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생애보고서 ③부부편 下]
각방·각자 생활은 실패 아닌 ‘전략적 공존’
돈 이야기는 ‘감정’ 빼고 ‘숫자’로만 대해야
'남편이 도서관에 갔어요. 운동도 할 겸 남편을 보러 도서관에 갑니다. 도서관에 도착했어요, 남편이 보입니다. 남편을 봐서 기분이 좋습니다. 아는 척을 하고 싶지만 남편 공부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물을 먹고 다시 집으로 향합니다. 남편이 집에 왔어요. 당신 보고 싶어서 보러 갔었다고 얘기합니다. 남편이 씩 웃습니다. 나는 남편이 좋습니다.'
[파이낸셜뉴스] 네이버 한 카페에 올라온 글이다. '참 예쁘십니다', '읽고 나니 행복해집니다', '한 편의 시 같다'는 댓글이 이어졌다. 2030대 신혼부부의 일상처럼 보이지만, 이 카페는 은퇴를 준비하는 중·장년층이 모인 공간이다.
이 글이 관심을 끈 것은 서로에 대한 사랑이 전부가 아니다. 사랑보다 눈길을 끈 건 서로의 시간을 침범하지 않는 배려였다. 이 부부는 일부러 떨어져 지내는 것도, 하루 종일 붙어 있으려 애쓰지도 않는 것 같다. 상대방을 배려해 보고 싶을 때는 다가가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는 공간도 함께 배려한다.
은퇴 이후 ‘이제는 늘 같이 있어야 한다’는 기대 대신, 언제 함께할지, 언제 각자의 시간을 지킬지를 스스로 정하는 관계다. [가족생애보고서 ③부부] 2편에서는 이렇게 물리적 거리보다 관계의 리듬을 조정하며 무너지지 않으려는 부부들의 선택을 들여다본다.
각방은 전략적 공존? 갈등 심화?
최근 이혼 특징은 황혼이혼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2013년 연간 6만8000여명 수준이던 65~69세 이혼 인구는 2025년에는 32만명을 넘어섰고 70~74세 이혼 인구는 3만6000여명에서 18여명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최근 황혼이혼이 늘어난다는 통계만큼이나, 현장에서는 다른 흐름도 함께 관찰된다. '헤어질 정도는 아닌데, 지금 방식대로는 못 살겠다'는 부부들이 각방 생활·각자 활동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다.
각방 생활, 각자 활동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지난해 명예퇴직한 최철호씨(57·가명)는 각방 생활을 시작했다. 딸이 취업을 하면서 생긴 방을 개인 공간으로 만들며 부인과 생활 공간을 분리한 것이다. 최씨는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다보니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면서 "특히 수면 시간도 다르고 TV 취향도 다르다. 각자 공간에서 생활하다 식사 때 만나니까 오히려 관계가 좋아진 것 같다. 대화도 늘었다"고 말했다.
반면 현직에 있는 황병철(58·가명) 부장은 "각방은 말도 안된다. 생활공간을 분리하는 것은 나도 반대고 와이프도 반대한다"면서 "부부는 무조건 같이 생활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각방 그 자체보다, 그 선택에 깔린 감정과 방향이 관계를 좌우한다”고 말한다.
[체크] 각방·각자 생활, 전략이 되는 경우 vs 위험 신호
✔ 전략이 되는 경우
□수면 시간·취향 차이 등 기능적 이유가 중심일 때
□각자의 시간 이후 식사·주말 등 만나는 리듬이 합의돼 있을 때
□'상대가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는 복기가 병행될 때
⚠ 위험 신호인 경우
□'옆에 있는 것 자체가 싫다'는 회피·체념 감정이 출발점일 때
□대화 단절 + 부부관계 단절이 장기화됐을 때
□배우자 얼굴만 봐도 가슴 두근거림·통증 등 신체화 증상이 나타날 때
'따로' 시간이 있어야 '같이'도 버틴다
은퇴 전환기에 흔한 착각이 있다. '이제 시간이 생겼으니 여행도 같이 다니고 운동도 함께 해야겠다. 같이 많이 보내면 좋아지겠지.' 하지만 밀착은 오히려 피로를 키운다.
50대 후반 직장인 박혜진씨(58·가명)는 배우자와 함께 규칙을 하나 만들었다. 매주 수요일은 ‘각자의 날’. 배우자는 운동 모임, 본인은 친구·취미 일정이다. “처음엔 서운해하더니, 지금은 그날이 있어서 다른 날이 편해졌다.”
전문가들은 이를 ‘거실의 독립’이라고 표현한다. 같은 집에 살되, 하루의 전부를 공유하지 않는 것. 피하는 것이 아니라, 숨 쉴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다.
김윤정 법무법인 YK 가사·상속 전문 변호사는 “은퇴 후 시간적 여유가 늘어나면서 기본적인 생활이나 정서적 문제를 배우자에게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오히려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언제든 혼자서도 생활이 가능한 정도의 정서적·생활적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배우자는 동반자가 아니라 부담으로 인식되기 쉽다”며 “자기만의 인간관계와 취미, 일상 루틴을 유지하는 것이 관계를 지키는 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숫자가 감정을 이긴다: '불안'을 '예산'으로 바꾸기
은퇴 전환기 부부 갈등의 또 다른 축은 돈이다. 소득이 줄어드는 시점에 처음 꺼낸 돈 이야기는 감정 싸움으로 번지기 쉽다. 그래서 순서가 중요하다. '감정→돈'이 아니라 '돈→감정'이다.
서울 강서구의 이정수(56·가명)씨 부부는 은퇴 이후 처음으로 연금·보험·대출·현금흐름을 한 장에 정리했다. “서로 정확한 숫자를 모르고 있다는 게 더 불안했다. 숫자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니 서로가 편해진 것 같다.”
김경필 머니트레이닝랩 대표는 “은퇴 부부에게 필요한 건 거창한 재무 설계가 아니라 최소한의 합의”라며 “은퇴 후 생활비를 누가 관리하는 것은 상관없다. 단 투명하게 관리를 해야 한다. 절대 뒷주머니는 안된다"고 조언했다. 이어 "한달 예상 수입을 공개하고 그 중 얼마를 용돈으로 각각 사용할 것인지를 정하고 생활하면 문제가 없다"면서 "부부라는 경제 공동체를 인정하고 서로를 배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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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만드는 '우리 집 설계도'
① 대화의 기술: '물음표'를 '마침표'로 바꾸기
은퇴자가 '물음표 살인마'가 되는 것은 불안하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는 대화법이다.
▶ 나쁜 예(심문형): "어디 가? 언제 와? 밥은?"
▶ 좋은 예(정보 제공형): "나 1시에 친구 만나러 나가. 점심은 식탁에 차려뒀어. 5시쯤 올게." (물어보기 전에 먼저 정보를 주어 상대의 불안을 차단)
▶ 금기 사항: 상대의 외출에 "또 나가?" 혹은 돌아온 상대에게 "왜 이제 와?"라는 부정적 접두사 붙이지 않기.
② 공간의 기술: '따로 또 같이'의 물리적 구현
▶ 안전 거리 확보: 한 공간에 있더라도 각자 이어폰을 끼거나 책을 읽는 '따로의 시간'을 공식화하기
▶ 화장실·취침: 수면 장애나 생활 패턴이 다르다면 각방 혹은 트윈 침대 사용을 '관계 리모델링'의 일환으로 활용
③ 재무의 기술: '예비비'의 자율성 보장
자율 예산: 생활비와 별개로 서로에게 묻지 않고 쓸 수 있는 '개인 용돈'의 하한선 합의하기. (예: 매달 생활비의 10%씩은 각각의 용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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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14/0005471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