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기사/뉴스 엄마와 함께 하는 <합숙 맞선>, 결혼은 현실이라는 말 뒤에 숨은 한심한 냉소주의-위근우 칼럼니스트
3,115 19
2026.02.01 18:03
3,115 19
최근 상간죄 의혹으로 통편집 된 SBS <자식 방생 프로젝트 합숙 맞선>(이하 <합숙 맞선>) 출연자 논란을 보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들키는 건 시간문제인데 대체 어떤 생각으로 연애 프로그램에 어머니까지 함께 나올 생각을 할 수 있지?’라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뒤이어 드는 생각. ‘그런데 어머니와 같이 연애 프로그램 나오는 거 자체가 이상한 일이잖아.’



내가 자립적인 성인임을 증명하기 위해 어머니의 증언을 신청하는 기묘한 모순. 물론 이 모순은, 결혼은 현실이라는 무적의 명제로 쉽게 봉합된다. “부모님이 결혼에 개입을 엄청 많이 합니다. 시대가 바뀌어도”라는 패널 서장훈의 말대로 한국에서 많은 경우 결혼이란 당사자만이 아닌 양가가 만족할 만한 계약이어야 하고, 그래야 행복하다는 경험적인 믿음 역시 공고하다. 



<합숙 맞선> 내내 강조되는 직업 안정성, 연봉, 학벌, 집안 형편 등에 대한 바람과 탐색, 계산에 대한 얘기만이 아니다.

가령 남자 출연자 장민철의 어머니는 아들 부부에게 명절마다 오라고 하지 않겠노라 공언한다. 손주를 봐줄 수 있다는 여성 출연자 김현진 어머니의 말에 남자 출연자 이승학의 어머니가 마음이 끌린 것도 마찬가지다. 


결혼과 함께 부수적으로 따라올 현실적 요소들을 차라리 미리미리 공개해 숙고할 기회를 주겠다는 <합숙 맞선>의 기획은 더 실용적인 방향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합숙 맞선>의 진정 해로운 지점이다.


나는 이 프로그램이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로 점철된 시대착오적인 프로그램이라는 비판에 백 퍼센트 동의한다.


당사자가 아닌 어머니가 마음에 드는 상대방을 선택하는 이벤트는 나이가 들어도 양육 담당자로서 아이에 간섭하는 ‘치맛바람’을 재현한다는 점에서 다분히 낡은 젠더관을 드러내거니와, 그 선택의 결과는 더더욱 노골적이다.


변호사인 걸 밝힌 순간 여성 출연자 어머니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은 서한결은 다섯 중 세 명의 선택을 받았다.

한편 여성 출연자 중 역시 가장 많은 세 남자 어머니의 선택을 받은 현진은 성악과 피아노를 가르치는 프리랜서다. 


 정말 흥미로운 건 아들이 좋아하는 김묘진 대신 현진을 선택한 승학 어머니의 이유다. 서강대학교에서 화공생명공학을 전공하고 외국계 의료장비 회사에 다니는 묘진은 너무 스펙이 높아 부담스럽다는 것. 


남성의 스펙은 높을수록 좋지만, 여성의 스펙은 나쁘지 않되 너무 높아도 안 되는 이 불균형은 능력 있는 가부장과 그런 가부장에 ‘어울리는 조력자’로서의 아내라는 전통적 모델로 소급한다. 다분히 시대착오적이다.



이 프로그램을 지배하는 건 낡은 규범에 무비판적인 순진함이 아니라, 낡은 규범이고 틀린 것도 알지만 그럼에도 현실을 이유로 순응하는 냉소적 이성이기 때문이다.


 주체적이고 단단한 개인이 결합해 자유롭고 평등한 결혼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이상적 모델이라는 것도 안다. 알지만, 그럼에도 결혼은 현실이라는 말로 이상을 ‘합리적으로’ 기각하고 기존 질서에 순응한다.


○○가 나쁜 건 알아, 알지만 현실적으로…, ○○가 좋은 건 알아, 알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냉소적 이성 앞에서 왜 나쁘고 왜 좋은지에 대한 도덕적 설명과 논증은 자주 무력해진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우리가 거부해야 할 건 스펙만이, 경제력만이, 학벌만이 현실이라는 그 협소한 세계관이다. 


가령 기혼자로서 나는 종종 파트너와의 유머 코드가 맞는 게 서로의 결속에 얼마나 핵심적인지 강조하고는 하는데, 그때마다 다른 기혼자들이 격렬히 공감하거나 부러워한다. 무엇에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것은 도덕적 정치적 입장의 상당한 일치와 맥락의 공유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 역시 결혼 안에서 생생히 경험되는 명백한 현실이다. 


마찬가지로 ○○는 현실이라는 여러 버전의 냉소적 현실주의 앞에서 그 너머 얼마나 다양한 현실들이 존재하고 또 존재할 수 있을지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재미의 첨단을 고민해야 할 지상파 예능이 냉소라는 게으른 선택을 한 것에 한심하다는 말보다 ‘현실’적인 평가는 없어 보인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601310600001

목록 스크랩 (2)
댓글 19
댓글 더 보기
새 댓글 확인하기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공지 [공지] 언금 공지 해제 24.12.06 4,595,240
공지 📢📢【매우중요】 비밀번호 변경 권장 (현재 팝업 알림중) 24.04.09 11,453,303
공지 공지가 길다면 한번씩 눌러서 읽어주시면 됩니다. 23.11.01 12,608,447
공지 ◤더쿠 이용 규칙◢ [스퀘어 정치글은 정치 카테고리에] 20.04.29 34,756,757
공지 정치 [스퀘어게시판 정치 카테고리 추가 및 정치 제외 기능 추가] 25.07.22 1,039,322
공지 정보 더쿠 모바일에서 유튜브 링크 올릴때 주의할 점 782 21.08.23 8,482,652
공지 정보 나는 더쿠에서 움짤을 한 번이라도 올려본 적이 있다 🙋‍♀️ 268 20.09.29 7,400,086
공지 팁/유용/추천 더쿠에 쉽게 동영상을 올려보자 ! 3595 20.05.17 8,610,147
공지 팁/유용/추천 슬기로운 더쿠생활 : 더쿠 이용팁 4015 20.04.30 8,494,284
공지 팁/유용/추천 ◤스퀘어 공지◢ [9. 스퀘어 저격판 사용 금지(무통보 차단임)] 1236 18.08.31 14,353,789
모든 공지 확인하기()
2979299 유머 태국인이 사우디 왕자 집에서 90kg 훔쳐갔던 사건 ~ing 중 ㅋㅋㅋㅋㅋㅋ 22:55 163
2979298 이슈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해초 2 22:54 286
2979297 이슈 냉부 다음주 - 냉부 중식하는 샘킴 vs 양식하는 박은영 / 똥구라지 재해석 최현석 vs 멜론튀김 재해석 손종원 7 22:54 377
2979296 유머  왜 레즈비언이 된거야? 22:54 266
2979295 이슈 이곳은 머슴(AI)들의 대화 공간임. 인간은 눈팅만 가능함 3 22:52 396
2979294 이슈 노안 많은 헐리우드에서 눈에 띄게 동안인 배우.jpg 5 22:52 863
2979293 이슈 장항준 감독과 같이 한 촬영 현장에서 조금 외로웠던 유해진 1 22:51 662
2979292 이슈 장례식장 음식 맛있어서 자괴감 드는 달글 7 22:49 693
2979291 이슈 [냉부] 행복한 반려돼지 24 22:49 1,944
2979290 유머 키 ‭작고 ‭못생긴 남자 ‭만나지 ‭말라고 ‭하는 ‭남돌 1 22:49 348
2979289 이슈 설특집이라고 셰프들 한복착장에 해달라는거 다 말아주는 감다살 다음 냉부 (w. 손종원 & 김풍) 29 22:47 2,653
2979288 유머 슈퍼 N들이 평소에 한다는 생각.jpg 12 22:46 1,282
2979287 이슈 스포티파이에서 열린 엑소 디오 카이 합동 생일파티 1 22:46 454
2979286 이슈 좁쌀여드름 관리법 릴스올려달라고 댓글 좋아요 2만개받아서 올려준 환승연애4 승용.insta 2 22:46 890
2979285 유머 <브리저튼4> 남주의 역대급(n) 프로포즈에 한 해외팬 반응........twt 34 22:45 2,872
2979284 기사/뉴스 해킹, 미행, 폭행… 사우디 스파이웨어 공격 피해 유튜버, 300만 파운드 배상 판결 22:43 352
2979283 유머 요즘 자영업 근황 10 22:43 2,730
2979282 이슈 8년 전 오늘 발매된_ "The Boots" 1 22:42 80
2979281 유머 하 전지현 고딩때 별명이 복도폭주기관차였다는게 진짜 개웃김 ㅅㅂㅋㅋㅋㅋㅋㅋㅋ 2 22:42 1,524
2979280 이슈 케이스티파이 X 미스 소희 콜라보 가격..jpg 27 22:42 1,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