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뒤이어 드는 생각. ‘그런데 어머니와 같이 연애 프로그램 나오는 거 자체가 이상한 일이잖아.’
내가 자립적인 성인임을 증명하기 위해 어머니의 증언을 신청하는 기묘한 모순. 물론 이 모순은, 결혼은 현실이라는 무적의 명제로 쉽게 봉합된다. “부모님이 결혼에 개입을 엄청 많이 합니다. 시대가 바뀌어도”라는 패널 서장훈의 말대로 한국에서 많은 경우 결혼이란 당사자만이 아닌 양가가 만족할 만한 계약이어야 하고, 그래야 행복하다는 경험적인 믿음 역시 공고하다.
<합숙 맞선> 내내 강조되는 직업 안정성, 연봉, 학벌, 집안 형편 등에 대한 바람과 탐색, 계산에 대한 얘기만이 아니다.
가령 남자 출연자 장민철의 어머니는 아들 부부에게 명절마다 오라고 하지 않겠노라 공언한다. 손주를 봐줄 수 있다는 여성 출연자 김현진 어머니의 말에 남자 출연자 이승학의 어머니가 마음이 끌린 것도 마찬가지다.
결혼과 함께 부수적으로 따라올 현실적 요소들을 차라리 미리미리 공개해 숙고할 기회를 주겠다는 <합숙 맞선>의 기획은 더 실용적인 방향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합숙 맞선>의 진정 해로운 지점이다.
나는 이 프로그램이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로 점철된 시대착오적인 프로그램이라는 비판에 백 퍼센트 동의한다.
당사자가 아닌 어머니가 마음에 드는 상대방을 선택하는 이벤트는 나이가 들어도 양육 담당자로서 아이에 간섭하는 ‘치맛바람’을 재현한다는 점에서 다분히 낡은 젠더관을 드러내거니와, 그 선택의 결과는 더더욱 노골적이다.
변호사인 걸 밝힌 순간 여성 출연자 어머니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은 서한결은 다섯 중 세 명의 선택을 받았다.
한편 여성 출연자 중 역시 가장 많은 세 남자 어머니의 선택을 받은 현진은 성악과 피아노를 가르치는 프리랜서다.
정말 흥미로운 건 아들이 좋아하는 김묘진 대신 현진을 선택한 승학 어머니의 이유다. 서강대학교에서 화공생명공학을 전공하고 외국계 의료장비 회사에 다니는 묘진은 너무 스펙이 높아 부담스럽다는 것.
남성의 스펙은 높을수록 좋지만, 여성의 스펙은 나쁘지 않되 너무 높아도 안 되는 이 불균형은 능력 있는 가부장과 그런 가부장에 ‘어울리는 조력자’로서의 아내라는 전통적 모델로 소급한다. 다분히 시대착오적이다.
이 프로그램을 지배하는 건 낡은 규범에 무비판적인 순진함이 아니라, 낡은 규범이고 틀린 것도 알지만 그럼에도 현실을 이유로 순응하는 냉소적 이성이기 때문이다.
주체적이고 단단한 개인이 결합해 자유롭고 평등한 결혼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이상적 모델이라는 것도 안다. 알지만, 그럼에도 결혼은 현실이라는 말로 이상을 ‘합리적으로’ 기각하고 기존 질서에 순응한다.
○○가 나쁜 건 알아, 알지만 현실적으로…, ○○가 좋은 건 알아, 알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냉소적 이성 앞에서 왜 나쁘고 왜 좋은지에 대한 도덕적 설명과 논증은 자주 무력해진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우리가 거부해야 할 건 스펙만이, 경제력만이, 학벌만이 현실이라는 그 협소한 세계관이다.
가령 기혼자로서 나는 종종 파트너와의 유머 코드가 맞는 게 서로의 결속에 얼마나 핵심적인지 강조하고는 하는데, 그때마다 다른 기혼자들이 격렬히 공감하거나 부러워한다. 무엇에 함께 웃을 수 있다는 것은 도덕적 정치적 입장의 상당한 일치와 맥락의 공유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 역시 결혼 안에서 생생히 경험되는 명백한 현실이다.
마찬가지로 ○○는 현실이라는 여러 버전의 냉소적 현실주의 앞에서 그 너머 얼마나 다양한 현실들이 존재하고 또 존재할 수 있을지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재미의 첨단을 고민해야 할 지상파 예능이 냉소라는 게으른 선택을 한 것에 한심하다는 말보다 ‘현실’적인 평가는 없어 보인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60131060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