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의 기획 의도는 찬란했으나, 그 퇴장은 너무나도 씁쓸했다. KBS 2TV 주말드라마 '화려한 날들'이 지난 25일, 50회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 드라마는 시작 전부터 엄청난 기대를 모았다. 시청률 45%라는 신화를 썼던 '황금빛 내 인생'의 소현경 작가와 김형석 PD가 8년 만에 다시 뭉쳤기 때문이다. '흥행 보증수표'라 불리며 당연히 대박이 날 줄 알았던 이 작품은, 결국 마지막 회 시청률 18.9%를 기록하며 마의 20% 벽을 넘지 못한 채 종영했다. 바로 전작인 '독수리 5형제를 부탁해!'가 20.4%로 유종의 미를 거둔 것과 비교하면 뼈아픈 성적표다. 무엇이 그 화려했던 제작진과 배우들을 20%의 늪에 빠뜨렸을까.
'심장 이식'이라는 무리수... 시대와 싸운 '낡은 신파'
마지막 회는 그야말로 눈물바다였다. 교통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진 아버지 이상철(천호진 분)은 "나의 심장을 아들 이지혁(정일우 분)에게 줍니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심장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아들은 아버지의 심장을 이식받아 새 생명을 얻었고, 3년 뒤 아내, 아들과 함께 바다를 찾아 아버지를 그리워했다.
겉보기에는 가족의 사랑으로 완성된 해피엔딩 같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못해 차가웠다. 방송 직후 게시판에는 "아버지를 죽여서 아들을 살리는 게 정말 최선이었냐", "천호진 배우는 전작에 이어 또 죽어서 희생하나", "이건 감동이 아니라 공포다"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2017년의 시청자들은 아버지의 헌신적인 죽음에 눈물 흘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2026년의 시청자들에게 자식을 위한 부모의 극단적인 희생은 더 이상 아름다운 사랑이 아니라 '불편한 강요'로 다가온다. 시대가 변했는데도 여전히 과거의 성공 공식인 '천호진표 희생'을 무리하게 반복한 작가의 안일함이 그대로 드러난 대목이다.
느린 전개와 연기력 논란, 초반 기세 꺾인 결정타
사실 드라마의 실패는 초반부터 예견됐다. 첫 방송 시청률 13.9%로 불안하게 출발한 '화려한 날들'은 한때 12%대까지 떨어지며 고전했다. 1분짜리 숏폼 영상과 넷플릭스의 빠른 호흡에 익숙해진 요즘 시청자들에게, 50부작 주말극 특유의 느릿느릿한 전개는 지루함 그 자체였다. "이야기가 너무 뻔하다", "악당이 벌받는 게 너무 늦다"는 불평은 곧바로 채널을 돌리게 만들었다.
주연 배우들의 연기력 논란도 뼈아팠다. 정일우와 정인선은 그림체는 잘 어울렸지만, 소현경 작가 특유의 문어체 대사를 소화하는 과정에서 "어색하다", "국어책 읽는 것 같다"는 혹평을 피하지 못했다. 드라마 중반 이후 캐릭터에 녹아들며 안정을 찾았지만, 이미 떠나버린 시청자들을 되돌리기엔 너무 늦은 뒤였다. 그나마 막내아들 역의 신인 배우 손상연이 풋풋한 로맨스로 활력을 불어넣으며 "건질 건 막내 커플뿐"이라는 위안을 남겼을 뿐이다.
시청자들이 그토록 원했던 통쾌한 '사이다' 복수도 없었다.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른 고성희(이태란 분)는 감옥에 가는 대신, 남편과 재결합해 서로를 미워하며 사는 삶을 택했다. 극 중 남편은 "서로 벌 주면서 사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시청자들은 납득하지 못했다. "주인공 인생을 망친 대가치고는 너무 가볍다", "이태란이 끝까지 반성 안 하고 안주인 행세하는 게 현실적이라 더 화가 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요즘 트렌드인 확실한 인과응보와는 거리가 먼, 미지근하고 찝찝한 결말이었다.
화려한 날들'이 남긴 숙제,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화려한 날들'은 결국 20% 고지를 한 번도 밟지 못한 채 퇴장했다. 이건 단순히 시청률이 낮게 나왔다는 걸 넘어, 'KBS 주말드라마는 무조건 본다'는 공식이 완전히 깨졌음을 의미한다. 스타 작가와 감독의 이름값, 그리고 "가족끼리 밥 먹는 이야기"만으로는 더 이상 똑똑해진 시청자들을 붙잡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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