지지않는 도시인 불야성이란 말이 생겨난것도 송나라.
게다가 송나라는 석탄의 사용이 광범위 해져서 높은열이 요구되는 요리들도 가능해졌음.
그렇기 때문에 본격적인 우리가 생각하는 볶거나 튀기는게 많은 중국 요리의 기원은
대략 송나라 즈음으로 잡으면 얼추 맞음.

동파육으로 유명한 소동파 같은 사대부들부터
일반적인 서민들에 이르기까지
대형 요리점, 연회 전문점, 전문 요리사 직업, 체계화된 전문 메뉴들, 음식 브랜드화 등이 등장해
소위 미식 혁명이 일어나게 된 것.
귀족과 상류층들의 전유물이었던 제대로 차려먹는 요리들이
이제 도시의 대중들에게까지 전파되고
단순한 배를 채우기 위한 음식이 아니라
자기 입맛에 따라 선택 가능하며 취향에 따라 음식을 소비하게 되는
전문 요리산업이 자리잡기 시작한 때가 송나라 시대임
사천요리니 광둥요리니 하는 중국 지역요리는 애초에 딱 국가에서 지정해준게 아니라
원초적으로 생긴 지역별 요리에 송나라때 상업 발전에 따른
지역간의 교류증가와 요리사의 인적 이동이나 연회 문화의 확장등이 겹쳐지면서 일어난 유기적 현상.
그걸 후대의 학자들이 분류해서 내놓은게 중국의 8대요리로
사천(川), 광둥(粤), 강소/강남 (苏), 저장 (浙), 산둥 (鲁), 푸젠 (闽), 후난 (湘) 안후이 (徽)등으로 나뉘게 되었고
이게 지금까지 내려옴.

송나라 때부터 식당들의 메뉴가 수십개에서 수백개에 달하게 되었는데
메뉴가 너무 많아 선택을 힘들어하면 샘플도 보여줬다고 함..
2층은 식당, 1층은 홀 개념으로 운영하며
식당을 명필이나 그림, 꽃, 난 등으로 장식하고
여름엔 얼음덩어리, 겨울엔 화로를 놔두고
식사만 하는게 아니라 연주, 공연, 서커스, 노래, 도박 등등 온갖 즐길거리를 마련했다고 함
상업과 도시문화의 발전으로 외식문화와 음식점 간 경쟁이 폭발하며
이제 단순히 예전처럼 먹을 것만 파는것으로는 차별화가 되지 않았기에
하나의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판매하게 된 것
그럼에도 과열화 된 경쟁이 죽지 않자
이제 송나라 시대 음식점들은 배달이나 케이터링 같은 서비스로 승부했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