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도에서 물리학도로 전향
한국은 너무 빨리 인생 결정돼
늦깎이 인재 포용 시스템 필요

김영기 시카고대 물리학과 석좌교수(페르미 연구소 임시소장)가 자택에서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세계적인 석학 김영기 교수는 ‘엘리트 코스만 밟아 온 천재’가 아니다. 오히려 놀라울 만큼 인간적이다. 그는 1980년대 초반 고려대 탈춤반에서 춤을 추느라 1~2학년 성적표는 ‘시들시들’했다며 인생 이야기를 들려줬다.
-모두가 당신을 천재라고 생각한다. 학창 시절은 어땠나.
“천만의 말씀이다. 나는 고려대에 입학해 2년 동안은 수업도 거의 안 들어가고 탈춤반에 들어가 탈춤만 췄던 사람이다. 처음에는 수학과로 입학했다가 적성을 못 찾아 방황했고, 뒤늦게 물리학과로 전과했다. 그러다 4학년 때 강주상 교수의 양자역학 수업을 듣고서야 비로소 ‘아, 물리가 이렇게 아름다운 거구나’라며 눈을 떴다.”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떠난 유학 생활, 두려움은 없었나.
“유학 준비도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고작 몇 푼을 들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당시 한국에선 저를 주목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학점이 좋지도, 영재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미국에 와서 박사후연구원(Post-doc) 과정을 밟으며 연구에 몰입하다 보니, 어느 순간 주변에서 저를 추천해주기 시작하더라. 내가 이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저는 학생들에게 항상 말한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다’.”
-한국은 조기 교육 열풍이 거세다. 당신과 같은 늦깎이 인재들을 위해 어떤 시스템이 필요한가.
“한국은 너무 일찍 아이들을 재단한다. 고등학교 때 성적으로 인생을 결정짓는다. 하지만 연구는 마라톤이다. 빨리 달리는 사람보다, 엉덩이 무겁게 버티는 깡 있는 사람이 결국 이긴다. 나처럼 늦게 핀 꽃들도 기다려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아시아인, 여성, 이방인이라는 ‘유리천장’을 어떻게 뚫었나.
“차별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저는 그걸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누가 부당한 대우를 해도 ‘어? 저 사람 왜 저러지?’ 하고 그냥 넘겼다. 이를 ‘둔감력’이라 부르고 싶다. 남편(미국인 물리학자)이 오히려 ‘그건 명백한 차별이야!’라고 화를 낼 때도, 저는 하루 속상해한 뒤 훌훌 털고 다음 연구에 집중했다. 실력으로 보여주면 된다. 묵묵히 내 할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사람들이 저를 리더로 인정해주더라. 유리천장을 깨려고 노력한 게 아니라, 그냥 무시하고 뚫고 올라간 거다.”
-최근 한국의 우수 인재들이 의대로만 몰리는 현상이 심각하다. 선배 과학자로서 어떻게 보나.
“의사라는 직업의 안정성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돈이나 안정을 위해 의사가 된 사람이 과연 10년, 20년 뒤에도 행복할까. 과학자는 밤을 새워 연구하다가 데이터에서 새로운 신호 하나를 발견했을 때의 그 짜릿한 희열로 평생을 버티는 사람들이다. 그 재미를 느끼기도 전에 입시 경쟁에 매몰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생략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9/0005628268?sid=105
■ 입자물리학 세계적 석학 … 회원 5만 美물리학회장 역임, 김영기 교수는…
1962년생으로 입자물리학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며 ‘충돌의 여왕(Collision Queen)’이라는 별명을 얻은 세계적인 석학이다. 고려대에서 학·석사 과정을 마치고 미국 로체스터대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24년에는 5만여 명의 회원을 둔 세계 최대 물리학 단체인 미국물리학회(APS) 회장을 맡으며 아시아 여성 과학자의 역사를 새로 썼다. 현재는 미국 시카고대에서 미국인 최초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앨버트 마이컬슨의 이름을 딴 ‘마이컬슨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난해부터는 페르미 랩의 임시 소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