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자는 직장 상사다. 여자는 그의 부하 직원이다. 함께 출장길에 오른 두 사람이 무인도에 불시착한다. 이런 내용의 영화 제목이 <직장상사 길들이기>다. 관객 대부분은 당연히 로맨틱 코미디를 예상할 것이다. 그런데 아니다. 굳이 정의한다면 상사와 직원의 관계가 역전되면서 벌어지는 ‘혐관 로맨스’라고 할까?
하지만 <직장상사 길들이기>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원제는 ‘Send Help’, ‘구조 요청’이라는 의미다. 게다가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은 <이블 데드>(1981) 시리즈와 <드래그 미 투 헬>(2009) 등을 통해 B급 공포 영화 거장으로 불려온 샘 레이미다. 정보를 찾아볼수록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라 무인도에서 벌어지는 스릴러에 가깝다. 그런데도 한국에서 개봉하는 영화에는 로맨틱 코미디에나 어울릴 법한 제목이 붙은 것이다. 흥미롭게도 막상 영화를 보고 나면 ‘직장상사 길들이기’라는 제목이 오히려 이 영화에 더 어울린다는 걸 알게 된다. 이 영화의 재미는 그런 어긋난 기대에서 오기 때문이다.
샘 레이미 감독은 주로 어떤 힘에 점령당한 인물을 그려왔다. <이블 데드>나 <드래그 미 투 헬>처럼 악령에 씌는 경우도 있고, <스파이더맨 3>(2007)에서 보여준 것처럼 외계 유기체에 감염된 뒤 자신의 능력에 도취돼버린 인물을 그리기도 했다. <직장상사 길들이기>에서 주인공 린다는 자신이 점유한 위치에 집착한다. 평소 자신을 깎아내리고 조롱하던 상사를 찍어 눌러버릴 수 있다는 우월감에 스스로 점령당하는 것이다. 안쓰러웠던 여자는 점점 무서운 여자가 되어간다. 샘 레이미 영화에서 보아온 기괴하고 끔찍한 상황도 이때부터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뿐 아니라 스릴러 영화의 익숙한 공식까지 깨며 흥미로운 재미를 더한다. 결말에 이르면 공포 영화 전문 감독인 그가 전문 분야와 가장 거리가 먼 소재를 가져와 자신의 취향을 담아낸 결과물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직장상사 길들이기>는 관객이 로맨틱 코미디를 기대할수록 영화에 숨겨진 장치가 더 빛을 발하는 스릴러다. 그러니 관객에게 대놓고 어긋난 기대를 심어주는 ‘직장상사 길들이기’라는 제목은 오히려 샘 레이미의 의도에 매우 부합하는 작명일 수도 있다. 물론 영화를 봐야만 이해할 수 있는 초월 번역이지만 말이다.
https://www.vogue.co.kr/2026/01/28/%ec%a7%81%ec%9e%a5%ec%83%81%ec%82%ac-%ea%b8%b8%eb%93%a4%ec%9d%b4%ea%b8%b0-%ec%9d%b4%ec%83%81%ed%95%98%ec%a7%80%eb%a7%8c-%ea%b7%b8%eb%9f%b4%eb%93%af%ed%95%9c-%ec%a0%9c%eb%aa%a9%ec%9d%b8-%ec%9d%b4/?utm_source=naver&utm_medium=partnersh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