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합 안 하는 데가 어디 있나. 재수 없게 걸린 것뿐이다."
한국전력공사 발주 입찰에서 7년 넘게 담합을 이어온 업체 관계자들이 나눈 대화 내용 일부다. 이와 비슷한 인식은 역시 담합을 감행했던 설탕, 밀가루 업체 관계자들에게도 나타난다. 전 국민이 쓸 전기료를 결정하고 식탁 물가의 원천을 좌우하면서도 이들에게 담합은 범죄가 아닌 '운 나쁜 해프닝'에 불과했던 것이다.
공정위 조롱하는 담합 업체들 "공 선생 문제 있어... 연락 자제하자"
구체적으로 국내 밀가루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대한제분, CJ제일제당, 사조동아원, 삼양사, 대선제분, 삼화제분, 한탑 등 밀가루 제분 7개 회사는 지난 2020년 1월부터 2025년 10월까지 밀가루 가격 변동 폭이나 가격 인상 시기 등을 서로 합의하는 방법으로 총 5조 9913억 원 규모의 밀가루 가격을 담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기간 밀가루 소비자 지수 상승폭은 36.12%를 기록했는데, 같은 시기 소비자 물가지수 상승폭(17.06%) 대비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담합에 참여한 3개 회사가 가격 인상폭을 결정하기 위해 모의한 대화 내용을 증거로 확보하기도 했다. 일괄적으로 1500원을 올리자고 합의하면서도 경쟁당국이나 수사당국에 적발 우려가 있으니, 서로 각기 다른 전략을 취하자는 것이다. 가령 구매사에 2000원 인상을 통보했지만 500원을 깎아주고 1800원 인상을 제안한 뒤 300원을 할인해주는 방식이다.
이들 회사는 공정거래위원회를 '공 선생'으로 표현하며 "공 선생이 좀 여러가지 문제가 좀 있으니까 이제 더이상 서로 연락은 좀 자제를 하자"며 조심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CJ제일제당, 삼양사, 대한제당 등 제당 3개사는 약 4년 동안 3조2715억 원 규모의 설탕 가격을 담합했다. 3개 업체는 국내 설탕시장의 90% 이상을 과점하고 있는데 담합으로 설탕 가격이 담합 전 대비 최고 66.7%까지 인상됐다. 심지어 이들 회사는 담합을 수행한 실무 직원에게 수사망이 좁혀오자 "너로 정리하는 건 꼬리 자르기가 아니다. 회사가 끝까지 돕겠다"라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효성, 현대, 엘에스, 일진, 제룡, 동남, 인텍, 중전기조합 등 10개 업체는 가스절연개폐장치 한국전력 입찰에서 6776억 원 규모 담합을 벌였다. 이들이 챙긴 부당이득은 1600억 원 이상으로 추산됐는데 이로 인한 가격 인상은 국민에게 전가됐다. 수사망이 좁혀와도 이들 기업들은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대4사 모두 물량 배분 담합을 시인하고 벌금형을 받고 끝나는 것"이라며 머리를 맞댄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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