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인복이라 볼 수도 있죠. 그런데 뒤집어 생각해봅시다. 박지훈과 유해진, 누가 모았습니까!"
찰떡같은 캐스팅이다. 국사책 찢고 나온 유해진(엄흥도 역), 그리고 사슴 눈의 박지훈(단종 이홍위 역)이 바로 그것. 맹수 같은 유지태(한명회 역), 고귀한 느낌의 이준혁(금성대군 역)도 신선한 라인업이다.
장항준 감독은 "인복이 많다"는 농담 섞인 칭찬에, 특유의 너스레로 화답했다. "다시 생각해 보라. 그걸 모은 게 바로 나 아니냐"며 특유의 경쾌한 유머를 던졌다.
"지금이야 박지훈과 유해진이 딱 맞을 것 같잖아요? 그런데 감독 10명에게 시나리오 주고 캐스팅 해 보라고 하세요. 저마다 다 다르게 할 걸요?"
그는 "인기에는 연연하지 않고, 오로지 연기력과 캐릭터 싱크로율만 봤다"며 "시나리오를 쓰며 저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유해진을 생각했다. 박지훈은 '약한 영웅'의 눈빛을 봤다"고 답했다.
가벼움을 자처하나, 실은 치열하게 고민하고 작업한다. 촬영을 하면서도 내내 시나리오를 수정했을 정도. 예능인이 아닌, '영화감독' 장항준의 모습이다.
'디스패치'가 최근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장 감독을 만났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개봉(2월 4일)을 앞두고, 그 비하인드를 들었다.
◆ "왜, 단종이 주인공인가?"
그동안 많은 사극이 계유정난을 다뤘다. 계유정난의 주인공은 수양대군(세조). 그가 조카를 내쫓고 왕위를 찬탈하는 과정을 정치와 연결해 박진감 넘치게 그려낸다.
그러나, '왕사남'은 다르다. 세조를 아예 삭제했다. 대신, 청령포로 유배 간 단종을 주연으로 내세웠다. 그 곁을 지킨 보수 주인 엄흥도(유해진 분)와 궁녀 매화(전미도 분)를 중점으로 상상력을 덧입혔다.
"세조, 한명회, 계유정난. 그 살육의 역사가 확실히 드라마틱하죠. 그런데 너무 많이 했고, 관객으로서 많이 보고 즐겼습니다. 재생산의 필요성을 못 느꼈어요. 그 이후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장 감독은 "계유정난 이후, 단종의 삶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다. 그 몇 줄의 기록을 재구성했다"며 "원작 시나리오가 있었고, 그것을 많이 수정했다"고 밝혔다.
"실현되지 못한 정의의 뒷모습을 보고,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실패한 의(義)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진정한 추모란 무엇인가. 실현되지 못한 정의는 잊혀져도 되는가 질문하고 싶었어요."
엄흥도를 또 다른 주인공으로 세운 이유에 대해서는 "조선 최고의 가치가 힘에 의해 외면당했을 때, 그걸 지키는 사람의 시선을 그리고 싶었다"고 짚었다.
"단종이 죽고 강가에 시신이 버려졌어요. 동강에서 십여 일을 썩어가며 물 위에 떠다녔다고 하죠. 그걸 엄흥도가 꺼내 장례를 치르고, 평생 숨어 살았다고 합니다. 그 어떤 양반과 왕족도 못할 일을 한 겁니다."

◆ "이 조합, 스크린에 저장"
박지훈과 유해진의 조합은 어떻게 만들어냈을까? 장 감독은 우선 유해진 캐스팅에 "제 오랜 친구다. 그런데 그것 만으로 캐스팅한 건 당연히 아니"라고 말문을 열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엄흥도는 그냥 처음부터 유해진이었어요. 요즘 흔히들 '국사책 찢고 나왔다'고 하잖아요? 저도 은연 중에 그런 생각을 했나 봐요. 외형이 너무 한국인이잖아요.(웃음)"
단종 캐스팅에 대해선, "지키고 싶은 소년왕의 이미지가 중요했다"고 전제했다. "(단종이) 가치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성군의 자질을 가졌으면 했다. 그게 아니면 이 영화를 만들 이유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의 레이더에 들어온 건, 박지훈. '약한 영웅'의 연시은이 보여준 눈빛을 보고 책을 건넸다. 장 감독은 "네 번째 만남 때 '하겠다'고 했다. 박지훈이란 배우가 (단종을) 해서 정말 다행이었다. 너무 잘했다"고 깊은 신뢰를 내비쳤다.
한명회 캐스팅도 예상을 깼다. 기골이 장대하고, 위험한 카리스마를 뿜는 배우를 고른 것. 유지태를 내세워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그동안 우리가 본 한명회는 솔직히, 제가 조금 헬스 해서 싸워도 이길 수 있지 않을까요? 알아보니 당대의 기록은 '수려하고 훤칠하다' 더라고요. 매우 잘 됐다 싶었어요. 떠오르는 사람은 바로 유지태였죠."
금성대군에 대해서는 "작품 속, 유일하게 힘을 가진 선인이자 정의다. 단종을 복위시키고 역사를 제 자리로 돌리는 인물이 아주 멋있었으면 했다. 잘생기고, 얼굴이 희었으면 했다. 이준혁이 흔쾌히 수락해줬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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