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퐁파두르 부인 (프랑스)
횡령 혐의로 국외로 도주한 아버지 없이 매춘을 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푸아송(생선)이라는 성씨에서 보듯이 평민 출신인데
이 출신 때문에 베르사유에 가서도 귀족들에게 비웃음을 당했다.
어릴때부터 왕의 정부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겠다는 야심이 있었고
실제로 사냥을 나온 루이 15세 앞에 나타나
그리스 신화의 다이아나 여신으로 분장하여 눈길을 끈 뒤
그토록 꿈꾸던 베르사유 입성에 성공한다.
빼어난 미모와 말솜씨, 패션감각으로 왕비를 제치고
베르사유의 사실상 안방마님 역할을 했다.
베르사유의 유행이 곧 유럽 전체의 유행이 되던 시대라
유럽 전역에 자신의 패션과 헤어, 스타일을 유행시켜서
'퐁파두르 스타일'이 18세기 유럽 상류층 여성들의 표준 차림으로 자리잡았을 정도다.
(훗날 마리 앙투아네트도 퐁파두르 스타일의 패션과 헤어를 그대로 따라했다.)
일명 '로코코의 여왕'
루이 15세를 나이 들어서까지 사로잡은건 높은 교양과 지적 매력도 컸는데
그녀가 남긴 그림을 보면 대단히 실력이 뛰어난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하고
심지어 연기와 노래까지 잘해서 프랑스 연극, 성악 발전에도 큰 기여를 했다.
또한 그녀의 살롱은 당대의 사상가와 문학가가 모이는 지적 향연의 장이 되었고,
당시 사상이 불순하다며 금지되어 있던 진보적인 서적들도 아낌없이 후원하여
수많은 계몽사상 학자들이 그녀의 살롱에서 먹고 살았고 프랑스 혁명의 불씨가 되었다.
당연히 싫어하는 사람, 시기질투하는 적들이 엄청나게 많았지만
궁중 암투와 지략의 달인이라 죽을때까지 총애와 부귀영화를 누리다 갔다.
왕비의 숙소를 타고난 감각으로 센스있게 꾸며줘서
왕비에게까지 인정과 신임을 받을 정도였으니....
국왕은 이런 그녀에게서 헤어나지를 못했는데
루이 15세가 그녀에게 육체적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심하게 의존했기에
왕의 정치적 조언자와 비서 역할까지 겸하는 와중에 왕의 성욕에도 언제나 응해줘야했고
심지어 루이 15세는 퐁파두르가 항상 자기 근처에서 식사하며 남김없이 다 먹기를 요구했기 때문에
억지로 다 먹으면서도 살이 찌지않고 미모를 유지하기 위해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서 승마를 했다.
국가 외교관계에까지 큰 영향력을 끼칠 정도의 인물이었던만큼
오스트리아-러시아와 3각 동맹을 구축하는 등
유럽 역사에서도 비중있게 다뤄지는 인물 중 하나.
영국드라마 닥터후에서도 그녀를 주제로 한 에피소드가 나온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