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이 싫건 좋건 호오를 가리지 않고 한국과 세계 전반에서 인정되는 사실은 요리강국이라는 지점임. 말 그대로 대륙급 요리로 그 폭넓음이나 깊이에서 중동에서 제국으로 군림했던 튀르키예나 유럽 미식사를 주도한 프랑스마저 따라가기 힘들정도.
그나마 비견되는 국가로는 비슷한 규모의 인구와 다양한 기후를 가진 인도가 있긴 하지만 해외에서 그리고 특히 한국에서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편.
그렇다면 중국은 말그대로 원래부터 이런 미식사회를 이룬걸까? 하면 태초부터 그랬던건 아님. 오히려 중국 고대 요리상을 보면 지금과는 꽤 많이 달랐음을 알 수 있거든.

[ 한나라 시기 인구 밀도 ]
예를 들어 중국 고대 한나라 그리고 당나라 시기는 중국에서 보편적인 볶음이나 튀김 요리가 적은편이었고 중국 한- 당대 심지어 송대까지도 한국이나 일본처럼 생선회등도 먹은 기록이 발견됨.
게다가 당시 중국에서 일반적으로 먹는 생활 요리는 기본적으로 맛을 위해서 먹는다기보다 말 그대로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생존식에 가까웠음.
특히 중국의 강남 개발이 본격화 되기 이전 시점이라 중국 인구 대다수가 강북 즉 중원-하북 지역에 살았기 때문에 겨울이 강남보다 길고 건조한 지역 특성상 농작물이 제한되고 밀, 수수, 조등의 곡류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고.
즉 이렇게 채소 및 곡류 다양성이 별로 였고 오래 보관 가능하며 추위에 저항 가능한 고열량 음식 즉 고칼로리로 배채우고 조리가 단순한 형태의 요리가 선호되었음. 이 시기엔 향신료가 부족했기도하고.
다시 말해 맛이 못먹을 수준이다 그런건 아니지만, 간단한 면이나 빵류 내지 아욱국등 실용음식이 주였다고 보는게 맞음. 물론 그 당시 황제나 또는 귀족들이야 아주 잘 먹었지만 그건 상위 0.1% 도 될까 말까한 극소수였고.
게다가 이런 상류층의 호화스러운 음식도 보면 주지육림이란 말에서 드러나듯 당시 서민들이 먹기 힘든 많은 양의 육류와 주류등을 보이는 과시의 형태 즉 사치재로서 귀하게 여겨지던 식재료를 많이 쓰는거에 가깝다였음.
중국사에서 부자로 유명한 석숭과 왕개의 돈지랄 경쟁중 금가루 먹인 닭을 먹는것에서 엿볼수 있듯 미식이나 요리의 맛 그 자체보다 ' 내가 이렇게 비싼 음식을 많이 먹을수 있는 대단한 사람이다 ' 라는 의미에서 음식들이 쓰였고 그런 의미에서 잘 먹은건 맞긴함.
그러나, 이는 과시, 권력, 양에 보다 포커스를 맞춘 반면 나중에 설명할 후대 중국에서의 미식문화는 조리 철학, 취향, 기술등에 보다 초점을 맞추면서 이도 당연히 비쌌지만 단순히 과시가 아니라 그 자체의 맛과 풍미 그 자체로 중심이 이동했다는것.
그리고 한나라때는 아예 전한은 장안 그리고 후한은 낙양 이런식으로 중국 지역내 각 특성을 가진 음식보다 그냥 수도의 통치 엘리트들이 모이는곳의 음식이 사실상 기준이 되는 형태.
한국등 서울에서 시작된게 전국에 퍼지듯이 말임. 물론 당나라 즈음 오면 중앙아시아 음식이나 향신료 그리고 외국 음식들도 유입.
게다가 한나라 장안이 관료들의 도시느낌으로 낙양보다 적은 24-30만이라면 당나라 장안은 말 그대로 100만의 세계 최대 번화가였기에 음식 다양성이 폭발.
그럼에도 여전히 중국의 요리 중심은 각 지역 특색이라기보다 관롱집단이라는 이 기득권을 중심으로 한 장안과 낙양 일대의 최고 지배 엘리트들이 결정하다시피 했으며 미식은 여전히 상류층의 전유물.
하지만 이때 헷갈리지 말아야할 지점은 당시 장안 음식이나 장안 미식 문화라기보다 국제도시로서 여러 요리가 집합하는 집결지에 가까웠다고 보는게 맞음. 현재 뉴욕이나 런던에 수많은 미슐랭 레스토랑이 있고 여러 국제 요리들이 몰리는것처럼.
물론 당나라 시기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난건 맞음 향신료뿐 아니라 문헌에 사천 음식도 등장하고 강남 음식은 우아함 (雅), 정갈함 (淸) 식으로 기록이 되고 조리 기술도 개선될뿐 아니라 한나라때 흔적을 보이던 중앙아시아 빵, 호병(胡餠) 이 본격 대중화되고. 우리가 지금 월병이라고 부르는 그거임.
그러나 아쉽게도 이런 미식감각은 귀족들이 주로 누리는거였고, 일반적인 서민이나 사회 전반에서 향유된다고 보기는 조금 힘들었음, 그러다가 당나라 후기부터 강남개발이 서서히 본격화되면서 얘기가 달라짐.
강남이 쌀 대량 생산등 경제적으로 급부상하며 서서히 경제 중심이 이동했고 이는 상업 발달과 도시문화를 꽃피우게 만들었음. 지금은 상하이나 난징 또는 선전등이 유명하지만 당시는 양저우가 매우 유명했음.
양저우는 당시 당나라 최고 부자 도시중 하나로 소금 무역과 상업과 연회 문화에 미식도시로 매우 유명했음. 당나라에선 양저우를 향락의 도시 그 자체로 묘사했고. 지금은 여러 도시들중 하나에 불과하나 부유했던 미식도시 흔적은 중국 요리에 남아 양저우 볶음밥은 여전히 중국 볶음밥 표준.
한국에서 유명한 신라 최치원이 관리로 근무했던데가 양저우며 당나라를 결딴낸 황소의 난이 재보급하고 세력 굳히는게 최대 상업도시였던 양저우를 접수해 경제적 기반을 강화한게 컸음.

하여튼 그만큼 재물이 많은 동네로 유명했으며 그에 따라 미식문화가 발전하고 있었고 이는 당나라가 망하고 5대 10국이 열리면서 강남 개발이 더욱 가속화되면서 이는 멈출수 없는 지경에 이름.
그리고 5대 10국 거치면서 문벌귀족들이 당이 기울어짐과 함께 몰락하는데 주전충이 황하에 빠뜨려 당의 명사 38명을 익사시키는등이 대표적 사건으로 이런걸 다 거친후 송나라즈음 오면 기존 귀족문화가 많이 약해짐.
그 결과 송나라는 비록 당나라 대비 군사적 성과는 못거두었다지만, 이건 이민족의 중앙집권화도 고려해야되는 부분으로 글이 샐 수 있으니 이정도로 축약하지만 하여튼 그 이전 고대부터의 기득권과 크게 단절됨.
그래서 송나라는 도시 상업 성장과 그로 인한 상인 세력 확대와 외식 산업의 등장과 이에 기인한 식당 경쟁 및 일반적인 시민 소비 문화가 그 전대 대비 크게 일진보함. 불야성이란 말이 퍼진것도 송대.
게다가 이전 대비 석탄의 사용이 광범위 해져서 높은열이 요구되는 요리가 가능해졌음. 그렇기 때문에 본격적인 우리가 생각하는 볶거나 튀기는게 많은 중국 요리의 기원은 대략 송나라 즈음으로 잡으면 얼추 맞음.
여기에 한국에서는 고려를 폄하했다고 좋은 평가를 받지 않지만 동파육으로 유명한 소동파 같은 지식인들부터해서 일반적인 서민들에 이르기까지 외식문화, 식당 경쟁, 요리의 전문화등 미식국가로서 중국이 나아가는 계기가 이때 생김.
소위 미식 혁명이 일어나게 된 것. 말 그대로 귀족과 상류층들의 전유물이었던 제대로 조리된 음식이 일반 도시 대중들에게까지 전파되고 요리가 하나의 산업이 되어 본격적인 경쟁으로 뛰어드는 외식혁명이 일어나는게 송나라 시기.
즉 이때부터 단순한 배를 채우기 위한 음식이 아니라 선택 가능하며 자기 입맛 취향에 따라 음식을 소비하게 되는 결과를 낳음. 대형 식당, 연회 전문점, 요리사 계층, 메뉴 체계, 음식 브랜드화등이 등장해 말 그대로 외식 국가로 나아감.
이는 상대적으로 조리 난이도가 낮은 일반적인 육식이나 유제품을 선호한 몽골의 원나라때도 한족사회에선 그대로 유지되었고 명나라때 가서 생산력 회복과 함께 더욱 발전을 이룸.
위에서 말한 연회 문화의 발전과 함께 지역 요리 분화 가속화, 조리기술의 더 정교한 발전으로 이어지면서 명말 그리고 청나라에 오면 우리가 생각하는 중국의 지역요리가 자리잡게 됨.
중국 지역요리는 애초에 딱 국가에서 지정해준게 아니라 위에서 말한 당때부터 원초적으로 생긴 지역별 요리에 송나라때 상업 진흥에 따른 상업 교류증가와 요리사의 인적 이동이나 연회문화 확장등이 겹쳐지면서 일어난 유기적 현상.
그걸 명-청 학자들이 분류해서 내놓은게 8대요리로 사천(川), 광둥(粤), 강소/강남 (苏), 저장 (浙), 산둥 (鲁), 푸젠 (闽), 후난 (湘) 안후이 (徽)등으로 나뉘게 되었고 이게 지금까지 내려옴.
한국에선 마라탕으로 유명한 사천요리가 전국적으로 퍼지는것도 청나라 후기 인구가 3배 이상 폭증하고 이런 인구압등이 요인으로 작용, 백련교도의 난, 태평천국의 난으로 전란과 대규모 이주민 발생.
그로 인해 중독적이면서도 보존성이 높은 매운맛이 선호 되었음. 특히 군인과 노동자 사이에서. 이는 분지라 습기가 높은 사천에서 발전시킨 사천요리가 이런 니즈 즉 필요와 맛이란 궁합을 다 잡으면서 중국에 전국적으로 퍼지게 된 것.
하여튼 이런 지역 요리의 발생이나 분화조차도 송나라때의 도시와 상업의 발전 그리고 단순 귀족이나 궁정을 위한 전속 요리가 아닌 하나의 직업군으로서의 요리사와 산업으로서 미식산업이 발전에 기원하고 있고.
그리고 이는 단순 중국에만 국한된게 아니라 동아시아 전반이 영향을 받았음. 실제로 송-명 요리 문화나 철학에 영향을 상당히 받은게 일본의 가이세키 (会席) 로 담백하고 정갈한 맛이나 찜이나 탕의 조리법이 그러함.
대표적으로 스이모노 (吸い物) 나 무시모노 (蒸し物) 가 그렇고. 그런데 중국 강남 요리는 제철 식재료, 색감, 접시, 균형, 우아함등을 중시하는편.
이는 가이세키가 사계절의 제철 생선과 채소를 사용하는 방식과 맥락이 비슷하다고 평가받음. 즉 송나라는 중국 요리와 그리고 동아시아 요리에 분기점을 만든 나라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음.
ㅊㅊ-https://www.fmkorea.com/best/94582485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